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소설의 소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고등학교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 간의 끈끈한 우정? 각 팀 4번 타자들의 홈런 경쟁? 그라운드 위에서 벌어지는 투수와 타자의 날카로운 신경전? 꼴지 팀에서 우승팀이 되기까지의 길고 험난한 여정? 그 속에서 싹트는 선수들의 동료애?

이 모든 소재가 ‘선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금 확대해 보았자 감독이나 코칭스텝 정도이다. 그러나 이 책『오심(MISS JUDGE)』은 지금까지의 야구소설과는 전혀 다른 ‘선수’와 ‘심판’의 대결구도라는 소재를 택했다.

야구 경기의 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선수다. 하지만 선수는 감독 없이 공정한 경기를 하기가 어렵고, 감독은 선수가 경기를 하지 않는 한 존재할 이유가 없다. 어쩌면 악어와 악어새와도 같은 관계를 이야기로 꾸몄다는 데에 이 소설의 저자인 도바 순이치의 남다른 감각이 엿보인다.

이 소설에는 두 명의 주전 선수가 등장하고, 그 주전 선수를 축으로 여러 선수와 스텝이 등장한다.

그 중 타치바나 요시키는 일본에서 우수한 투수라는 이름을 얻고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투수다. 주 무기는 공이 지나가는 코스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제구력이다. 시속 160㎞의 속구를 뿌려대는 강속구 투수는 아니지만 정교한 제구력을 자랑한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실력을 자신없어한다.

타치바나 투수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남자는 메이저리그 심판인 타케모토 하야토다. 타케모토는 타치바나의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이며, 당시 자타 공인하는 에이스였다. 그러나 대학교 4학년 때 연습 경기 중에 어깨를 다친 후로는 프로야구 선수의 길을 걷지 못한다. 이후 ‘어떤 이유’로 미국에 건너가 심판이 되었다. 비록 학창시절이긴 하지만 에이스였던 타케모토는 타치바나와 달리 자신만만한 남자다. 어찌 보면 오만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이 소설에서 기본적으로는 타치바나가 중심인물이지만 심판인 타케모토도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 중에서도 타치바나가 속한 레드삭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팀의 리더이자 레드삭스를 이끌어가는 에이스인 깁슨, 성미가 불같은 레드삭스의 홀츠먼 감독, 전직 스튜어디스이자 메이저리그에 빠삭한 타치바나의 부인 미노리, 타치바나의 대리인인 아이카와, 타치바나 전속 통역인 야다, 타치바나와 면식이 있는 일본 신문기자 이가라시 등 다양한 조연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역할은 소설을 더욱 실감나게 만든다.

타치바나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세계를 무대로 해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펼치리라고 다짐한다.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도쿄에서 열리는 바람에 몇 달 만에 고국에 돌아오고, 개막 2차전에서 선발 데뷔를 하게 된다. 등판을 앞두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선배인 타케모토가 일본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심판으로서 자신의 데뷔 선발 등판 경기에서 심판 데뷔를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타치바나는 타케모토와 얽힌 과거의 암울한 기억 때문에 데뷔전을 무사히 치를까 걱정한다. 

결정적인 순간! 타치바나는 경기 내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곳으로 공을 던진다. 타케모토는 그 공을 ‘볼’이라고 판정을 했고, 타치바나는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만다. 그 판정으로 인해 타치바나는 제구력의 감을 잃고 잇단 경기에서 패배한다. 이 모든 것이 타케모토의 탓이라고 생각한 타치바나는 이가라시를 통해 타케모토가 데뷔전에서 내린 판정은 ‘오심’이었음을 기사화하게 만든다.

‘판정은 정확하나 융통성이 없다’는 평판을 받던 타케모토였으나 이로 인해 심판의 생명까지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그가 미국에 건너가야 했던 ‘어떤 이유’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타치바나와 타케모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타케모토가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던 ‘어떤 이유’는 무엇인지, 타케모토가 내린 판정은 과연 오심이었는지, 타치바나는 무사히 시즌을 마쳤을지는 독자들을 위해 말을 아껴두겠다.

그 대신 이 소설을 즐길만한 몇 가지 코드만 짚고 넘어가겠다.

첫째는 소설에 현실을 치밀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도입부에서 타치바나가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치르기 위해 일본으로 오게 되는데, 이는 2000년 뉴욕 메츠 대 시카고 컵스, 2004년 뉴욕 메츠 대 템파베이 레이스, 2008년 보스턴 레드삭스 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12년 시애틀 매리너스 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 실제로 일본에서 치러진 개막전을 토대로 했기에 한층 사실감이 강하다. 게다가 미국에 존재하는 여러 구단이나 왕년의 선수들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녹여 넣어 마치 소설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인 듯 느껴진다.

둘째는 섬세한 경기 묘사다. 타치바나의 손끝에서 포수의 미트를 향해 날아가는 공. 그 공을 치려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잡는 타자. 찰나의 순간에 스트라이크냐, 볼이냐, 세이프냐, 아웃이냐를 판정하는 심판. 이 모든 묘사는 마치 실제 야구 중계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스포츠 소설이면서도 약간의 추리요소가 가미된 점이다. 타치바나와 타케모토 사이에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타케모토가 미국으로 건너가야만 했던 ‘어떤 이유’란 무엇인지, 타치바나는 어째서 타케모토가 자신의 투구에 내린 판정이 ‘오심’이라고 생각하는지…….

한국 선수들의 꾸준한 메이저리그 진출,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4강 진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획득 등 한국야구는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했다. 또한 2011년 프로야구 역대 최초 관객 600만 명 돌파라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한국인들이 ‘야구’와 친숙해졌다.

이 소설을 손에 들었다면 이미 야구를 좋아하는 독자이리라.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후에,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야구에서 8대 7일 때가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 ‘케네디 스코어’ 경기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면, 당신은 소설 속 경기에 푹 빠졌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야구를 통해 인생을 통찰해 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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