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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책 제목 그대로, 정말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이 있다. 하루종일, 아니 이제껏 살아온 세월동안 되는 일 하나없이 짜증나고 우울하기만 한 그런 날. 꼭 그런 날,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양장본으로 포장이 되어 묵직한 요즘 책들과는 달리 가벼운 재질의 종이로 한 손에 딱 잡힐만한 크기로 어느 장소, 어느 때나 손쉽게 펼쳐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책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매우 묵직하고도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총 3부로 나뉘어진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영화로 치면 프롤로그에 해당되는 에피소드가 먼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에피소드는 주인공 남자의 정신에 있어 기본적인 트라우마가 되고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되풀이 되는데, 이것을 보면 작가가 꽤 중요하게 서술하여 독자에게 어필하고자 했던 의도가 충분히 느껴질 정도이다.
주인공 남자는 어린 시절 붉은 새를 한마리 키웠는데, 그 새를 뱀이 잡아먹어버렸다. 이에 어른들은 "아무튼 어떻게든 해야지"하며 뱀의 배를 가르고, 새를 꺼내 땅에 묻어주었다. 이 때 주인공 남자는 죽은 새보다는 새를 삼켰다가 배가 갈려야만 했던 뱀의 표정에 주목하게 된다. 뱀은 그야말로 무표정이었다. 자신의 죄, 즉 이런 현실을 모조리 받아들인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이런 강렬한 기억이 있는 주인공 남자는 자라서 교도관이 된다. 그 어린시절의 무표정한 뱀의 얼굴만큼이나 무표정한 사형수들을 관리감독하여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이 안정적이다면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비교적 무난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남자를, 남자의 친구이자 애인이기도 했던 여자 게이코는 부러워하면서도 내심 비아냥거린다. 주인공 남자와 게이코는 같은 고아원 출신으로, 고아원 원장을 추억하는 공통된 기억이 있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항상 싱글거리며 웃고, '이 세상엔 훌륭한 것들이 참 많아'하며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주인공 남자는 어린 시절 새하얀 운동화를 더럽혔다고 혼이 난 자신에게 새하얀 운동화를 다시 사주며, 흰 운동화는 더럽히려고 신는거야.. 라며 어깨를 토닥이던 원장의 손길을, 자신을 좀 더 만지려는 듯했다고 기억하며 그다지 좋은 인간으로 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인공 남자는 원장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고 게이코가 말한다. '나'역시 이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나'와 게이코를 비롯한 동창생들은 일년에 한번, 강으로 뛰어들어 자살을 선택하여 먼저 간 친구, 마시타를 기리기 위해 모인다. 동창 친구들도 물론이지만 특히 '나'에겐 마시타는 특별한 친구다. 유일하게 솔직한 속내를 터놓고 지내던 막역한 사이기 때문이다. 마시타는 죽은 뒤로 '나'에게 자신의 일기장을 우편으로 보내오는데, '나'는 온통 찐득하고 우울한 이야기들로 가득찬 이 일기장을 읽으며 마시타가 왜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대략이나마 느껴보려 노력한다.
'나'는 교도관으로서 촉망(?)받는 직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임과 술자리를 갖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많다. 이 자리에서 주임은 '사형'제도에 대한 아이러니함에 답답함을 드러낸다. 똑같은 죄목을 지었더라도 언론 플레이가 심해 사람들의 지탄을 많이 받게 된다면 그에 떠밀려 사형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형당한 죄인보다 더 중한 죄를 지었더라도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면 무기징역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풀려나가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 또 나이가 차지 않아서, 몇개월 상간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 상황도 있다는 것이다.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 역시 사형을 집행하는 순간부터 사람을 살인한 죄인이 되는 것인데도 버젓이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아 돈을 벌어먹고 살고 있다.
이 책은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논리를 펴려는게 목적이 아니었다. 단지 그 애매함에 대해, 당위성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촉구하고 있었다. 또한 주인공 '나'는 술을 먹고 길거리에, 화장실에 쓰러져있는 취객을 향해 발길질을 하기도 하고 머리통을 발로 꾹 누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이 뿐 아니라 주차장에서 매춘을 하며 그러다 갑자기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며 여자를 목졸라 죽이려들기도 한다. 가장 윤리적이어야 할 교도관도 인간으로서 할 도리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 때에 도대체 뭐가 옳은 일인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책의 첫머리, 프롤로그에서 어른들이 한 말처럼, "아무튼 어떻게든 해야지."하는 마음가짐으로 이 세상사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는 이 모든 게 다 우울한 세상에 대한 생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