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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유학 ㅣ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유학도서
김성기 외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년 2월
평점 :
우리나라 일반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동양 고전이라 한다면 삼국지가 되겠지만 그를 제외한 가장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논어가 될 것이다. 동양철학의 범주에 포함된 것 중엔 유학뿐만 아니라 불교와 제자백가의 사상 등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학을 떠올리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상에 가장 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특별히 교양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논어나 맹자의 한 구절쯤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김동리의 ‘화랑의 후예’에서 황진사가 자못 박학한 체 하며 ‘관관저구는 재하지주요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로다(關關雎鳩 在荷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하며 한 구절을 읊어내도 그것이 실소를 자아내는 이유는 시경의 가장 처음에 나오는 시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학은 한국인의 사상의 기저를 이루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극복되어야 할 전근대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처음 수용된 이후로 뛰어난 학자들에 의해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지만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거치면서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한 원흉으로 온갖 핍박을 받아 왔다. 여기에는 침략자인 일본의 조선의 유교역사에 대한 조롱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그것이 식민지 패배주의를 납득하게 하는 기제로서 훌륭하게 작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의심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은 의아할 만하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주체적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뛰어난 성취를 이룩한 혁신이라고 추켜올리곤 하지만 근대 일본의 과두 정치가들이 유신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유교적 충의관념이 효과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이 조선의 패망원인을 고루한 유교문화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하지만 자신의 존재이유를 망각한 괴변임에 다름 아니다.
비단 우리나라의 특수성 때문만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아우르게 하는 유교문화에 대해서 보편적으로 재인식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동아시아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논리인 신유교윤리, 서구적 가치관의 폐해를 치유할 대안으로서의 유학과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뿐만이 아니다.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을 앎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예측해 보고 개인이 그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미시적 측면에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에 제목처럼 이러한 논의에 대해 충실한 해답으로서 추천할 만한 책이 ‘지금, 여기의 유학’이다.
1. 가장 기본적인 물음 - 유교는 종교인가?
유학의 역사와 그 흐름에 집중하고 유학 본연의 학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서술하는 장이 대부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각에서, 그리고 한 번쯤 궁금함을 가져봤을 만한 의문들에 대해 색다른 관점에서 서술한 내용들 또한 돋보인다. 가장 일반적인 ‘유교는 과연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에 대답이 될 만한 부분이 ‘종교로서의 유교, 그 역할과 전망’이라는 장이다. ‘당신의 종교가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에 혹자는 ‘유교’라고 답하기도 하지만 아마 그 질문에 대답했던 사람도, 그 대답을 들었던 사람도 잠깐이나마 의아하게 생각해봤을 수 있다.
기독교나 불교에 비교해 보았을 때 절대자를 섬기는 종교의 일반적인 특징에 비추어보면 유교는 뭔가 일탈한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흠숭받는 초월자의 존재나 그에 헌신하는 독신 수도자들의 존재도 없다. 그런데 글쓴이는 바로 그러한 면이 현대적인, 대안적인 종교로서의 유교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고 말한다. 자기초월의 신화를 신봉한다는 것에서 원시불교와 유사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것이 머나먼 내세나 사후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현세에서 가능하다고 역설하는 게 유교의 ‘군자론’이다.
즉물적인 현대의 세태에서 점점 자기 자신의 판단만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성공을 갈망하며 자기 절제와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유교의 ‘일용지사가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편안히 하는 근본이 된다.’고 하는 가르침과 방법론에서 맞닿아 있다. 지고의 목표인 ‘천인에 합일되는 경지’가 유교가 지향하는 궁극점이기도 하지만 그런 거창한 담론 이전에 성인이 되기 위한 수행방법의 근본은 일상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현대인들이 꿈꾸는 ‘생활의 발견’혹은 ‘일상의 신화’와 유사하다. 항상 근면하고 자기 계발에 큰 관심을 쏟는 한국인들이 오로지 재테크에만 집중하는 지금의 현실은 방향성을 잃은 감이 없지 않으며 그것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유학의 진지하게 탐구하는 학(學)의 모델과 항상 자신을 연마하는 생활습관은 최선책이 될 수 있다.
2. 유학의 자연관은 자연중심적인가?
