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철학
조슈아 알렉산더 지음, 천현득 옮김 / 필로소픽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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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이라는 용어는 얼핏 보면 과학에의 실험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논하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글자 그대로 표현하면 실험을 통해 수행되는 철학이다. 여기서 실험이라는 것은 사실상 설문 조사 등의 표본 조사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즉, 어떠한 가상적인 예제를 무작위 또는 작위(예로 서양인과 동양인, 여자와 남자 등)의 사람들에게 던지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인데 주로 도덕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하여 따지자는 철학이다. 물론 이렇게 철학을 수행하자는 이러한 풍조가 있기도 하고 이것이 발현된 지는 매우 최근으로 철학의 새로운 사조인 것 같다. 다만 이것이 철학인지는 좀 의문은 드는 것이, 하고자 하는 것과 결과를 바탕으로 논하고자 하는 것이 꼭 인지 사회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유야 어떻든 왜 이런 철학이 생겨났는지를 얘기하는 게 좋겠다. 기존의 철학은 철학자가 자신이 논증하려 하는 명제라는 것을 자신의 직관을 바탕으로 한다고 한다. 이때 직관이 참인지 거짓인지 아니면 부분적으로 포함하는지의 문제 제기를 실험 철학은 표출시킨다. 즉, 직관일지라도 참이라는 당위성은 없으며 여러 가능성을 바탕으로 두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직관에 의존한 철학적 서술보다 좀 더 보편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철학을 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위 표본 조사가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증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이들이 주장하는 직관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부분을 예를 들어 정리해 보자. 흔히 인간의 자유 의지와 도덕적 책임은 인과적 결정론과 양립되지 않는다는 데서 철학적 직관이 시작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맞다. 즉 인과적 결정으로 도덕적 책임을 반드시 묻는다는 인간의 판단이다. 그러나 도덕적 책임을 지울 때 반드시 인과적 결정으로 판단해야 하는지의 판단이 애매한 경우도 물론 존재한다. 이때 양립 불가의 원칙은 깨지게 된다. 이를 알아보는 방법으로 상황이 매우 애매한 예시를 들어 이에 대한 도덕적 책임 여부를 묻는 설문 조사를 시행하여 이러한 양립 불가능에 바탕을 둔 철학적 직관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실험 철학의 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 직관이라는 것이 철학에서 참이어야 할 당위성에 의문이 든다. 직관이 참일 필요는 없을 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직관 하에 논증을 펴 나가는 여태까지의 철학자들이 자신의 직관이 분명히 참이라는 바탕 하에 철학 사상을 펴낸 것 같지 않다. 철학은 참을 찾아내려 하는 자연과학과는 달리 비록 논증적으로 기술되고 어떤 필연성을 담보로 세워 보편성으로 확장하여 자신의 얘기를 논증적으로 끌고 나갈지라도 반드시 참이라는 명제 하에 사상이 펼쳐지지도 않을 뿐만이 아니라 그 논증 자체가 수학처럼 논리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철학자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철학자들은 그 논증을 무슨 수를 써서든 증명으로 끌고 가려 해 왔지만 그 직관이라는 것이 참일 필요는 없고 대부분의 경우 참이 아닐 확률이 더 크다. 그럼에도 철학적 사상이 큰 위치에 있는 것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글로서 논증을 수행하려 하기 때문인데 비록 완전 증명은 아닐지라도 그것에 가까이 가려 하는 노력 그 자체가 너무 처절하여 철학자의 문장 하나하나는 허투루 써지지 않으며 함축적인 의미의 적확한 단어들의 나열이 수반된다. 여기에 인류 지성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실험 철학을 정의하기 나름이겠으나 인지 사회학 등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직관이라는 것을 실험을 통하여 정확히 파악하려 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볼 수도 있고 결과를 위해 표본 조사를 행하는 것으로서 다른 여타 학문과 다를 것이 없을 것처럼도 보인다. 이 부분이 중요할 수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소위 융합(또는 통섭)이라 하여 학제 간 관련 연구의 필요성이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이는 학제 간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 더욱더 고양된다는 바탕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융합을 다른 면으로 뒤집어 보면 학문들이 글자 그대로 융합되어야 하는 면도 존재할 수도 있다. 융합되어야 하는 것이란 개개의 학문으로서의 창출성의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새로운 지식의 측면에서 개개의 학문이 추구함으로 창출되는 지식이라는 것이 한계에 다다른 측면이 융합을 촉발시킨다는 것이다.

이 의문은 지식의 크기가 유한하다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철학도 자연과학도 인간의 인식 범위 내에 있는 것만이 새로운 지식이 될 수 있으므로 만약 지식의 크기가 유한하다면 언젠가는 한계점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실험 철학이 등장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철학 한다고 하지만 인지 사회학의 방법론을 쓰고 있다. 사회과학의 어떤 학문 등과 이미 융합의 단계에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식의 폭발적 팽창으로 극도로 세부화된 학문들이 지식의 유한성의 임계점에서 다시 융합되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학문의 세분화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면 정체되거나 그 역의 방향인데 지식의 유한성이 맞는다면 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학문이 융합되어 그 수가 줄어드는 과도기에 살고 있음을 실험 철학이라는 분야가 예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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