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처럼 떠나다 - 청색시대를 찾아서
박정욱 지음 / 에르디아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색으로 보는 여행이라……. 이제껏 보아왔던 여행기와는 한결 색다르게 다가왔다. 피카소가 머문 곳은 멋진 여행지라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하던데 그가 머물렀던 파란 스페인,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은이는 피카소가 그린 청색시대의 깊이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의 고향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아, 여기서 그림에 문외한인 나의 무식의 깊이가 드러난다. 초보 그림 감상쟁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추상화. 그 추상화의 대표주자 격인 입체파 화가 피카소. 감히 친해질 수 없는 관계도에 지레 겁먹고 외면하기만 했는데 딱 맞닥뜨리고 말았다. 청색시대가 무슨 그림일까, 라는 궁금증에 검색을 해봤다. 이런! 그림 제목이 아니라 피카소가 1901년부터 1904년까지 그림을 그린 시기를 일컫는단다. 이 시기에 피카소는 주로 검푸른 색이나 짙은 청록색의 색조를 띤 그림을 그렸는데, 이 어두침침한 파란색은 스페인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본다고 한다.

 

피카소의 청색시대 그림 몇 점을 찾아보았다. 별 한 점 밤하늘처럼 짙은 푸른색부터 새벽녘의 그 푸르스름함까지, 밝은 빛까지도 흡수해서 무거움을 더해주는 파란색의 향연이었다. 여기에 등장인물들의 표정마저 하나같이 우울하고 무겁다. 어린 아기부터 노인까지, 심지어 자화상에 표현된 자기 자신의 얼굴까지도……. 눈 먼 거지와 주정뱅이, 매춘부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들의 우울함과 외로움이 물씬 묻어난다. 어쩌다 붉은 정열의 상징인 스페인에서 이런 청색이 태어나게 된 것일까. 나 역시 호기심이 밀려왔다.

 

“사람은 여러 번 죽는 유일한 동물이다. 하루가 끝나는 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에 대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죽음과 고통에 대해 사색하고 걱정할 줄 모르면 하루가 끝나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없다. 고통을 받을 줄 알아야 비극이 슬플 수 있다. 따라서 비극은 인간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비극에 대한 감수성은 인간에게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할 줄 아는 감성이 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슬픈 감정, 고민, 죽음과 운명에 대한 사색은 인간 속에 있는 영혼, 곧 신의 모습이다. 비극 역시 인생의 한 부분임을 우리는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누구도 비극을 경험하지 않고 인생을 끝낼 수는 없다.”

 

나만 힘든 줄 알았다. 세상이 유독 나에게만 가혹한 것처럼 느껴졌다. 잘 풀리지 않는 인생에, 끊어질 듯 가느다란 희망 한줄기 붙들고 언제 나타날지 모를 뭍을 기다리며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는 기분에 절망하기도 했다. 이 글을 읽으며 피카소에게서 나를 본다. 피카소에게서 자신을 보는 지은이에게서 또 나를 본다. 나에게만 시련이 오는 것이 아니구나. 나만 고독하고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사람에게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은 기분이다.

 

여행기인줄 알고 집어든 책이 실상은 피카소 청색시대 그림 설명이 주를 이루는 책이었다. 지은이는 스페인을 여행하며 끊임없이 피카소를 떠올린다. 이 골목을 지나며 피카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해변을 보면서 피카소가 그렇게 느꼈겠구나! 저 담벼락을 보니 피카소의 그림이 떠오른다.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피카소의 그림 제목을 보며 수시로 그림을 검색할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가 언급하는 그림 한 장 한 장을 검색하면서 나 역시 피카소의 심정을 미루어 짐작해 보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던 피카소와 아주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보며 난해하기만 했던 피카소의 그림 또한 한 자락의 의미나마 엿볼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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