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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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솔론 영주의 딸 아미나의 시선으로 솔론 섬에서 펼쳐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소설이다. 아미나는 솔론 섬을 찾아온 기사에게 암살 기사가 영주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죽은 영주를 발견한다. 한편, 솔론 섬은 암초로 뒤덮여 있어 밤이 되면 외부에서 누군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누가 영주를 죽였을까.

마법과 같은 판타지 요소가 가득한 소설이지만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있는 독자라면 거대한 밀실 범죄라는 전형적인 설정을 지닌 소설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읽으면서 소설의 설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범인이 누구인지 맞히는 즐거움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판타지 세계관에서 전통적인 수수께끼를 푸는 방식을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판타지의 즐거움과 미스터리의 숨 막히는 흥미진진함을 둘 다 느낄 수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그래서 여덟 명의 용의자에서 범인을 추려가는 과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신비로운 가루로 범인의 발자국을 찾아내고 꼭두각시를 부리는 마술이 섞여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미스터리한 죽음의 비밀을 푸는 역할을 하는 것이 딸 아미나여서 좋았다. 보통 여성은 서포트해 주거나 조수의 역할이거나 비중이 좀 있는 주인공 서브의 역할을 해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 책은 아미나의 시점에서 비밀을 풀기 위해 움직이고 있어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책을 읽으며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며 읽기 시작했지만, 끝에는 범인을 추려내는 과정과 잘 짜인 이 세계관이 즐거워 관찰자 입장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통쾌함만 느꼈다. 짧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한 번 읽으면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책이었다.

+
이 작가의 일상 미스터리를 좋아해서, 내 취향에 잘 맞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잘 쓰는 작가는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도 상관없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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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 디플롯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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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여성
✔️여성의 몸에 대한 대상화, 상품화가 불편한 사람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

여성에게 몸의 자유를 말할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드라마, 영화, 광고, 유튜브, sns 등을 보면 여성의 몸은 쉽게 상품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른 몸, 다이어트, 거식증 등등 단일화된 몸만 인정하는 냉혹함.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라고 느꼈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은 직업을 가졌음에도 카메라 앞에 서면 누구나 품평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이런 분위기의 뿌리부터 궁금해졌다.

이 책은 여성의 몸, 신체, 육체,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 역사, 인문학적인 시선과 저자 개인의 의견까지 더해진 이 책은 문제가 되는 이 사회를 한 발짝 떨어져서 상황과 맥락을 보게 한다. 목차를 보면 조금 기괴하게 느껴질 것이다. 얼굴, 가슴, 엉덩이, 각선미, 피부, 손, 혀, 이빨, 항문 등 몸의 구성부터 섹스와 출산, 포르노와 성폭력, 거식증, 성형까지 여성의 몸에 향해지는 압력을 다룬다. 여성 스스로 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런 생각이 어떻게 주입되어 왔으며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나노 단위로 나누며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전유물로 여기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보여준다.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 착취, 죽음에 얽힌 역사를 지켜보며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몸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떤지 한국뿐 아니라 외국의 사례까지 전 범위 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좋았다. 역사적 맥락을 알 수 있어 좋았고 비교적 최근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의 성격상 읽는 내내 불편했고 징그러웠다. 살아있는 몸이 아니라 몸을 조각조각 나눈 마네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여성을 제외한 담론에서 기준을 정해 놓고 여성을 재단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매일매일 다른 기준을 두고 여성은 거기에 맞춰 수술대에 오른다. sns 발달과 기술의 발전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했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래서 아직도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한 것 같다. 그저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형처럼 그저 "아름답게"만 있으면 되는 것처럼 당사자를 제외하여 합심해서 가스라이팅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여성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우리들이 너무 가엽고 멍청한 세상에 제발 가만히 두라고 소리치고 싶다.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들과 싸워야 한다. 가끔은 스스로가 만든 족쇄는 좀 풀어주고 자유를 느껴보자. 이 책은 족쇄를 푸는 시작이 되어 줄 것이다.

