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는 괜찮다 - 그동안 몰랐던 가슴 찡한 거짓말
이경희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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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경희는 십오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엄마와의 전화통화를 기록해 두었다가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처음 제목에서 '에미'란 단어를 보고는 외국 여인이 주인공인 작품인가 보다, 라는 우스운 짐작을 했다. 책 소개를 보고나서야 ‘에미’가 '어머니'였다는 걸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사춘기를 보낸 여자들 대부분은 '엄마'란 말 한 마디만 꺼내도 눈물부터 고이기 마련이다. 가슴 먹먹하고 따뜻한 우리네 어머니 이야기를 읽어보려 한다.

 

지금 살아계신 할머니께서 이 책에 나오는 엄마와 비슷한 연세이다. 옛날 너희 할아버지가 이랬다, 너희 아버지가 저랬다, 네 엄마 시집오고 나서는 이런 일도 있었지……. 어쩌다 한 번 찾아뵈면 하시고 싶었던 이야기를 줄줄 꺼내 놓으신다. 어려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들어 이미 다음에 나올 말을 훤히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매번 똑같은 대목에서 웃음을 터뜨리거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뵈면 나 역시 매번 처음 듣는 이야기 마냥 귀를 기울인다.

 

엄마와 딸의 전화 통화이지만 엄마의 시점에서 기술해서 그런지 딸의 대답이나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딸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홀로 시골 외딴 마을에 사시는 엄마가 그날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담담히 들어주는 딸. 남들 앞에서는 쉽게 내비칠 수 없는 속내를 그대로 꺼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없어도 내 편인 딸밖에 없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밖에 살 수 없었던 세월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존재. 그래서 엄마는 딸 앞에서 솔직해지고, 그래서 딸은 엄마라는 단어 하나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얄미운 시동생과 동서, 눈에 차지 않는 행동만 하던 무뚝뚝한 며느리, 아들 손주 바라시는 시어머니, 노년에 중풍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내 얘기, 내 가족 얘기, 내 이웃 얘기들로 가득하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 따뜻한 아랫목에서 군고구마에 동치미 한 사발 앞에 두고 들음직한 이야기들. 30도를 웃도는 유월 초입에 난데없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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