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이 품은 한국사 세 번째 이야기 : 서울.강원도 편 지명이 품은 한국사 3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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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여행을 하다 보면  문화재의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을 가끔 대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문화재의 이름을 명했던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왕이고

어떤 왕이 새로 중수를 했다 한다. 이런 글귀를 대하다 보면

변형되지 않고 그나마 보전되어 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저절로 생긴다.

 

몇 년전에 경주에 여행갔을 때 문화해설사 분의 해설 내용중에

돌 하나에도 의미가 있고

문화재가 무형이든 유형이든 그 의미는 다 있으며,

유형으로 된 문화재가 없다하여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말씀을 지금것 명심하여 문화재 답사를 할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실제로 의미를 두고 답사를 하니 더욱 소중한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 접하게 된 이은식님의 지명이 품은 한국사를 읽으면서

아하!! 라는 단어를 계속 연말했다.

 

그래! 이런 뜻이 있었구나 모르고 가는 것 보다, 알고 답사를 하는 것이

더욱 신이나고 답사하는 묘미가 생겼다.

나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서울 지역을 비롯한 강원도 지역의 지명 유래가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라웠고

하나 하나 찾아 다니며  자료를 준비하신데 대해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셨으니

나와같이 문화재 답사를 다니는 사람에게 더 없이 편리하고

나만의 생각에 생각을 할 수 있는 더 큰 시간이 생긴것이 감사하다.

 

문화재 답사중 아직 강원도 지역을 많이 다니지 못했는데

강원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문화재 답사시 꼭 필요한 것이며

철원군, 평창군, 횡성군, 태백시, 동해시등을 꼭 다녀 와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강원도의 지명에 대한 유래가 이렇게 많이 있다니

엊그제 발표된 2018 동계올림픽 계최 소식과 함께 더욱 강원도를 많이 밟아야 할 것 같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평창군 봉산서재

현종 때 건립된 것으로 율곡 이이선생의 신주를 모셔 놓은 것이 있다니 더욱 흥미가 생긴다.

초등학교 때 부터 많이 접했던 율곡 이이선생의 신주를

초등학교 때 부터 많이 접했던 율곡 이이선생의 신주를

 

지방 여행을 하다 보면  문화재의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을 가끔 대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문화재의 이름을 명했던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왕이고

어떤 왕이 새로 중수를 했다 한다. 이런 글귀를 대하다 보면

변형되지 않고 그나마 보전되어 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저절로 생긴다.

 

몇 년전에 경주에 여행갔을 때 문화해설사 분의 해설 내용중에

돌 하나에도 의미가 있고

문화재가 무형이든 유형이든 그 의미는 다 있으며,

유형으로 된 문화재가 없다하여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말씀을 지금것 명심하여 문화재 답사를 할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실제로 의미를 두고 답사를 하니 더욱 소중한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 접하게 된 이은식님의 지명이 품은 한국사를 읽으면서

아하!! 라는 단어를 계속 연말했다.

 

그래! 이런 뜻이 있었구나 모르고 가는 것 보다, 알고 답사를 하는 것이

더욱 신이나고 답사하는 묘미가 생겼다.

나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서울 지역을 비롯한 강원도 지역의 지명 유래가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라웠고

하나 하나 찾아 다니며  자료를 준비하신데 대해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셨으니

나와같이 문화재 답사를 다니는 사람에게 더 없이 편리하고

나만의 생각에 생각을 할 수 있는 더 큰 시간이 생긴것이 감사하다.

 

문화재 답사중 아직 강원도 지역을 많이 다니지 못했는데

강원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문화재 답사시 꼭 필요한 것이며

철원군, 평창군, 횡성군, 태백시, 동해시등을 꼭 다녀 와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강원도의 지명에 대한 유래가 이렇게 많이 있다니

엊그제 발표된 2018 동계올림픽 계최 소식과 함께 더욱 강원도를 많이 밟아야 할 것 같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평창군 봉산서재

현종 때 건립된 것으로 율곡 이이선생의 신주를 모셔 놓은 것이 있다니 더욱 흥미가 생긴다.

 

이이의 신주가 봉평에 모시게 된 연유는 아버지 이원수가 인천 지방 수운판관으로 재직할 당시 자연을 사랑하던 이원수는

산수가 아름다운 봉평 판관대에 자리 잡고 4년을 살았는데

어느 날 밤 용이 가슴 가득히 안겨 오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그날로 14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

신사임당과의 사이에서 이이가 잉태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훗날 현종3년 1662년 제사를 받들라는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더욱 흥미롭고 진지한 우리의 지명이 품은 한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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