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수필집을 손에 들었다.
작가는 거창한 문예 관련 상을 받거나
대단한 찬사를 받으며 등단한 것은 아니었다.
퇴직 후 늦은 나이에 수필 교실을 드나들며
글을 통해 자신을 찾게되고,
솔직함을 쏟아내는 재미를 알게 된 분이었다.
말 그대로 그녀의 글은 당황스러울만큼 솔직하다.
그리고 참 따뜻하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잘 익은 된장을 막그릇에 수북이 담아
마디굵은 손으로 내 입에 푸짐히 넣어주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우리 집 가까운 김포라니.. 일가친척인 듯 친근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이야기 같다.
동네 소꿉친구들에 대한 정다운 이야기
한 남편에게 두 번 시집간 이야기
고추보다 더 맵던 시집살이 이야기
느지막한 나이에 다시 직장을 다니게 된 이야기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
직접 새 집을 짓고 기뻐했던 이야기
황혼 무렵 사진에 빠진 남편과 기러기를 찍는 이야기
살만하니 덜컥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수발들던 이야기
그래도 미워할 수 없었던 시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엔 유독 주위의 죽음에 대한 관찰이 많다.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죽음,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
앙숙이었던 동료, 절친했던 이들의 죽음까지...
사실.. 죽음의 목도만큼 사람을 두렵고도, 겸허하게 만드는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 속 죽음은 쓸쓸하고 가슴아프지만 두렵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흥망의 이야기들을
대수롭지 않은 듯 하지만 대수롭게 술술 잘 풀어냈다.
그 중 나도 인천에 살기 때문에 알지만
김포 신도시 건설 무렵 토지 보상 문제로
소박하기만 하던 시골 사람들에게 툭 떨어진 변화들..
그저 농사꾼으로 논밭 정성으로 보살피고 감사하며 살았건만..
신도시 건설은 땅을 어느 곳에 얼만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누구에겐 매섭게 치는 벼락이기도
누구에겐 반갑게 기다리던 단비이기도 했던 것이다.
벼락 맞은 사람은 피켓을 들고 상여까지 매며 곡소리 퍼포먼스를
단비 맞은 사람은 자식들의 과장된 효도와 보상금을 맞바꾸는 씁쓸함을
모두들.. 신도시 건설로 인생의 변화를 맛보아야 했고,
그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것이다.
내 동생도 김포 땅 가진 집 아들과 결혼해
그런 사정을 매우 잘 실감하고 있다.
그 댁 시어머니가 큰 아들에게만 좋은 땅을 증여해버린 바람에
둘째며느리인 내 동생이 맘고생 많이 했었다. ㅡㅡ;
곰처럼 우직하기만 하던 동생까지 괴롭히는 신도시 건설이라니~
하여튼 돈의 더티함은 안 괴롭히는 사람이 없다.
거북하고 언짢다.
사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발끈하기도 했다.
너무 솔직해서다. 마치 옆에 있는 친구에게 주위 뒷담하듯
투덜거리며 흉을 보는 투가 적잖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엽고 재미있다.^^;
사진 속 동글동글한 작가의 모습은
우리 엄마같기도, 할머니같기도 하다.
마치....실컷 시댁뒷담이나 하려고 친정왔는데
되려 친정엄마가 투덜투덜하는 이야기나 듣고 있는 듯한 느낌? ㅎㅎ
막론하고~~~ 읽어보시라.. 재미있다.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봐라.
사람만나는데 내 입맛에 맞는 사람만 있을까
책은 작가와 친구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수필집은...
이러쿵 저러쿵 훈계하는 친구도 좋지만..
가끔은 함게 뒷담하는 친구가 정답기도 하지 않은가..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