서양인들은 동양의 가치관에서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계문명의 치료방편으로 꿈꾼다. 그렇다면 과연 유교에서도 그 미덕을 찾아볼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에 대해 ‘동아시아의 미학지평과 유가예술정신’과 ‘유학의 생태 친화적 자연관’이란 장은 논의의 기반을 제공해 준다.
<논어>의 [옹야]편에 나오는 구절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에서 도출된 ‘락(樂)’의 개념은 원래 군자의 적극적 삶의 태도를 표현한 단어였다. 그런데 그것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식될 때는 ‘대상과 (주체가)완전히 하나로 융합된 상태(p149)'를 표현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연관을 생각해 볼 때 눈여겨 볼 점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어떠한 실체인가 하는 것이다. 세한고절이라는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는 나무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성현과 지사의 고결한 품격으로서 표현된다. 이처럼 자연물이 인간의 덕성에 대비되어 표현되어 있기에 만약 유가에서 인식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칸트식 철학용어와 굳이 비교해본다면 ‘물자체(Ding an sich)’보다는 ‘표상(Vorstellung)’에 더 가까우리라 생각한다.
요컨대 자연을 그 자체로서 인식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기보단 인격적인 덕의 표상으로 이해하는 데 더 치중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군자에서도 보이듯 ‘사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되 그 보다 ‘자신을 통해 사물을 해석’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했다.(p153) 유물급인(由物及人)의 연원은 이러하다. 그렇기에 도덕과 예술은 통일을 이루는 것이며(p150) 유가적 미학원리인 비덕(比德)은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정당성을 얻는다.
결국 ‘천인합일’의 경지는 글자 그대로 인간이 자연에 완전히 귀속되거나 원시적인 형태의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자연의 모습에서 포착하고 이상화한 덕성을 내면화한다는 뜻이 더 옳다. 그렇기에 아마 서구인들이 현재 추구하는 가치에 가장 부합되는 것은 도가적 자연관이며 유가적 가치관은 서구의 기독교적 자연관처럼 부분적으로 인위적인 느낌이 없지 않으나 그렇게 이상화된 자연을 존숭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대안으로서 유효하다.
그런데 서양의 관념론에서 인식하는 유교의 자연관과 실제는 큰 차이가 있다. ‘계몽의 빛 유교’에서 말하고 있듯 공자는 유럽에 일찍이 소개되어 루이14세의 궁정에선 논어의 번역본이 읽히기도 하였다. (그래서 공자는 마치 그리스의 현인처럼 Confucius라는 이름을 얻는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공자와 그의 유학사상은 관념론자들에 이르러 전근대적이고 하등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유교의 자연관을 ‘극복되지 못한 자연으로의 세속화된 기본적인 신비한 관계(p178)’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락’의 개념에서도 보이듯 자연과의 일체라는 사고가 주체적이기 보단 수동적으로 비쳐질 여지가 더 많았으며 이미 이성에 대한 합리적인 사유로 신적인 직관으로부터 벗어난 그들은 아직 자연과 구분된 독립적인 주체로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한 중국인들을 저열하게 여겼다.
그러나 유교적 미학관점의 자연관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위와 같은 비판은 온당치 못하다. 서구적 관점이 지적하듯 극복되지 못한 자연과 그에 묻어가는 인간이 아닌, 사유의 틀에 의해 재단된 자연과 그것을 능동적으로 인식하는 인간이라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3. 유학은 과연 여성의 족쇄인가?
