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곽재식 지음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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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국내에서 사이언스 픽션(SF)은 꽤 오랜 시간 소수의 독자들만 즐기던 장르로 인식되었지만 최근에는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대중적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의 사이언스 픽션 장르에서 한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는 작가들 중 한 명이 바로 곽재식이다. 카이스트 시절부터 꾸준히 소설을 썼던 그는 지금까지도 과학을 바탕으로 한 장편과 단편을 내놓고 있다. 이번에 나온 소설집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우리들의 헌혈 행위를 독특하게 분석한 표제작를 비롯한 총 열 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개인적인 베스트 3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상한 녹정 이야기>, <슈퍼 사이버 펑크 120>, <판단> 이 세 개의 단편을 답하겠다. 먼저 <이상한 녹정 이야기>는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녹정이라는 요괴를 현대의 이야기로 저자가 확장시켰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이제는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 올림픽 개막실 날, 회사 선배가 가게에 방문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전개가 어떻게 될지 전혀 가늠이 안 된다는 재미가 있다. 안면 인식 프로그램 개발부터 신라 시대 최치원의 깨우침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개 방식은 의외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판타지와 과학이 뒤섞여 마침내 등장한 충격적인 결말 역시 마찬가지이다. 좋은 단편이 가진 조건들 중 하나가 장편으로 확장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상한 녹정 이야기>는 결말 뒤에 엄청난 사건들이 연달아 등장할 것 같은 묘한 매력을 가진 단편이었다.


 

<슈퍼 사이버 펑크 120><판단>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현실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슈퍼 사이버 펑크 120>은 관공서 직원이 주인공 김 박사에게 정보 이용 세금 정산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는 전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겨우 2시간이란 제출 시간이 주어진 김 박사는 최선을 다해 서류를 출력하려고 한다. 그러나 보안 프로그램 설치라는 장벽을 시작으로 로그인으로 까지 가는 험난한 여정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서류를 제출하거나 신청해야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분노와 당황 그리고 좌절감이 고스란히 읽는 나에게로 전해졌다. <판단>은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김 대리가 상사인 이 과장으로부터 설교 아닌 설교를 듣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상대방이 숨 막힐 정도로 압박을 가하는 이 과장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현실 속 누군가가 한명 쯤 떠올려졌을 것이다.

 


환상문화웹진 거울에 꾸준하게 올린 글들을 엮은 이 소설집은 곽재식 작가의 주력 분야인 SF뿐만이 아니라 미스터리, 블랙 코미디, 일상물 등 다채로운 색채를 엿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였다. 웹진 거울에 저자가 글을 올린 목적은 조회 수나 원고료가 목적이 아니었다는 작가의 말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그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자유만큼이나 창작자에게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작년에 한 케이블 채널 예능 프로그램에 초대 손님으로 등장한 작가님을 본 적이 있다. 그 방송을 보면서 작가님의 집필 원동력이 멈추지 않는 지적 호기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재기발랄하고 상상력을 자극할 이야기들을 가지고 돌아올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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