나는 '며느리 사표'를 읽지 못하여서 그 책의 파급력을 실감하지 못한다. '며느리 사표'라는 단어 자체와 던질 수 있는 자신감 자체가 센세이셔널하였다. 작가가 페미니즘의 시각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 책은 ‘전투적이고 시댁에서 남편에게서 받는 부당함을 없애자’ 등의 내용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앞의 거론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투적이지는 않다.
이 책의 주장은 남에게 대접받고 존중받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자신 스스로가 챙기고 살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또한 남에게 잘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챙기는 것과 내 감정이 우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여자는 언제든지 독립하기 위해서는 자립할 힘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엄마는 아빠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셨다. 그 희생한 것에 대한 보상을 아빠에게 받기 원했지만, 엄마가 원하는 것만큼 받지 못했다. 거기서 오는 상실감에 엄마는 늘 불만이었고 아빠는 그것에 매달리는 엄마에게 부담감을 가지셨다. 그 당시 ‘엄마가 아빠에게 채움 받기 위해 애쓰고, 아빠에게 투자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엄마에게 할애했더라면 엄마의 삶이 덜 외롭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부부는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독립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배우자에게 기대기보다는 독립적인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나은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가사 분담이 여자에게 기울어져 있다면, 시댁의 요구 상황이 불합리하게 느껴진다면 여자는 다른 이들에게 기대하기보다는 나 스스로가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우리는 나의 인생에 대해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2. 마음에 남는 글귀
P. 36
며느리가 목소리 내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로 내 경우에는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중략)
‘좋은 며느리’의 문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다는 데 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상대를 먼저 배려하느라 자신을 배려하기 어려워진다.
P. 84
외부에 착하게 굴려다가 정작 자신에게 가장 잔인해진다는 사실을, 그 끝은 스스로를 죽이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 156
세상은 달라졌다. 더는 ‘남자에게 사랑받는 여자가 행복하다’라는 말에 속지 않는다. 결혼 생활의 불행은 내가 매력 없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으로서 살지 못해서 생겼다. 삶의 목적은 그냥 나 자신이 되는 데 있었다,
P. 162
시가 전체를 놓고 보면 며느리로서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 같았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존재의 작은 용기가 시가 전체의 문화를 바꾸어갈 수 있었다. 그들이 먼저 바뀌어야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변화된 행동을 보일 때, 가족 구성원들도 따라서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P. 225스스로에 대해 ‘쓸모없다.’ ‘부족하다’, ‘가치가 없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 등의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럴 때마다 ‘내가 나를 폭력적으로 비난하고 있구나.’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지켜보려 했다. (중략)
‘나를 관찰한다’는 말은 한편으로 나의 부족함도 그대로 바라본다는 의미다.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거부해왔던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인 자기혐오를 만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