이 책에서 현대 우리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이슈와 가장 부합하는 장면은 ‘여성의 경험으로 읽는 유교’일 것이다. 점진적으로 증대되는 여권의 신장에 있어 과연 유학은 여성억압적인 성격이 원래 내재되어 있었는지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여성 권익을 위해 유학은 타파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철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에 대해 서술자는 이미 본론을 시작하기 전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놓았다. 즉, 과거 대부분의 사상과 종교가 가부장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가부장제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p113)
오경은 남성의 역사였다!?라는 거의 반문에 가까운 도발적인 부제로 시작하는 글은 매우 신선하게 기존의 고정관념을 불식시킨다. 중국 고대왕조의 시조설화를 분석해 보면 고대는 모계중심의 사회였으며 여권이 오히려 우월한 사회였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여성의 혼인과 재가가 자유로웠으며 자유연애 또한 활발했다. <시경>에서 각국의 민요를 다룬 부분인 [국풍]은 그래서 연애 시로 보는 게 더 합당하며 부분적으로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褰裳)’와 같이 깜짝 놀랄 만큼 적극적인 구애시도 존재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유가의 5경을 남녀관계를 기초로 해서 논평하는데 1) 이렇듯 유학의 주요 경전이 성립될 때만 해도 여성의 권익은 그리 낮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긴 안목에서 바라볼 때 중국 역사에서 여권은 점점 하락하는 추세에 있었다. 남녀의 위치가 결정적으로 뒤바뀐 사건을 서술자는 ‘주나라의 은나라 정복’이라고 주장하는데 조직적인 국가체계를 갖춘 주나라가 모계중심의 씨족사회였던 은나라를 정복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래의 가장 유명한 말 중에 하나인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 는 표현은 전쟁에서 승리한 무왕(武王)의 입에서 나오게 되었으며 이후 여성을 수천 년간이나 옭아맨 족쇄가 되었다.
‘칠거지악’과 소박맞은 여성을 구제하는 ‘삼불거’에 대한 서술자의 지적도 매우 신랄하다. 여성을 구속하는 논리인 칠거지악으로부터 여성을 배려하는 장치로 인식되었던 삼불거가 실제로는 여성의 노동력을 계속해서 장악하려는 지배구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을 억압했던 족쇄가 얼마나 무겁고 소름끼치는 것이었는지 저자는 날카롭게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유학 자체에 여성 억압적인 성격이 있었느냐 하는 점에서 서술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공자가 시경을 두고 ‘삼백 편엔 사악함이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공자 또한 자유로운 연애에 어느 정도 개방적인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2) 오히려 후대로 오면서 국가지배이데올로기로 승격된 유교는 점점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성격으로 변한다. 남존여비로 대변되는 가부장제가 인민을 지배하는 원리의 연장선이라는 주장은 매우 적확하며 실제로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를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해 왔다. 일본에선 ‘이에(家) 제도’로 흡수되어 메이지 시대 내셔널리즘을 가속화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4. 인간의 미래를 위한 시급한 해결방안
이 책이 우리에게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담론을 제시해 줄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유학을 어떻게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우리의 자세이다. 고도로 발달된 인류 문명의 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가 인류 발전의 최 정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현재의 병폐들을 해결할 사상의 마련이 시급하다. 그 사상을 이룩하기 위해서 새로운 것뿐만 아니라 과거의 것들도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하며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가치관으로서 유학은 새로운 해석을 모색해볼 가치가 있다. H.G. 크릴 교수의 <공자 - 인간과 신화>라는 책에서 볼 수 있듯 필요하다면 지선(至善)으로 추앙되는 공자마저도 성스러움의 장막을 걷어내고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공자 왈 맹자 왈’로서의 유학이 아니라 공자와 맹자가 가졌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유학과 현대 사회와의 접점을 찾는 작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주석
1)본문 p124에 소개된 <사기>의 언급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역경>은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건과 곤에 기초하고, <시경>은 남녀가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루는 [관저]를 머리로 삼으며, <서경>은 순이 아황과 여영의 두 자매에게 장가듦을 찬미하였고, <춘추>는 남녀간의 음란함을 풍자하였다.”
2)공자가 시경을 연애 시의 성격 그대로 파악하고 그 아름다움을 찬미했다고 보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 H.G 크릴교수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시의 문맥적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유교적 관점에 따라 곡해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표현은 시경의 한 구절에서 연원한 것인데 '교묘한 웃음에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여,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 라는 구절에 대해 제자인 자하가 묻자 공자는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후이다(繪事後素)”라고 해석한다. 이를 두고 자하가 “(인(仁)이 바탕이고) 예(禮)는 나중입니까?”라고 묻자 비로소 시를 같이 논할 수 있게 되었다며 공자가 흡족해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유가에선 현상에 대해 일정한 가치관을 덧씌우고 그것을 견강부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비판하는데 절차탁마(切磋琢磨)또한 동일한 관점에서 비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