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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왜
이렇게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사는데도 나라마다 부의 차이가 많이 나는 지 그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어떤 국가의 국민들이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다른 국가의 국민들은 한 끼 식사 걱정을 하며 살고 있다. 이런 세계 여러 국가들의 재정적 차이와 양극화는 경제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한 사안일 것이다. 마흔 살 전의 탁월한 경제학자에게 주어지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와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의 정치․경제 전문가인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함께 쓴 이 책 역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압도적인 두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히 피상적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저자들이 여러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 명의 저자들은 15여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안에서 여러 국가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이론을 추출해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저자들이 소개하고 있는 지역은 담장 하나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노갈레스 시이다. 담벼락을 기준으로 북쪽을 바라보면 미국 샌타크루스 카운티에 있는 애리조나 주 노갈레스 시가 있다.
이 지역의 연평균 가계 수입은 3만 달러 정도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학교에 다니며 대부분의 성인들이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국가로부터 다양한 서비스를 받으며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반면에, 몇 걸음 되지 않는 담벼락 남쪽의 지역은 멕시코의 소노라 주의
노갈레스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북쪽 지역 주민들의 3분의 1수준의 가계 수입을 벌며,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공공서비스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평균 수명은 북쪽 주민들에 비해 짧다. 이렇게 단 몇 걸음 차이 나지 않는 두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이렇게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를 저자들은 제도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북쪽 노갈레스 지역은 미국에 속한 지역이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의 경제 제도에
의해서 움직인다. 민주주의 과정으로 지역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관리자들이 뽑히며, 주민들을 위한 여러 복지 제도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바로 미국이
가진 제도의 힘인 것이다. 이런 미국과 멕시코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생활수준 차이는 일곱 배 정도 난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국가들과에 비해서
양호한 편이다. 페루나 중앙아메리카 지역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들과 비교하면 이 차이는 훨씬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를 저자들은 우리가 쉽게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치 및 경제 제도의 차이라고 답하고 있다. 모든 사회는 국가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며 집행하는 정치 및 경제적 규율에 따라 제 기능을 수행한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의 정치와 경제
시스템이 국가와 그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저자들이 내놓은 세계 불평등 이론의 핵심은 결국 제도의 결정권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세계 불평등이 해소되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들은 일단 어느 한 사회가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된
이후에는 그런 경향이 지속되는 관성을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사회주의나 독재 정권이라는 정치적 제도를 도입해서 만들어진 한 사회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다른 제도나 시스템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경향이 지속되는 관성 때문에 더욱더 그런
제도적 특성을 강화하게 될 것이고 정치나 경제는 물론 사회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순히 그런 정치 및 경제 시스템에 불신이나 반대가
그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이런 점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 시스템으로 이득을 보는 계층이 시스템의 상위에
위치해 있다면 이런 관성은 더더욱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시스템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운영자가 필요할 것이고 그런 운영자가 시스템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면 시스템 변화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질 것이다.
어쩌면 이런 제도에서 오는 국가
경제의 흥망의 예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남한과 그리고 저 삼팔선 넘어 자리잡고 있는 북한이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저자들 또한 잘 알고 있으며 이 책 3장인 <번영과 빈곤의 기원>에서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서술하고 있다. 1950년
6.25전쟁 이후 반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서 남한과 북한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 남한은 성장을
계속하고 북한은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겨우 반세기 만에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두 나라의 소득 격차는 무려 열 배까지 벌어졌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런 차이가 일어난 이유는 문화나 지리적 요인이 아닌 바로 '제도'에 있다. 저자들은 나라마다 경제적
성패가 갈리는 이유가 제도와 경제 운용에 영향을 주는 규칙,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인센티브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앞서 저자가
성공적인 성장을 이룬 국가의 예로 든 미국과 우리나라는 일반 대중이 경제활동에 참여해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며 개개인이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는 포용적 경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포용적 경제 제도란 사유재산이 확고하게
보장되고,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공평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우리가 원하는 자금을 출자해서 사기업을 만들고 그로 인한 이익을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바로 이런 제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한
계층의 소득과 부를 착취해 다른 계층의 배를 불리기 위해 고안된 제도를 착취적 경제 제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결국 국가가
어떤 제도를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국가의 흥망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이런 제도적 개선과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의 계층이 자신들의 영구적인 이익을 위해서 나머지 다수를 희생시키고 착취하는 한 절대로 그 국가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너무 당연한 소리를 당연하게 하고 있다고 말할 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 당연하다고
정의되는 명제들 또한 오랜 시간 연구의 결과 끝에 증명되어온 것들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저자들의 이런 노력은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