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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9월
평점 :
공지영 소설을 늘 옳다. 헌데 이 책은 내가 도서관에서 3~4차례 빌렸던 것 같다. 읽으려다 못해 반납하고를 반복했던 것이다. 소설, 특히나 미사여구가 많은 소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한다.그래서 이 소설이 쉽지가 않았던 거다. 이번에도 빌린 책 중에 가장 마지막에 읽었다. 헌데 한 번 진입이 되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각 페이지가 한편의 운문시이고, 그것들이 모여 한 편의 소설이 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표현 하나하나 허투루 읽을 것이 없었다. 특히 은림의 유고일기로 시작되는 각 챕터, 이 형식이 참 좋았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천재라고 생각했던 적은 주요섭, 박지원 이 둘 뿐이었는데, 이번에 고등어를 읽으면서 우리 시대에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이 그냥 참 감사해졌다. 공지영 소설에 나오는 사랑이야기에는 늘 아픔이 있다. 그냥 술술 풀려나가는 로맨스가 아니다. 그늘이 있어 어둠이 한 데 어우러진 우울이 있다. 헌데 이번에는 시대적 아픔까지 담고 있어서. 더욱 무게감이 있었지만 그러했기에 더욱 좋았다.
문학에서는 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애틋함이 오래 남는 법이고, 그런 것들을 좀 더 선호하는데, 이 역시.. 그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어 뭔가 더 긴밀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노동운동에 대해 언급이 될 때.. 나와 동갑이었지만 한 학년 선배였던.. 선화선배가 생각이 났다. 말 그래도 동갑인데.. 선배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번은 한강에 같이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전태일 얘기를 꺼내면서 전태일이 한강이 흐르는 방향을 보고 자기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다는 점에 대해 놀랐다라는 걸 전해준 적이 있다. 가끔씩 왠지 모르게 나는 그 얘기가 종종 떠오를 때가 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류일 수도 있다는 것... 틀린 것일 수 있다는 것들을 생각할 때.. 대학 시절 나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내 친구들은 운동권이어서 그들이 하는 얘기들을 자주 듣곤 했다. 이 장면이.. 진짜 잊혀지지가 않는다. 데모 나가서 다치는 이야기, 그렇게 목숨걸고 데모했는데, 신문이고 방송이고 그저 어디 일대에서 교통 체증이 되었다는 한 줄 기사로 나오면 그것이 그렇게 속상하다는 얘기... 그런 얘기들 말이다. 근데 참 웃긴 것이.. 내가 애를 낳고서.. 그들에게 참 미안해졌다는 거다. 그 때 난 왜.. 방관자처럼 시대를 살았었나.. 가슴속에 원죄처럼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작가 후기를 보면 작가는 의무감으로부터 소설을 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80년대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이런 이야기들은 당신 외에 다른 소설가들이 글로 옮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아무튼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글마냥..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작가의 전유물이 아닌게 되듯이, ˝내가 나 하나가 아니고 내 글의 나의 글이 아니며 나의 이름이 나를 부르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게 한 것은 ..... 이제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80년대를 아파한 모든 젊은이들은 영원히 젊을 수 있으리라고... 왜냐하면 과거라는 시간이 꼭 흘러가 사라져 버리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알았게 때문이다.˝ 이런 언급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에 대한 사랑이 깊었기에 먼저 이 지상을 떠난 나의 지인들과 아직도 이 지상 위 한구석 한반도에서 자기자신만큼 이 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나의 소중한 친구들-생각해보면 테니스 하나 배우지 못하고 생각해 보면 연애 한 번 멋들어지게 한 녀석도 없는,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 폭력보다 위대하다는 걸 가르쳐준-과 한 번쯤 아픈 역사에 청춘을 상처입어본 그리하여 나이를 먹어도 아직도 젊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예전 나는 꼼수다 시절부터 공지영도 정치적 발언을 해왔던 것으로 안다. 시대를 바로잡고 싶던 청년들을 보고 왜 그 소중한 젊은 시절을 그렇게 보냈을까 하는 회의에 찬 시선에 대해 작품속 은림은 그들이 바로 ‘진짜‘라고 말을 한다. 그 진짜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 진짜들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조명도 받고 세상의 지지도 받는 시대가 왔다는 것에 대해서도... 참 감사했고..
암튼 작품이 내 삶과 연계되어 다가오고, 그를 통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그건 그만큼 작품이 훌륭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면에서 지 작품은 탁월하게 훌륭했다.
*책 속의 말말!*
1. 난 스물일곱이고 스물일곱 해를 살아온 힘으로 너를 사랑한다. 바람 부는 저녁에 널 사랑한다.
2. 난 여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욕심에 대해 우선 정직해야 하구.
3. 한강변에 나가 강물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죄스러운 시절이었다. 왜냐하면 그 한강이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에서 발원하여 홍천의 내린천을 지나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양수리에서 합쳐지고 양수리를 지나 팡당으로 팡당을 지나 잠실과 여의도와 노량진을 지나 서해로 이르기까지 그 물결에 스며들었을 민중들의 한과 땀과 눈물을 헤아려 본다면 그것은 결코 아름다울 수만은 없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스물한두 살의 나이에 강가에 나가서 강물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조차 죄책감을 가졌던 세대가 또 있을까? 강물이 그런데 하물며 사랑이야.
