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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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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북쪽(이라 기억한다), 작은 마을에 봉사(?) 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봉사 일정 중에 '홈스테이'가 있었는데, 이것에 대한 봉사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홈스테이가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고 다소 위험할 수 있다는 입장과 인도인들의 실상을 진짜로 이해하려면 함께 지내봐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눠었다. 나는 후자에 손을 들었지만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전자의 입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고 느껴진다. 내가 묵었던 집은 방이 단 한 칸이었다. 벽으로 나뉘어진 다른 한 칸은 부엌이었고, 우리에게 잘곳을 제공하기 위해 아이 셋과 서른쯤 됐을 부부는 작디작은 부엌에서 불편하게 잘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집 안주인의 권유에 따라 사리를 입었는데, 잘 때 사리를 벗으려고 하자 안주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불편한 바지 따위 입지 말고 편안한 사리를 입고 자라고 손짓 발짓으로 말했다. 사리를 입고 자리에 누웠지만 피부에 느껴지는 따끔따끔한 통증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나는 빈대에 엄청나게 물려 빨갛게 부어 오른 피부 덕에 열이 났고 몸져누웠다. 사리를 입고 자라고 강요하는 안주인의 얼굴을 마주하고 난 뒤 나는 그들의 삶 중 무엇도 쉽게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한나는 스웨덴의 아주 추운 지방에 살다가 한순간 아프리카의 포르투갈 령 땅에 떨어진다. 한나는 흑인을 함부로 대하는 백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고 또 흑인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아프리카 땅의 법도 이해할 수 없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아무리 친해지려고 노력해도 흑인 스스로가 백인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한나는 처음부터 이 소설이 끝날때까지 여행자다. 무엇을 욕망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을 펼치면, 플라톤의 경구가 가장 먼저 보이는 데 그 경구 덕에 언제나 항해하는 한나를 상상하게 된다.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죽은 사람들, 살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이다."

-플라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나라는 인물이 좋았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인물. 아프리카에 있지는 않지만 그게 실제 우리의 모습이기에. 한나는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말했던 '꼬질꼬질한 천사'라는 말을 기억한다. 한나는 늘 조언을 구하려고 한다. 한나가 조언을 구하는 대상들은 한나에게 자신의 입장을 얘기할 뿐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결국 스스로에게 갇혀 있고 그것을 상대에게 발화한다. 한나는 그것을 알고 있고, 아프리카 땅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이를테면, 백인 남편을 칼로 찍어 죽인 흑인 여자를 구하려고 노력하고, 또 그 여자의 오빠와 사랑에 빠지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에선 등장인물들이 너무 쉽게 죽고, 아프리카 땅에 자리 잡은 백인들은 이기적이며 또 악하며, 살기 위해선 부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을 냉정하게 펼치고 있다. 한나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쓴다.

"이 불가해한 가난의 한가운데서 나는 풍요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존재할 수 없었을 행복, 살아남을 수 없었을 온기. 이것을 통해 온갖 부와 안락에 파묻혀 사는 백인들의 또 다른 종류의 가난을 나는 볼 수가 있다."

  그녀는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았다. 경험한 것을 정확히 옮겨 적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흑인들과 그들의 삶의 현실을 제대로 발견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의 시각은 왜곡된 것이었다.

  스웨덴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자란 그녀로서는 어쩌면 흑인들과의 공통점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을지도 몰랐다. -454p

  한나의 일기는 오랫동안 아프리카 호텔의 마룻바닥에 감춰져 있다가 2002년 한 청년에 의해 발견된다. 호텔은 이미 쇠락한지 오래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청년은 한나의 일기를 전혀 읽기 못한다. 독해되지 못하는 한나의 일기가 2002년의 아프리카 청년에게 가 닿은 까닭은 무엇일까? 지금까지도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자력적인 기업도 없고 백인들에게 자원을 빼앗긴다. 어쩌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한나의 생각이 이러한 현실에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가난해도 그들만의 삶이 있고 행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도에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 불편하고 피곤했던 기억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침의 인상은 지워지지 않는다. 대여섯 살 쯤 된 그 집 아이가 아침부터 병뚜껑 같은 것을 갖고 놀았다. 집 앞에 더러운 도랑이 흘렀는데, 그곳에 병뚜껑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잡기도 하고 무엇이 재밌는지 까르르 웃으며 자신만의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삶이 늘 지옥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하면 불행할 것이라는 게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편견일지도 모른다. 가난과 편견에 시달리더라도 우리 모두에겐 일상적인 삶이 있다. 매일 흘러가는 삶 속엔 슬픔도 있지만 기쁨도 있고 세상 더러운 일도 있지만 또 선물처럼 나타난 반짝이는 순간도 있고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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