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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평점 :
이와 내용적으로 연결이 되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워낙 관심있게 봤었고, 서천석, 오은영..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들의 글들을 읽은 터라, 내용 자체가 넘 궁금했었다.
나는 ‘케빈에 대하여‘에서, 엄마의 진정한 모성의 의미를 다른 시각으로 이해했고, 분명 이 책에서 또한 모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었다. 그만큼 이 가해자의 엄마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첫부분은 참 재밌게 읽었었는데..
중간 이후부터는
‘‘그냥, 내 잘못이다.‘고 말을 해!‘이런 생각으로 봤다.
물론 자기의 아이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이걸 두고 100% 엄마의 잘못이라고 단정적인 판단을 받는 것은 억울한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한 아이가, 사이코 패스인 친구를 만나 (친구 잘못 만나) 학살에 가해자로 가담을 했지만, 사실은 그 끝에는 그 아이의 자살이 있다. 그러니 ‘학살‘을 보지 말고 ‘내 아이의 자살‘을 봐달라. -내 아이는 학살을 하는 도중에도 4명의 아이를 살려줬다. 내 아이는 그런 아이이다-.˝ 이 이야기를 시종일관하고 있다. 설득되어줄 자세로 읽었ㄴ느데, 반감만 들고 말았다. 글쓴이가 사건 당일 아들이 경찰 총이 아니라, 자살로 생을 끝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아... 이 책의 내용의 초점은 ‘내 아이의 자살‘이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들의 죽음 앞에까지 아이한테 자기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구나.‘,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자기가 살 길을 찾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와는 상반되게 아들이 이런 학살을 저지를 만한 환경이 충분히 이 가정 내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엄마가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원인을 끊임없이 분석해봤다기 보다는 ‘나는 정말 내 아이를 사랑으로 키웠고, 우리 가정은 정말 문제가 없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너희들 가정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읽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니 아이를 키울 때에는 아이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아이를 있는 그래도 받아주려고 노력해라.‘ 이런 메시지로 연결이 되었으면 좋을 책이었는데, ‘그러므로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이 학살에 대해 아무런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것만 있다.
카톨릭계 출판사에서 자살 혹은 비행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쓴 책 ‘기다림 속에서 희망을 찾았습니다‘을 읽고 많은 엄마들이 아이의 자살 전조 증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지나쳤다가 나중에 깨닫고 후회한다는 걸 접한 적이 있었다. 그걸 읽고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아이는 신호를 보내는데, 부모가 이걸 크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다.‘ 충분히 이해했었다. 헌데 이 책은 엄마가 아이의 전조 증상을 파악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몇 차례 보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차를 부수기도 하고, 마리화나를 피기도 하고... 헌데 엄마는 아이가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시간들을 보냈다. 물론 아이에게 훌륭한 조언은 했다고 나와있지만... 여전히 공감은 안 간다. 정혜신 박사가 좌절+열공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살을 하려는 사람한테 ‘왜 죽니, 그 힘으로 살지.‘하면 그 사람은 자살을 한다. 이건 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는 느낌을 준다. 나한테 굉장히 의미가 있는 사람도 몰라주는데 세상이 알아주겠나 싶어진다.˝ 이 것이 저자가 그녀의 아들 앞에서 취했던 태도가 아니었나 싶다.
하여 나는 책을 읽을수록 피해자의 가족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철저하게 ‘내 아이들이 보인 광기의 원인이 내가 아니라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켜야만 했다.‘는 자기 방어적 태도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다른 입장으로 시선으로 책을 썼어야 했다. 나는 자신의 아들이 자기가 잘못키운 결과물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사람들한테 받은 상처를 언급하기 전에 자기 아들이 죽은 피해자의 부모들의 상처에 대해 더 깊이 이해를 하고,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살의 가해자일지라도 멀쩡한 집안 출신일 수 있다.‘ 정도 선에 머물렀었으면 신선하고 좋은 책이 될 수도 있었다. 헌데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부모가 아이들한테 좋은 부모라고 생각을 하더라도 자식 입장에서 아니라면 아닌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 마디로 답답했다.
