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의 제목은 직역하면 ‘승자 독식’이다. 누가 승자인가. ‘그’인가, 그에게 사랑받는 ‘그녀’인가. 이 노래는 메타포이면서 직접적이다. 특이한 경우다. 인생의 모든 면에 해당하겠지만 그나마 위로는 승자 독식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승자들끼리의 교체일 뿐이겠지만.


  그래도 품위 있는 인생이고 싶다. 떠나고자 악수하러 온 옛 연인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까. 패자는 승자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까. 매일매일 패배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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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영화의 공식인, 남자 주인공을 시험에 들게 하는 팜파탈(femme fatale), 즉 치명적 요부(妖婦)는 남성의 모순을 여성에게 투사한 존재이기에 오랫동안 남자 감독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이는 남성 작가들의 예술적 상상력이 젠더에 의해 제한받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팜파탈은 남성이 저지르는 폭력과 파괴가 결코 남성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남성 판타지의 산물이다. 남성의 성욕은 무한대라서 어디로 ‘분출’될지 모르지만(성의 피해자로서 여성), 성욕 폭발의 버튼을 누른 사람은 남자 자신이 아니라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성의 유혹자로서 여성)라는 것이다.


  이때 남성은 오히려, 모든 성폭력 가해자들이 합창하듯이, 유혹자 여성의 ‘피해자’가 된다. 팜파탈은 남성의 욕망을 맘껏 채워주면서도 남성들을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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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개발서를 읽는 건 자기를 주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읽고 있으면 면죄부가 생기는 느낌. 자본주의 사회의 성경이 바로 이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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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농락당하면서도 나와 사람들은 계속해서 놀았다. 멈추지 않으리라. 우리의 몸이 잘려 나가든 찢겨 나가든 파편이 되어 흩어져가든 우리는 이 춤을 이 축제를 멈추지 않으리라.
우리를 얽어맨 이 붉은 줄이 무엇이든 그것을 거역할 수는 없으리라. 그것과 싸울 수도 없으리라. 받는 수밖에 없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모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운명은 그런 것이리라. 해야 할 싸움이 내게 있다면 운명을 운명으로서 살아내기 위한 싸움뿐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싸우고 춤추고 웃는다. 운명을 살아내기 위해 싸우고 운명을 사랑하기 위해 춤춘다. 축제는 전쟁터 한가운데 있고 낙원은 지옥 한가운데 있다. 이 난장판이 나의 수이진이고 이 아수라장이 나의 페퍼랜드다. 그러니 어디로 떠날 수 있단 말인가.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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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없지만 사고 싶다. 안드버전 딱 하나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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