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그림자들 마지막 왕국 시리즈 1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득히 먼 옛날은 지구의 탄생을 포함하기는 하나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엄마의 뱃속에 있기 전부터 있었을 것 같은 개체도 똑같이 그러하다. 수십억 년이 흐른 후에서야 생명체가 등장했으나 그 또한 알 길이 없다. 개체들의 결합에 수정은 어둠을 걷어내는 일이었으나 그 또한 알 길이 없다. 그저 아득히 먼 옛날은 지구의 수십억 년과 개체의 자궁 속에서의 한 달과 그저 다를 바가 없다. 생명체가 진화를 거쳐 그저 움직이는 동물들이 번성했을 때나 양수 속에서 꿈틀거리며 듣기만 하는 감각체는 그저 같을 뿐이다.

양수 안의 개체가 아득함을 느끼는 시점은 비로소 인간이라는 것이 호모라는 틀로 지상에 출현했을 시점과 올곧이 같다. 이미지는 저녁의 어둠이 내린 오솔길과 같고 새벽의 날 밝기 전의 짙은 안개와도 같은 것, 이미지가 세상의 혼돈을 휘젓고 다닐 때는 이미 열 달이 되었고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어느 구석에서 홀연히 세상을 휘젓고 다닐 때와 다를 바가 없다. 시간은 이렇듯 뒤섞이며 도처에 존재했으며 사간의 역행과 순행은 이렇듯 동질성의 선상에 존재한다.

울부짖으며 세상의 공기를 흡입했을 때도 이미지만이 존재했고 언어가 글이 되어 남지 않았던 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 망각도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온갖 추측은 혼미를 일으키며 그저 세상에 주저앉았으니 그가 본 세상과 호모 사피엔스가 본 세상은 아주 조금 언어를 통해 알려졌을 뿐이다. 글이 써진 세상이 시작되었을 때, 아니 적어도 그것이 현재의 시점에서 파헤쳐 졌을 때 과거는 어렴풋이 되살아났고 글쓰기는 대화와 무관해진 낯선 언어로서 존재를-위한-언어가 되어 버린 언어일 뿐이다. 신화가 세상의 판을 오랫동안 뒤흔들었으며 실재계는 결코 현상계의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이 없는 한 개체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을 때도 한참을 지나서야 알게 되었을 뿐이다.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떠도는 그림자들은 시간을 들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망각과 기억의 오래된 조각들을 현재로 끌어내는 힘겹고, 생각으로 하고, 몸을 굽히고, 언어 자체는 사용하지 않고, 언어로 하는 작업이다. 언어 뒤편에 존재하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자연 언어에 반하는 것으로서 동시대의 왕국이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왕국이다. 예측 불가능한 삶을 살면서 현재에 제 얼굴을 들이미는 게 그에게는 과거이다. 그럴지라도 과거는 경련의 떨림이나 어둠 속에서는 소망으로 넘쳐나므로 어둠은 살짝 빛이 보이는 길이며 가시지 않은 어둠 속의 안개이며 휘몰아치는 바람이다.

신화의 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은 글이 용솟음쳤을지라도 실재와 인식이 다름일 뿐 이미지는 어디에도 어느 때에도 존재해 왔고 예술만이 그 존재성을 보편화시키려 하였을 그 시기는 영원성이 위협받는 파열에 살고 있을 뿐이다. 누가 감성을 논하리오? 누가 감성을 표현하지 않았는가? 다만 이미지가 올곧이 묘사되지 않을 뿐 역사 속의 인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체도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의 속성을 모를 뿐이다.

현재와 과거, 아득히 먼 과거를 넘나들며 작가는 시간의 영원성과 시간의 멈춤과 시간의 뒤섞임을 얘기한다. 이미지는 언어에 앞서며 그 왕국이야말로 실재하는 왕국이며 기억과 망각이 뒤섞여 버린 시간의 혼돈은 언어일 뿐이다. 저녁이 어둠이 내린 길, 어슴푸레 다가오는 동트기 전의 짙은 안개, 휘몰아치는 바람은 시간을 혼돈 속에 몰아넣으며 우리 안에 있다고 작가는 뒤섞여 버린 인류의 연대기를, 혼돈 속의 개체의 일생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지식이 방대하고 이를 신비로 담아냈으며 이는 동서양을 아우른다. 인도, 중국과 일본의 작가도 등장하는 것이 이채롭다. 이들은 고대와 중세적 사람들인 것에 또한 놀랍다. 작가의 화두는 단연 어둠이다. 그래서 빛이 난다. 바로 아우라인 듯싶다.

, 아득한 혼돈 속에서 어둠이 존재하매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은 우리를 감싸 안으며 시간을 흔들어대고 언어로서의 설명 불가해한 이미지를 그래도 언어로 가까이 가고자 하는 작가의 여행은 현재에 있음이라!

나 꿈꾸고 싶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