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 의심 많은 사람을 위한 생애 첫 번째 사회학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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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오찬호의 2018년 신작이다. 오찬호는 '불평불만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별명답게 일관적으로 사회비판적인 저서를 출간해왔다. 그를 메이저 작가로 만든 '히트작'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부터 2017년 작 <1등에게 박수 치는 게 왜 놀랄 일일까?>에 이르기까지, 그는 사회의 다양한 요소들을 비판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왔다. 본작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는 일종의 사회비판 종합 세트이다. 그가 가수였다면 베스트앨범을 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이전까지 비판해왔던 다양한 사회문제들(약육강식의 경쟁 시스템, 여성 혐오 문제, 기업화되는 교육시스템 등)을 포괄하여 다루며, 인간이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음을 그렇기에 사회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본인이 자연인(?)이 아닌 이상 자신을 둘러싼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들은 종종 이를 망각한다. 본인의 감정, 생각, 행동이 순수하게 본인의 뇌 속에서 창조된 것이라 착각한다. 허나 오찬호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사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마디로 '순수한 내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원래 그런 사람'도 없다. 우리는 특정 사회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오찬호는 본작의 1~7장에 걸쳐 제시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8장에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없다'라는 오찬호의 주장은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실제로 사람의 행동양식, 사고 구조는 사회마다 차이가 크다. 국가 간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내에서도 시대별로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예컨대 한국 남성과 노르웨이 남성, 60대 광주 남성과 10대 서울 청소년, 20대 서울 여대생과 20대 대구 군필 남성의 생각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이 차이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 즉 사회 모습(사회구조)의 차이에서 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오찬호가 언급한 사례들을 보아도 쉽게 설득이 된다. 그는 특히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을 주로 언급한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일상의 병영화를 통해 시민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며, 수동태 인간을 양성해왔고, 그 결과가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수직적인 기업문화,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등)이라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결정장애란 말을 생각해보자. 사람의 특성 중 한 가지로 만 생각되는 결정장애에도 사회의 영향은 있다. 문제부터 정답까지 한 가지 길만 알려주는 교육시스템, 샛길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한국의 수많은 결정장애자들을 양산한 게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본작은 괜찮은 책이다.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없다'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잘 풀어냈다. 그러나 무언가 아쉬움도 남는다. 무엇보다 책의 깊이가 얕다. 그는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없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분명 친절하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은 미덕이다. 허나 그 설명의 깊이가 얕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보는 수준에 그친다. 본 책의 타깃층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인이 읽기에는 다소 수준이 낮다. 그동안 사회 곳곳의 적폐들을 날카로운 통찰로 분석해왔던 오찬호의 책이라고 보기엔 수준이 한참 낮다. 냉정하게 말해서 사회에 불만 많은 대학생의 리포트 수준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전작들처럼 하나의 테마를 정해두지 않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다. 오찬호는 '여성 혐오', '대학의 기업화', '경쟁을 내면화한 청소년의 모습' 등 특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책을 써왔다. 그러나 본 책의 주제의식은 너무 단순하다. '의심 많은 사람을 위한 생애 첫 번째 사회학'이라는 단서가 달려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을 위해 쉽게 설명했다기보단,  책 자체가 쉽게 쓰였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본 책은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난 그가 좋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보여줬던 그의 통찰력과 비판적인 시각은 아직 살아있음을 믿는다. 그가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아직 하고픈 말이 많다는 것이리라.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도록 그가 계속 책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번 책 보단 조금 더 나은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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