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목적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방식에 알아차림을 가져가는 것이다. 특히 부정적인 자기 대화와 그 기저에 있는 자기 판단은 은연중에 우리의 자아 인식과 세계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 운다.
자아 소통에 있어서 균형을 잃는다는 것은 가령 사소한 실수를 했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비난하거나 질책할 때 혹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스스로 어쩐지 남들보다 '그다지 중요치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경우다. 대부분의 사람은 가끔 이런 인식을 가지며, 그런 인식은 우리의 그릇된 자아상을 반영한다. 누구나 실수를 하며 실수를 하는 것은 자책이 원인이 아니다. 지구상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p 24
우리는 스스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대체로 알지도 못하고, 미묘하게 부정적인 말로 자신에게 말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수없이 이런 부정적인 자기 대화를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p 35
나 자신에게 쓰는 메모는 대체로 짧고 퉁명스럽다. 무엇이든 해야 할 일들을 절대 잊어버리거나 미루지 않도록 엄청나게 강조해서 적는다. 예를 들어 전에 나 자신에게 "빨래를 개!!!!!!"라는 메모를 남기곤 했다. 이런 강압적인 메모를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남길 수 없을 것이다. 마치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전부 다 해 내지 못하면 끔찍한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늘 세탁물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끝장나지 않는다. 내일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핵폭탄이 떨어질 일은 없다.
(중략)
"신시아, 빨래를 좀 개켜 줘, 사랑해 .-신시아가."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비록 자신이 쓴 것이라도 명령조에 메모에 비해 공손하고 정중한 말로 적힌 메모를 받는 것이 훨씬 기분이 좋다.
p 43~44
이와 같은 부정적인 자기 대화는 비교적 알아차리기 쉽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자기 대화는 우리의 판단과 의견에 근거하고 있으며 본래 그 자체로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아름다움과 추함은 아주 주관적이며, '뚱뚱하다.'는 것도 완전히 상대적이다. 특정한 성과 나이, 키를 가진 어떤 사람에게 가 과체중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체중 미달이 될 수도 있다.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될 엄격한 기준이 없다. 말 그대로 판단이 사실이 아니라 판단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체중에 대해 다들 다른 기준을 가질 수 있지만,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즉 스스로 뚱뚱해 보인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할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더 나쁘게 생각하게 되며, 그로 인해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p 46
'내 몸이 불만'이라거나 '내 직업이 불만'이라는 생각 뒤에 숨겨진 것은 '내가 불만'이라는 함축이기 때문에 우리는 속고 있다.
p 79~80
다른 사람들을 당신 자신처럼 보는 대신에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들처럼, 특히 가장 친한 친구처럼 보라.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잠시 생각해 보고, 특히 그들이 힘든 시기에 부닥쳤을 때 줄곧 그들을 그들을 지지하고 격려했던 순간을 생각해 보라. "난 정말 루저야."라든가 "난 너무 못생겼어."라든가 "또 실패했어."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지 상상해 보라.
이제 그들의 입장이에 처해 있는 자신을 보고, 가장 친한 친구와 나누었을 만한 위로의 말을 되풀이하기를 바란다. 아마도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너무 자책하지 마." 다음번엔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거든, 당신 자신에게도 똑같은 말을 해 주기를 바란다.
p 112
부정적인 자기 대화는 '진실한지도, 유익하지도, 친절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과 소통하는 행위'로 정의된다는 점을 살 터보며 여정을 시작했다.
이처럼 나는 자신과 부정적인 대화를 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비난하는 것은 나를 망가트리는 일인 것 같다.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사람처럼 아껴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