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투육아 - 웃겨 죽거나 죽도록 웃기거나, 엄마들의 폭풍성장 코믹육아느와르
서현정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자그마한 공간, 말 못하는 그이와 나는, 하루종일 같은 일을 몇번이고도 모르게 반복한다. 나의 말을 한마디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이는, 나에게 토하고 오줌싸고 그것도 모자라 할퀴고 머리를 잡아채 뜯는다. 하루종일 단내나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이와 함께 있다보면 우울증이란게 이런거구나, 울컥 눈물이 나기도 한다. 2014년 한국의 엄마는, 어떤 굉장한 준비나 강단이 있었다한들 맞닥뜨린 육아의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한다. 과거의 육아가 동네라는 울타리의 공동체가 함께하는 품앗이였던데 반해, 현대의 육아는 아파트로 분류되는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 갖힌 엄마라는 개인에게 오롯이 주어진 개인의 과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마디 불만을 털어놓기라도 한다면 사람들은 질타한다, 엄마가 어쩌면 그럴수가 있냐고. 아이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엄마의 책임과 잘못이 되고 온갖 미디어와 주변인들은 모든 것이 엄마의 잘못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잠시 기억을 거슬러 우리가 자랄 때를 생각해보자.
당시는 한집에 아이 하나, 많으면 둘이었던 저출산 시대도 아니었고 경제활동은 아빠가, 가정생활은 엄마가 책임지던게 당연하던 때였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던 시기도 아니었고 따라서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당연하던 때였다. 엄마는 집안일로 항상 바빴고 둘, 셋 이상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동네로 나가 신나게 뛰어놀고 싸우고 뒹굴고 먹고 잤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외침이 있을 때까지 아이들은 바쁘게 놀았다. 옆집 아줌마, 뒷집 아줌마,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그냥 모두 알고 지냈다. 친구네 집에 우르르 몰려가 밥을 먹고 놀기도 부지기수였다.
88 올림픽과 함께 고속성장한 우리 나라는 유사 이래 가장 살만한 시절에 자랐고 아이들은 80%에 육박하는 대학 진학률로 가방끈을 늘어뜨리며 전세계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우리는 가장 부유하게 자란 '첫 세대'였다. 많은 것을 배우고 듣고 글로벌한 감각까지 갖추게 되었다. IMF가 터지고 전세는 급격히 바뀐다. 사회의 주도권을 쥔 기성 세대는 사회로 쏟아져나오는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갈곳이 없어지고 그야말로 '밥 벌어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첫 세대가 된다. 이 밥그릇 싸움에서 여자는 언제나 약자다. 똑같이 배우고 경쟁했음에도 '결혼'과 '출산'과 '육아'는 가장 큰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사회는 아직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0.1%도 갖추고 있지 않다. 결혼을 하면서도 근근이 버텨보지만 출산과 함께 여성은 대체로 기업으로부터 버린 카드가 된다. 외벌이로는 살 수 없는 임금구조 탓에 더럽고 치사하지만 어떻게든 회사에 비벼보려 하지만 나의 남편일수도 오빠일수도 있는 회사 동료들은 갑자기 여성을 자신의 라이벌로 여기며 발붙이기 힘들게 한다. 이보다 더 참을 수 없는건 육아를 여성의 일로 당연시하는 남편의 태도다.
정부와 기업과 구조에 더해 가족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으로 그 반짝이던 많은 여성들은 '독박 육아'의 길에 들어선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육아에 대해 우리는 배운 적이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이를 낳고 집에 갖혀 지낼 순간들에 대한 준비가 전무하다. 우리는 유사 이래 개인이 육아를 책임지는 '첫 세대'다.
전투 육아라는 다소 코믹해 보이는 책에 대한 서두치고는 너무 장황하고 구구절절하다.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읽는, 다수의 지지자인 엄마들에 대한 이해 없이 책에 대해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 이 책은 단순히 육아로 지쳐 힘든 엄마 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고. 앞으로 엄마가 될, 아직은 연애가 좋고 뭔가 이루고 싶고 도전하고 있는, 언젠가는 우리였던 그녀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며, 반짝이던 우리와 사랑하던, 지금은 피곤에 쩔어 육아와 집안일에는 나몰라라인 남편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며, 육아 전선에서 떠나 이제는 손주 볼 나이인, 혹은 손주를 본, 책임감없이 아이가 그냥 예쁘기만 하고 애키우기 힘들었던 기억은 잃은 부모 세대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모두 알아야 한다. 왜 아내가, 며느리가, 딸이, 언니가, 한때는 멋졌던 선배가, 그냥 지나가는 동네 아이 엄마가 저런 표정을 하고 저런 머리를 하고 저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지. 왜냐하면 그녀들은 당신의 부인이고, 며느리이고, 딸이고, 언니이고, 선배이기 때문이다. 남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 한 개인의 일이 아니다. 그건 범사회적인 일이다. 모두의 일이다. 그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해 온 이유이며 이를 등한시 할 경우 우리는 공룡이 없어졌듯 멸망할 것이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출산율의 저하는 신문지 상에서 보는 사회면 기사의 한 꼭지가 아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그녀들은 남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치고 있지 않은가. 다소 시시껄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녀들의 외침이다. 심각하게 말할 수 없는, 큰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방방이 갖혀 있는 반짝이는 그녀들의 외침이다.
거창하게 이야기 했지만 간단히는 그렇다. 모든 건 이해와 소통이라고. 울고 싶은 저녁, 그녀의 블로그를 보며 헛웃음을 지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현실에서는 속이 아프다못해 쓰릴 상황을 위트있게 뒤집어 내는 그녀의 글과 사진을 보며 우리는 세상 가장 큰 위로를 얻었다. 그녀의 입담으로 우리의 하루하루는 힘을 얻고 의미를 갖고 혼자가 아니라는 가장 큰 선물을 얻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는 의리다. 간혹 마초적인 남자들은 말한다, 회사에서 나는 더 힘들다고, 군대가 얼마나 힘든데 어디다 군대를 갖다 붙이냐고. 나는 말한다, 나는 회사 안다녀봤냐고, 군대가 아무리 힘들어봤자 2년 넘냐고(휴가도 있지 않냐고), 그나마 군대 정도로 비교해준걸 감사히 생각하라고. 내가 더 힘들다 배틀할 얕은 수를 부리기 전에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더 쉽지 않을까.
육아에서 그림같은 이유식을 영화처럼 받아먹고 말도 안되게 멋진 집에서 귀부인처럼 사는 모습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가감없는 육아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꼭 닮아 우리는 그 모습에 (남편보다) 힘을 얻었고 (엄마보다) 위로를 얻었다. 리뷰라고는 쓰지 않는 내가 아이를 재워놓고 이 장문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육아동지로서의 어마어마한 의리이다. 그녀로 인해 웃고 울었던 시간들에 대한 감사이다.
이러니저러니, 우리가 버티는 힘은 말간 아이의 얼굴이다. 그 순간 순간은 평생 돌아오지 않을 짧고 소중한 시간임을 알기에, 우리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그 순간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해준 이 책(블로그)이 난 참, 고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