내가 만약 피해자의 엄마였다면, 이 사람을 이해하려고 그리고 용서하려고 했던 피해자의 엄마였다할지라도.... 나는 이 책을 분쇄해서 저자한테 보냈을 것..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학생이 생각이 났는데, 중학교 반배치고사 때 전교 3등 정도를 했었던 거 같다. 초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엄청 잘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성적이 점점 떨어졌고, 몇 가지 문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학원 복도에서 병을 던져 깬다든지, 수업 시간에 이탈하고 근처 백화점에서 발견이 된다든지 하는 일이었다. 헌데 백화점에 가서 땡땡이 치는 과정에, 남자선생님한테 일부러 가서 자기 초경이 터졌는데,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서, 친구랑 약국에 다녀와야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간 것이었다. 일단 어린 아이가 이런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놀랐고, 그때 당시만 해도 수업 땡땡이를 치는 아이는 그 아이가 유일무이했기 때문에, 아이 어머님을 학원에 불러다가 상담을 했다. 이 아이는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담 치료가 필요한 것 같다고.... 그때 당시 우리 학원은 퇴원생 관리가 강사의 역량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떠나가는 아이를 붙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 아이는 진짜 학원에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헌데 정말 놀랐던 건 어머님이 정말 좋으신 분이셨고.. 이 아이는 집에서 밤 12시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착한 딸이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이의 비행을 알리가 없는 구조였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이 가족의 작은 비극을 마음에 담아뒀었다. 아이는 엄마 앞에서 자신의 가장 지랄스런 면모들을 보이는 것인데, 이 아이는 엄마 앞에서 그러지 못했다. 가식적인 자아를 역설적으로 가장 편한 관계여야하는 엄마 앞에서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밖에서 비행적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책에서 감동적이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한테 저자를 이해한다고, 저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주고싶다고 연락을 해왔던 많은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직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줬던 대학 총장의 인격.. 또한 감동적이었다.
‘미국 사회는 이런 사회구나..‘ 오히려 미국 사회에 대해 감동을 하게 되었던 책.
이 책의 추천의 말 중 박찬욱 감동의 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글쓴이가 이토록 솔직해주었으니 읽은 이도 그래야 예의겠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책을 다 읽고도 그때 콜럼바인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가 없다. 멀쩡해보였던 아이가 어떻게 해서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어떻게 해야 그런 일을 막을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못 배웠다. 알 만한 건 이 책을 읽어도 그때 콜럼 바인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읽기 전에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알고도 읽었기 때문이다. 악마를 어찌 이해 하겠나. 그러니 우리가 이 책에서 건질 건 오직 엄마다. 이토록 경건한 무기력이 어디 있을까. 이토록 숭고한 실패가 또 있을까. 가능성의 끝까지 파본 사람만이 진정으로 가질 자격이 있는 절망. 악마가 되어버린 아들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이 피눈물 나는 헛수고 앞에서 나는 삼가 옷깃을 여민다.‘
감독의 필력이 정말 좋아서 놀랐다. 이 책을 한 마디로.. ‘헛수고‘라고 압축해서 표현한 언휘의 절묘한 선택 또한... 기가 막혔다.
여담이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의 암울이라든지 폭력이라든지 엽기적인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어린 시절에 관한 질문들을 많이 받는데ㅡ 박찬욱 감독의 집안이 워낙 좋고... 유복하게 잘 자랐다고 한다. 다만 어려서 왼손잡이였었는데, 오른손을 쓸 것을 강요 받은 것 하나가 있다고.. ^^;;
암튼.. 이 책을 요약하자면, 전반적으로 남을 많이 의식하고(저자의 표현 인용) 사는 한 아줌마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기 사건으로 기록된 콜럼바인 사고의 가해자인 아들을 두고 자기의 육아 태도를 욕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런 말들에 상처 받는다. 나는 정말 제대로 된 육아를 했기 때문에.... 내 아들은 살인자가 아니다. 우울증을 겪어 자살하고자 했던 아이다. 헌데 에릭이라는 나쁜 친구를 만나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 아들이 왜 이 사건을 저질렀는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를 주구장창 외치고 있는 책이다.
