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소리나는 엄마의 105가지 육아 지혜 - 시간과 돈을 아끼는 알뜰 육아법
마마톤키즈 엄마모임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절대 읽지 않는 종류의 책, 이라면 ~해라 식의 지침서이다.

당신과 내가 같지 않고 당신과 내가 처한 상황이 같지 않은데, 한 개인이 불특정 다수에게 던지는 조언 따위,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중에는 옥석같은 한권 정도 가슴 후벼파는 감동을 줄 수도 있겠으나 다수는 작가 본인의 만족, 자랑을 위한 허울뿐인 자기개발서다.

 

아기가 생기고 생전 관심없던 육아 도서를 집어들게 됐다. 어쩌면 이렇게도 나는 육아에 관심이 없었고 아는 것이 전무한지에 스스로 감탄하며 생존을 위해 찾았다는 것이 맞다. 책들은 대체로 비슷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었다. 무지몽매한 엄마들의 현상태를 발가벗기듯 책망하고 그를 위한 방안으로 책의 메인 주제를 제시한다. 그러다보니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뭐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는 불량엄마가 된다. 죄책감은 커져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일들은 수두룩히 쌓여간다. 유명하다는 육아도서 몇권을 읽고나자 그동안 엄마로서 가져온 자존감은 산산히 무너졌다. 실생활에 도움될 정보는 고작 몇개뿐, 남은건 자신없는 엄마의 초라한 모습 뿐이다.

 

그래서, 읽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한권의 책을 사오셨다. 여성지 부록 정도의 표지디자인을 한 이 책, 게다가 제목은 또 왜이리 산만한지 도저히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는게 없으면 알려고 노력이라도 해야지, 라는 엄마의 말과 사오신 정성에 하는 수 없이 책장을 펼쳤다. 2000년에, 심지어 일본에서 쓰여진 책이라니, 대체 도움이나 되겠어? 맙소사, 원제는 '절약육아로!의 방법'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 책, 머리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느날 아기라는 아주 작고 작은 존재가 나타난 것 뿐인데 생활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져버리는 것이지요. 3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해야하고, 밤에는 제대로 잠도 못잡니다. 또한 집안 일은 쌓이고 식사 시간조차 없을 뿐만 아니라, 46시간을 가슴에 달라붙어 우는 아이도 있으니까요. 전혀 협조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함만 쌓여가고,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러도 못가고, 일도 한번 그만두면 같은 조건으로 복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아기와 둘이서만 지내는 밀실육아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이야기 상대도 없고, 아이는 책대로 자라지도 않고, 할머니는 고리타분한 육아법으로 아이의 응석을 다 받아줍니다. 의사선생님은 아이의 체중이 늘지 않는다고 하고, 보건소에서는 발육이 늦다고 하고...

 

10여년 전, 일본의 한 엄마모임에서 만든 책이, 나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다른 책들처럼 이게 잘못됐네, 최악의 경우는 어쩔거네 저쩔거네, 이런 말 한마디 없다. 이러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맞아요, 그래요, 하는 책의 맞장구에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과 이해였던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기는 자란다. 좌충우돌 서투르지만 노력하면 된다. 과정 속에서 엄마도 배우고 그렇게 한단계씩 나아간다. 자책하고 스스로를 비난할 필요없다. 처음부터 잘하면 사람이 아니다. 엄마에게 필요한건 정말 단순히, 이해라고 생각한다. 힘들지, 다독여주는, 힘내, 응원해주는. 엄마도 사람이니까.

 

책은 정말 소소한 방법론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절약육아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이 깨알처럼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마치 주변의 아는 언니처럼 친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기억하는 건, 내 마음을 어루어준 머리말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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