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라 그린 1 - 청결의 여왕 시공 청소년 문학
버네사 커티스 지음, 장미란 옮김 / 시공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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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장애는 강박 및 관련 장애의 하나로서,
강박적 사고 및 강박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질환이다.
잦은 손 씻기(hand washing),
숫자 세기(counting),
확인하기(checking),
청소하기(cleaning) 등과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강박적 사고를 막거나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일시적인 편안함을 제공할 뿐 결과적으로 불안을 증가시킨다.

- 네이버 지식백과



"네 엄마는 침대맡 탁자에서 <전원 하이킹>이라는 잡지를 집어 들었어. 눈을 감고 잡지를 휘리리릭 넘기다가 아무 데나 짚었지."

"엄마가 눈을 떠 보니 손가락 끝에 '젤라'라는 단어가 있었어. 그렇게 된 거란다. 그래서 네 이름이 젤라가 된 거야."

"미안하지만 그렇단다. 캠핑은 간 적도 없어. 네 그 유치한 환상들을 깨뜨려서 미안하다만, 사실 널 갖게 된 곳은 뎃퍼드의 눅눅한 임대 아파트란다. 바퀴벌레도 있었지.”


정체감은 주관적 경험이다. 그것은 세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나만의 소망, 사고, 기억과 외모를 갖는다는 것. 이름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된 정체성의 일부다.  젤라 그린. 열두 살까지만 해도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인 환상을 갖게 해 주었던 이름. 그러나 자신의 탄생에 대한 진실과 맞닥뜨린 순간, 소녀의 정체성은 산산조각 난다. 낯선 도시에서 마법처럼 나타났던 존재는 사라지고, 바퀴벌레가 출몰하는 눅눅한 임대 아파트에서 잉태되어 잡지 속 '아무 데나' 짚었던 곳이 이름이 된 한 소녀의 강박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균 경보, 오염 경보, 간격 유지, 확인 또 확인. 왼손과 오른손을 31번씩 씻고, 머리카락을 31번 빗질한다. 계단 맨 위 꼭대기에서 128번 뛰고, 옷장 속 옷의 간격은 4cm로 유지한다. 그리고 주전자 불은 꺼져 있는지, 뒷문이 잠겨있는지, 조리대에 음식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는지 10번씩 확인한다. 강박증은 그저 어떤 생각에 얽매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 않으면 불안의 낭떠러지에 내몰리는 심각한 장애였다. 그러나 젤라 곁에는 안전 기지가 되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31살에 암으로 죽었고, 엄마의 죽음 뒤 새엄마와 재혼한 아빠는 어느 날 사라지고, 새엄마는 늘 외출 중이다. 늘 불안에 떨며 손을 씻고, 뜀뛰기를 하고, 옷의 간격을 유지해야만 하는 젤라는 허공에 부유하는 먼지 같은 존재였다.

열네 살. 새엄마의 손에 떠밀려 꼼짝없이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할 뻔한 젤라를 구해 주었던 것은 옆집에 사는 헤더 아줌마였다. 아버지의 학대로 자해를 일삼는 카로, 신경안정제가 필요한 리브, 거식증이 있는 앨리스, 그리고 아버지의 차에 치여 엄마를 잃은 후 말을 잃어버린 소년 솔. 젤라는 병원 대신 가게 된 '포레스트 힐 하우스'에서 자신처럼 다양한 강박증세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젤라는 그곳에서 친구들과 울고 웃으며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 주고받는다.

우리는 상대의 아픔을 생각하다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고 상실의 아픔을 나눠야 할 시간에 서로를 위한다는 이유로 문제를 회피하거나 외면한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후에 생기는 것은 어느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마음의 구멍이다. 사람들이 엄청난 양의 음식물이나 약물, 술, 따위로 메워보려 해도 점점 그 구멍은 메울 수 없게 된다. 젤라는 강박 증세가 완화되어 포레스트 힐에서 나와 자신처럼 치료를 받으려 떠난 아빠와 재회하고 엄마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나누며 엄마를 맘껏 그리워한다. 하지만 한 번 생긴 강박증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1권이 젤라가 강박증이라는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였다면 2권은 강박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꿋꿋이 꾸려나가는 젤라의 모습이 그려진다. 젤라는 이성에 호기심이 왕성해지는 사춘기 여느 아이들처럼 인터넷 채팅 사이트 '마이소터스페이스'에 가입해 메일을 주고받으며 설렌다. 그리고 이성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절교했던 프랜과의 재회 역시 그 나이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조금은 평온해진 젤라의 삶이 다시 수렁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카로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카로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은 여전히 젤라 가족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요소를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한 번 상처를 드러냈다고 해서 가족의 슬픔이 치유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처투성이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면에 상처를 들추고, 패배감에 휩싸이며, 유혹 앞에 무너지면서도 자신의 정신과 몸을 통제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지만 젤라가 솔과 아빠에게 손을 내밀듯, 다시 내 손을 뻗어야 하는 순간은 나를 위한 순간이 아니었다. 이상한 기분이다. 내게 병을 준 것도 사람이고, 내 병을 극복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니. 결국 슬픔은 사랑으로 치유된다. 문득 젤라가 남들하고 똑같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이 나눌 수 있는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 젤라는 그런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나약해서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은 그래서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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