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없는 무지보다 분별없는 경멸이 더 절망적이다. 무지가 단순히 불을 켜지 못하는 것이라면 경멸은 그 불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진실을 전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확신하기 위해서 동양은 서양의 이해를 기다리고 있다."
타고르의 '동양과 서양' 중에서...
2차 세계대전 이전 서양의 제국주의, 식민주의 팽배와 낮은 도덕성에 대해 꼬집는 타고르의 글 한부분이다.
서양은 분명 동양을 분별없이 경멸해왔다. 동양도 동양을 분별없이 경멸해왔다.
우리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보자.
서양의 정복사를 세계의 근대사 전부라고 생각할만큼 편협한 방향으로 역사를 배워왔고,
동양의 역사를 나약하고 무력한 역사로 생각해왔다.
그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이제 깨닫게 되었으니, 얼마나 오랜시간동안 분별없는 경멸을 저질렀던걸까.
이번 ASIA 문예지 20호는 '아시아는 아시아를 어떻게 고민해왔나'를 주제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안중근, 나즘 히크메트, 신경림,사다트 하산 만토, 김종광 등
다양한 국가의 존경받는 지식인들의 글을 다채롭게 엮었다. 또 그들 문학의 해석과 가치에 대한 평도 실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시아 울타리 속에서 아시아를 고민한건가..그렇다면 어이없고 따분할텐데..'
제목만 읽고 이렇게 대강 헤아린다면 큰 오산이다.
두 번, 세 번 거듭 읽고 싶을 만큼
의식을 깨우고 부끄러움을 주는 글, 세계 속의 아시아를 광대한 시각으로 고민한 감동적인 글들이었다.
멍청한 내 뇌를 부끄럽게 한 글은 역시 타고르의 '동양과 서양',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이었으며,
눈물흘리며 낭독한 글은 나즘 히크메트의 '죽음을 두고'라는 시였다.
모젤이라는 소설도 여운이 남았다.
타고르는 아시아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동서양을 폭넓게 여행하며
서구의 지배하에 고통받던 아시아의 미래에 대하여 많은 토론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는 글에서 자국인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먼저 지적하면서,
서양에도 이렇듯 인간성을 저해하는 집단적 지식-도덕을 배제한 과학발전, 분별없는 경멸을 전제한 식민주의,-이 존재함을 설명한다.
그는 현대의 서양이 세계의 선생이 되어야 할 임무가 있음을 인정한다고 하였다.
서양의 과학 덕택에 인류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지배적, 집단적 지식은 결코 창조적이지 못함을 지적한다.
함께 조화를 이루는 정신적인 힘이 결핍되어 있고, 인류의 위대한 인간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창조를 위한 재료들은 과학의 손에 달려 있지만, 창조적인 천재성은 인간의 정신적 이상에 달려 있다는 것..
그는 서양의 진정한 위대함은 지성의 놀라운 훈련이라기보다 인류 복지에 헌신하는 봉사정신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서양 문명의 집단적 힘에 대해...그것은 이상이 아닌 격정이라고 규정한다. (그의 글은 놀라울 따름이다. ...)
아프리카와 아시아 두 대륙에서 유럽이 자행하고 있는 강압적 기생으로 인해
서양의 도덕적 본성이 점점 위축되고 타락하고 있음을 깨달으라며, 간곡히 타이르는 것이다.
'희망봉에서 카이로까지'를 인용한 부분은 내게도 충격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그들의 땅을 훔쳤다. 이제는 그들의 팔다리를 빼앗아야 한다...애처롭지만 이것이 역사이다."
진정 역사속에서 도덕은 배제의 대상이며, 도덕률이란 권력자들에게 특권을 바치기 위해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타고르는 서양을 꾸짖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동양의 잘못도 정확히 나무란다.
동양은 인간적 성찰과 조화, 신의 실현 및 접촉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동양이 그동안 과학과 자연법칙에 대해 무지했던 것도 큰 문제였음을 지적하는 구절이 있다.
"진실은 하늘은 물론이고 보금자리도 필요한 법이며, 그 보금자리는 확실한 구조와 정확한 건축법이 필요하다. 수세기에 걸쳐서 동양은 진정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을 무시해 왔다. 그것에 대한 비밀을 배우는 일을 소홀히 했다. 길이 없는 무한 공간을 가로지르기 위해서 동양은 오로지 자신의 날개에만 의지해왔다."
그리고 마지막엔 동서양의 평화, 인간적인 만남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의 전령과 보금자리의 건설가가 결코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걸까?.."
그의 '비민족주의적 반식민주의'는 또 얼마나 훌륭한가? 그의 인격적인 세계관을 어떻게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타고르의 '집과 세상'이라는 소설과 당시 아시아 정세를 연결하여 해석한 김재용씨의 글을 보자.
"타고르는 국민국가와 이를 뒷받침하는 민족주의가 서구 근대에서 들어왔지만 그것을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민족주의는 자종족중심주의로 흐르기 쉽다는 것과, 그럴 경우 그것이 초래할 폭력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타고르가 '집과 세상'에서 내셔널리즘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 식민주의를 옹호하거나 혹은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근본적으로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유럽의 제국주의도 비판하지만 유럽의 제국주의화의 물결에 맞서기 위하여 만들어진 내셔널리즘이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성찰이 결여될 때, 순식간에 또 다른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로 전화될 수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타고르의 민족주의 비판은 반 식민주의에 기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타고르의 이 작품과 이 시기의 그의 지향을 비민족주의적 반식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타고르는 인도가 열강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짓밟혀 신음하자 한동안 그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맞서고자 민족의 독립을 위해 똘똘 뭉친 민족주의가 결국 자종족중심주의로 전락하면서
식민주의라는 폭력이 재생산 되었던 것이다.
일본처럼 말이다. 서구의 민족주의를 본받은 일본은 그것을 악용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내셔널리즘의 폭력이라는 것...
타고르의 시각과, 이를 고스란히 담은 문학작품은
내면,외면,개인,민족,국가..어느 한 분야에 국한하여 적용할 수 없을만큼 넓고 깊이있는 세계관을 담고 있다.
그의 소설 속 인물, 니킬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조국을 위해 일할 각오가 돼 있소. 그러나 나는 조국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권리를 숭배하오. 조국을 신처럼 숭배하는 것은 조국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오..."
.....나즘 히크메트의 시에 대해 평을 쓰려고 했는데..타고르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그건 나중에 블로그에 올리기로 ^^; 나즘 히크메트 꼭 꼭 읽어보길 권한다.
조국에서 추방당하며 떠돌이 삶을 살았고, 옥중에 쓴 '죽음을 두고'라는 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가슴을 치며 읽은 시...^^:
꼭 경험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