+
아쉬운 점은 각 장에서 역사와 사회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저자의 견해를 덧붙이고 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를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인상이 들었다.
++
유명한 철학자, 운동가, 사상가들도 대대적으로 빻은 말을 했던 것을 보면 힘을 가진 남성은 유전자에 박혀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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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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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세계를 통해, 주변의 사람을 통해 보고 느낀 것을 기록했다. 저자는 후천적 시각 장애인이지만 장애로 그녀를 얄팍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전작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와 달리 이 책은 보고 느낀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해외여행, 국내 여행부터 과거를 넘나들며 예술을 즐기는 것까지 다채롭다. 어떤 새로움은 나를 깨워주기도 하지만 어떤 점은 크나큰 실망과 나를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깨워주는 감각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만의 길로 나아간다. 망한 여행을 했어도 다음 여행을 하듯이.

저자가 보는 세상은 앞이 보이는 비장애인인 나와 다르다. 그는 다른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다. 그래서 보는 것이 단순히 눈을 통한 것이라는 생각을 깨주었다. 촉각과 향기와 온도와 습도로 그려낸 풍경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잘 보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런 세상을 알 수 있어 즐겁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의 시선을 빌려 본 세상은 인간과 사회때문에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사람들의 인정으로 뜨겁고 사람들의 선입견과 비난으로 차가웠다. 이렇게 생긴 흔적은 글의 곳곳에 저자의 몸에 새겨졌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순수하고 착할 것이다"라는 선입견은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뭘 모를 것이라는 비장애인 세상에서 구상해 놓은 이미지이다. 비장애인들만 해도 이 세상이 얼마나 팍팍한지 말하면서, 적당히 배려하고 이기적으로 살면서 장애인은 조금만 이렇게 행동하면 더 차가운 힐난이 돌아온다. 조금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인데.
보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그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글에서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든 선입견을 깨면서 울고 웃으며 그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


+
글이 너무 재밌어서 저자를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치 심즈에서 지하에 가둬놓고 미치광이 화가를 만들듯이...글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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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지음, 이윤실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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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에서 지워지는 사람들의 짧은 이야기를 담았다. 책 속 화자는 어린아이, 노인, 여성, 엄마, 실패한 복서, 육체노동자 등 행복한 사회를 그릴 때 지워지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라오스에서 온 이민자, 2세라는 점이 이 이야기를 묶어 준다. 
고국을 떠나 영어권 나라로 넘어와서 사는 일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영어를 배우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은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을 지우는 일인 것 같다. 자신의 언어로 내뱉는 이야기는 흩어지는 소리일 뿐임을 그들은 몸으로 느낀다. 이민자들의 이야기 일 뿐이라고 뭉뚱그려 놓기에는 개개인의 목소리가, 욕망이 살아있다. 그들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이 사회가 그들을 지우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회가 그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다른 사람의 오뚝한 코, 네일샵 손님, 옆집 남자 등을 욕망하고 좌절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울타리를 넘나들며 자신이 여기 있음을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듯하다.

타의에 의해 이민자가 된 이들의 생활을 상상해 보게 되었다. 낯선 나라에서 다른 언어를 배우고, 다른 문화적 환경에 산다는 것. 나를 쌓아온 것들을 지우고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새로운 사회에 녹아드는 것. 매 순간 차별과 싸워야 하며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 이 책에는 이런 상상이 현실임을 알려주는 살아있는 조각이 들어가 있다.

우리 사회가 지운 사람들은 누구일까. 무심코 지금도 지우고 있지 않을까.

+
우리 눈을 가리고 소수자들을 하나로 치부하곤 하지만 그들은 개별이고 차별의 내용은 단적이다. 우리 눈을 가리는 것들을 치우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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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지음, 이윤실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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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 너머에 있는 일상을 짐작하며 문장에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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