*책속의 말말!*
1. 20세기에는 어머니가 고압적이고 아버지가 수동적일 때 동성애 성향이 생겨나고, 정신분열증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부모의 무의식적 소망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자폐증은 냉장고 엄마의 냉랭함 때문에 아이들의 침묵의 요새 속으로 침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물론 이런 증상들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부모의 태도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2. 아이는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법제도에서도 핵심 개념이다. 그래서 청소년 범죄자는 처벌하기보다 재활에 주력한다.
3. 잘폴 사르트르- 악은 현상이 아니다. 악의 원인을 안다고 물리칠 수 없다.
4. 자살에 대해 생각하면, 이번 생만 끝나면 어디로 가든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내 마음, 몸, 모든 곳, 모든 것이 평화- 나 자신- 내 영혼- 딜런/ 무한한 현실에서 무한핞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영원한 고통
5. G.K 체스터튼 ˝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죽이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 입장에서는 온 세상을 없앤 것이므로˝
6. 출산의 순간- 딜런을 안고 있는 동안 한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불안한 예감이 느껴졌다. 몸이 떨릴 정도로 강한 느낌이었다. 마치 머리 위로 맹금이 지나가며 우리 위에 그늘을 드리운ㄴ 것만 같았다. 내 품 안의 완벽한 갓난 아기를 보면서 나는 ㅡ강한 예감에 압도되었다, 이아이가 나에게 엄청난 슬픔을 안겨줄 거야.
7. 암환자에 대한 글에 적힌 문구 ˝ 잘 이겨나가는 사람들은 머리와 마음속에 건강한 공간을 ㅁ나들어내고 그곳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우리도 이렇게 하고 있다. 톰의 비유에 따르면 토네이도가 우리 집을 무너뜨렸고 우리는 남은 작은 부분 안에서 살아야만 한다. 비탄을 안고 산다는 게 그런 거다. 움직일 수 있는 작은 공간 안에서 산다.
8. 나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배웠다. 첫째로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 둘째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도 힘과 용기로 버텨 나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9. 딜런의 일기장 : 내가 인간 형체를 하고 있을 때, 내가 곧 죽으리라는 걸 아니까 모든 게 하찮게 보인다. /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인간이 될 가능성이 없다/ 이렇듯 슬프고 적막하고 외롭고 구제할 수 없는 나를 느낀다.
10. * 주디(딜런 친구 브룩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브룩스와 에릭(콜럼바인 학살의 가해자)이 싸움을 벌였는데, 에릭이 브룩스의 차에 눈뭉치를 던쳐 앞유리를 깼다고 한다. 주디가 화를 내며 에릭을 신랄하게 헐뜯길래 나는 좀 당황했다. 둘이 싸웠다면 둘 다 책임이 있는 거고 게다가 둘이 해결을 보았다는데 왜 엄마가 끼어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디가 에릭에 대해 열렬히 화를 내는 게 나에게는 과잉반응처럼 여겨졌다. (이 부분.... 저자의 전반적 육아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 아닌가 싶었음)
11.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막상 만나면 불쾌할 때가 많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이고 무례하고 화를 잘 내고 적대적이고 게으르고 짜증을 내고 솔직하지 않고 위생 상태도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롭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고 하는 아이들이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성향이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12. 희생자가 없는 범죄는 있을 수가 없어.
13. 콜럼바인고등학교의 문화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딜런한테 유해했다,
14. 속았다는 굴욕감, 내 아이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아이를 도울 수 없었다는 수치심을 그들은 이해한다.
15. 딜런의 죽음을 자살로 생각하게 되면서 나는 어느 정도 위안을 느꼈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냥 그것을 전부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딜런의 우울과 자살 충동을 알고 받아들이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나는 딜런의 촉력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었다. 지하실 테이프에서 분노를 터뜨리던 사람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딜런이 그 학살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16. 사람이 가장 취약한 순간에 이렇게 위험한 무기를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엄청난 위험이 된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법을 논의할 때에는 이런 위험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17. 사람들의 삶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도울 수 있다면 세상이 모든 이에게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