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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문학 - 넓게 읽고 깊이 생각하기
장석주 지음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꾸준히 거론되는 화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인문학을 대학의 여러 전공들 중의 하나로만 국한시켜서 인문학 본연의 의미와 가치 자체를
축소시키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인문학은 단순히 밥벌이를 위해서 선택하는 대학 전공들 중의 하나가 아닌 우리 인간의 삶에서의 사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책을 쓴 장석주 시인이야말로 일상에서 인문학을 탐색하고 실천하며 스스로 사유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간 천 여권의 책을 사서 읽는다는 저자에게 있어서 책을 읽는 행위는 그저 남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한
취미 활동이 아니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통해서 삶의 양식을 얻는 저자는 독서는 곧 삶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런 저자의
인문학적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일상을 이루는 작은 요소 하나 하나와 책을 연결시켜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일상에서 인문학을 구하는
것이 전혀 어렵거나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증명하고 있었다.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부터 시작해서 김찬호의 [돈의
인문학]까지
이 책에 실려 있는 53가지의 이야기들은 우리 인간이 끊임없이 사유해야 할 주제들인
기다림, 망각, 고백, 자본, 채식주의자, 사랑, 결혼, 외로움 등등을 품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제는 '기다림'이고, 이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사뮤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로 풀고 있다. 두 나그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이 희곡만큼
'기다림'이라는 주제와 딱 어울리는 문학 작품도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 고도가 누구인지 또 고도를 왜 기다리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기다린다라는 행위 그 자체에 얽매여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저절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칸 영화제 대상작인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영화 속에서 극장 영사기사인 알프레도는 첫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토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어느 아름다운 공주에게 반한 기사는 사랑을 고백하고, 그 고백을 들은 공주는 자신을 천일동안
기다려 준다면 사랑을 받아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주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병사는 마지막 하루를 남겨두고 공주를
떠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그 병사가 공주를 왜 떠났는지는 영화 속에서 설명되지 않았지만, 병사 역시 왜 기다리는지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린
기다림을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렇게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나그네와 병사처럼 어떤 것을 기다린다. 처음에는 기다린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고 의미있는 것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는 퇴색되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는 이유조차 망각한 채 오로지
기다리기 위해서 기다리는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뮤엘 베케트의 희곡만큼이나 나에게 익숙했던 책은 바로 윌리엄 파워스의 베스트셀러
[속도에서 깊이로]였다. 요즘 심심치않게 서점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오는 책들이 느림을 찬양하는 서적들이다. 산업화 시대와 정보화시대에 절정에
이른 속도의 미학은 여기 저기서 깊이의 부재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시 느림으로 회귀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남자의 정자까지 거론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있어서 빠른 속도가 공헌한 것들을 인정하고 있다. 만약 기술의 빠른 발전과
정보의 빠른 흐름이 부재했다면,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미개한 수준에 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빠른 것과 함께 깊이도 있어야 한다는
바로 이 것일 것이다. 어떤 것 안에 뚜렷한 컨텐츠가 없다면 아무리 빨리 전달될지라도 그저 한 번의 소비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까지 명작이라고 일컬으는 책들이나 음악들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인고의 시간을 거쳤는 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쳐 끝까지
살아남는 것들에는 분명 '깊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책을 계속해서 읽어 내려가면서 느꼈던 한 가지는 이 책에 실린 책들 중에서 먼저 읽어
본 책들과 관련된 이야기에 몰입이 더 잘 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 책의 자세한 내용들과 읽었을 당시의 느낌을 머리가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은 곧 미처 읽어보지 못한 이 책에 실린 고전과 명저들을 하루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자기 재촉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나름대로 편식하지
않고 많은 책들을 읽었다고 자부하던 나였음에도, 이 책에서 저자가 추천하는 책들의 반의 반도 읽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매우 부끄러웠다. 그리고
취미 활동이라고 국한시키지 않고 자신의 삶 속에서 책을 거침없이 읽는 저자가 정말 부러웠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사유가 일어나고 삶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 인문학적 삶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저자가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쓴 것처럼 어떠한 형식이나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나의 생각을 펼치는 것
그것이 철학적 사유이자 인문학적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