4. 다시 회복될 수 없는 것들을 빼앗겼던 사람들. 잃어버린 그들.. 아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의미를 그는 갑자기 느껴버린다. 그저라 그는 찬바람 속에서 목구멍을 타고 오르는 뜨거운 소주의 취기를 느낀다.
5. 그것은 환희의 빛살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 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 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떄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6. 바보 같은 게 런던 노동자들이 비참한 게 지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 노동자들이 돼지 우리 같은 곳에서 비비고 살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라고 연구를 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발표하는 거야? 세계의 끄트머리 한심한 나라의 학생으로 태어나서 무슨 세상을 구원해보겠다고 부모들 가슴에 못을 쾅쾅 박으면서 지랄들을 한 거야? 그래서 무슨 세상이 왔지? 어리석었어. 하다못해 그 시간에 운전이라도 배워 두었어야지. 영어 회화를 익히고 그도 아니면 테니스를 치거나 샤갈의 그림이라도 보러 갔어야 해. 뱃속의 아이까지 죽여가면서 이루어야 할 일이 대체 무엇이었단 말이니?
7. 그래, 슬프지. 기가 막힌 이야기야. 하지만 알아야 할 이야기이기도 해. 더 이야기해 줄까. 이제 와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든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 이제 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거라고. 적당히 빠져나갔어야 해. 나 하나쯤 어차피 대세를 바꿀 수 없다는 걸 현명하게 알아차렸어야 했다구 끌려가서 왜 고문을 견뎌? 대체 무엇 때문에 벌거벗겨진 채로, 하염없이 자신을 짐승처럼 느껴야 했던 거지? 어차피 고문 앞에서 굴복하고 말건데, 어차피 다 불 거면서 미쳐서 미쳐 버린 채로 제 똥을 주워먹으면서 다 불어버릴 거면서 대체 뭐하러.
8. 뭐가 그렇게 절망스럽나요. 뭐가 그렇게 어리석었었나요? 연애도 제대로 못해 보고, 우전면허 하나 따지 못하고, 고시공부 한 번 하지 못하고 보낸 젊은날이 그래서, 이제 와서 그렇게 안타까운 건가요? 그래서 이제 와서 우린 어리석었다고 우린 다 잃어버렸다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건가요? 고작 그의 회환이라는 게 이런 건가요? 우리가 애썼던 날들하고 바꿀 수 있는 게 고작 운전면허에요? 이니요,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잊지 않는 사람들, 죽어간 친구와 미쳐간 친구와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들... 그들이 곧 이 나라를 이끌어 가게 돼요. 이제 곧 우리 세대에게서 그래요. 형 말대로 우리 세대를 거치느라 운전면허 하나 따지 못했던 젊은이들이 그들이 대통령이 되고 그들이 예술가가 될 거라구요. 가짜들 말구 진짜들 그것두 권력이라구 운동하지 않는 불쌍한 친구들 주눅들게 하면서 거들먹거렸던 사람들 말구 이제 와서 어리석었다고 그 세월 전체를 매도하는 인간들 말구 진짜들 끌려가는 친구들도 있는데 미안해서 정말 미안해서 테니스채를 사 놓고 한 번도 치지 못했던 친구들, 고시공부하다가 도서관 밖의 집회 바라보고는 머리 싸매고 그날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 길거리에 누워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서로서로 사슬을 얽어매고 울어던 그 친구들
9.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 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르고 가장 정직하게 세상과 대결하려 했던 고귀한 영혼들의 저술
-올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
-저녁 아홉시가 지나면 천오백원으로 값이 내리는 이천원짜리 장미 한 다발
-나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
-그리고 열정적이고 용감무쌍한 하루하루
10. 그녀의 속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시간들은 뜨거워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11. 가끔씩 나는 나 자신에게 묻고 싶어진다. 너는 무엇을 바라는가 하고 부산 햇살과 흰신작로 멀리서 일렁이는 호수 파스스 떠는 진초록의 나뭇잎, 그리고 모란이 지는 그와 나와 또 미래 아이들의 뜰 돌정구와 연못 그리고 대청마루에 깃드는 서늘한 평화 그를 만나기 위해 몰래 밤거리로 뛰쳐나갔을 때 어느 집 담장에 핀 월계꽃 향기 모든 이들의 가엾음 모든 부당한 권력에 대한 분노 모든 여린 것들에 대한 사랑에 점점 무디어져 가는 네 자신을 경계하라. 다시금 다시금 경계하라 깊은 밤과 환환 낮 제 몸에 달린 천 개의 눈 중 단 한 개는 언제나 감지 않는 용처럼 마지막 한 눈은 언제나 가장 충혈된 채로 그 밤 잠 못드는 가장 고통스러운 이를 지켜보아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