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여름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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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악몽 속에서 묻힌 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다, <무죄의 여름>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전쟁이 끝난 직후 독일은 소비에트, 미국, 영국의 관리 구역으로 나뉘어서 통치를 받고 있었다. 전범국이자 패전국인 독일에서 거주하는 이들의 삶은 당연히 구석구석 망가져 있었고, 이 소설의 주인공 소녀 아우구스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 중에 부모와 집을 모두 잃은 아우구스테는 미국 병사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 육군 헌병대가 집으로 들이닥쳐 그녀를 데리고 소비에트 통치 구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도브리긴 대위와 베스팔리 하사를 만나고 크리스토프 로렌츠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치약에 든 독 때문에 죽은 그는 사실 아우그스테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던 은인이었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을 하고 부인인 프레데리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우구스테의 이름이 나온 것이었다. 의문점이 많은 이 독살 사건은 아우구스테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그 여정 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전쟁의 악몽을 떠올리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속 유럽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 [전쟁터의 요리사]들로 이미 재능을 인정받았던 후카미도리 노와키의 또 다른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전쟁과 유럽을 바탕으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번에는 한 독일인 소녀를 중심으로 묵직한 서사가 장편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테는 독살된 은인의 아내인 프레데리카와 그녀를 심문한 도브리긴 대위가 공통적으로 언급한 에리히라는 청년을 찾으러 나선다. 에리히는 프레데리카의 조키였고, 도브리긴 대위는 그가 반란분자라고 의심한다. 아우구스테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를 찾으러 바벨스베르크로 떠난다. 일상이 무너지고 모든 것들이 폐허가 된 나라에서 피붙이 한 명 없이 혼자서 살아가던 아우구스테에 이번 사건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작가는 서둘러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아우구스테의 과거와 현재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전쟁 중에 겪었던 끔찍한 일들과 전쟁이 끝나고도 크게 달라지 않은 그녀의 삶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전쟁의 무서움을 재확인하게 된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반전과 사건의 진상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자가 이 책을 완성한 이유는 사실 첫 머리에 소개된 작가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침략과 학살을 자행했던 나라임을 기억하라는 뜻도 이 글에 담았다고 고백한다. 과거에 일어난 전쟁들로부터 국가의 야욕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배우고 또 배웠다. 집단의 공격성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밑바닥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까지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겪으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잊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한 상대방이 가진 이기적이고 괴물 같은 모습에 분노하고 좌절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끝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이 소설 주인공 소녀처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황폐해질 것이다. 무너진 인간성을 화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하고 상처를 보듬어주어야 한다. 물론 그전에 전쟁을 일으킨 국가와 집단으로부터 사과를 분명히 받아야 할 것이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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