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미니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
M. J. 알리지 지음, 전행선 옮김 / 북플라자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이를 할 때, 술래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마다 나오는 소리가 바로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로 시작하는 일종의 구호인데 이런 구호는 당연히 서양에서도 존재한다. ‘이니 미니 마이니 모’로 시작하는 이 구호는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어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내가 술래가 될지 안 될지를 숨도 쉬지 않고 기다리는 순간에 들리는 이 구호가 한 영국 신인 작가의 데뷔작에서는 생과 사를 가르는 운명의 구호로 바뀐다.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차를 기다리던 한 커플이 납치를 당하고 여자만 돌아오는 사건이 발생한다. 2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마치 유령처럼 변한 그 여자로부터 범인의 엽기 행각을 들은 영국 사우스샘프턴 경찰들은 처음에는 의심을 하였지만 폐쇄된 수영장에서 남자친구의 시신을 발견하고 나자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첫 번째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파악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직장 선후배 사이인 남자 두 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헬렌 그레이스 반장과 팀원들은 이 엽기적인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스릴러와 추리 소설들 속에서 다양한 종류의 범행 수법들이 등장했지만 M.J.알리지의 [이니미니]에 등장하는 범인의 수법처럼 독창적이고 엽기적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인 느낌이다. 생존을 위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갇힌 두 사람이 생사의 선택을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이 범행 수법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으려 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본능이기도 하지만 죄책감 역시 인간이 가진 본성 중의 하나이다. 살아남은 희생자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전에 살인자의 놀이에 놀아났다는 자괴감과 가까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드라마 제작자 출신답게 작가는 이런 외면하고 싶은 작품 속 상황으로부터 독자들이 한 시도 눈을 돌리지 못하게 극적인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작은 단서조차 남기지 않는 범인과 그 범인에 의해 납치된 사람들,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수사에 임하는 사우스샘프턴 형사들 그리고 사건 주변부에 머무는 이들이 한꺼번에 뒤엉켜 이 사건의 끝이 어떻게 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마치 베스트셀러 몇 권을 이미 쓴 경력이 있는 중견 작가처럼 M.J.알리지는 능수능란하게 사건 전개를 보여주고 독창적인 형사를 창조해냈다. 사우스샘프턴 중앙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을 이끄는 헬렌 그레이스는 그 누구보다 빠른 승진을 하며 남성들이 득실대는 직장에서 살아남는 강인한 여성이다. 키 크고 근육질 몸매에 바이크를 타는 것으로 묘사되는 이 독신 여형사에게는 은밀한 사생활이 있다. 하지만 그것인 쾌락을 추구하는 동기와는 동떨어져 보이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그녀의 숨겨진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 수밖에 없다. 헬렌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여형사 찰리와 이혼과 양육권 다툼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마크 수사관 역시 헬렌 못지않은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이다. 너무 늦게 작가로 데뷔한 것이 억울한 것인지 몰라도 작가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를 연이어 출간하였다고 한다. 베테랑과 같은 면모를 보여준 데뷔작이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후속작품들이 빠른 시일 내에 번역 출간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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