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암살주식회사
잭 런던 지음, 한원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평점 :
암살과 도덕.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이 단어가 이 책의 핵심이다.
사회주의자 윈터 홀은 의뢰 후 돈을 지불하면 사람을 죽여주는 암살 주식회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홀은 이 조직을 파헤치기 위해 소수의 사람만이 접할 수 있다는 이 회사에 신분을 속이고 찾아가게 된다. 이 회사의 수장인 이반 드라고밀로프와 만나면서 사회적으로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대화 끝에 조직을 해산시키기 위해 이반 드라고밀로프에게 이반 드라고밀로프 본인을 죽이라는 의뢰를 주게 된다. 1년 동안 타겟을 죽이지 못하면 조직이 해산된다는 것을 말하며 이반 드라고밀로프는 본인의 조직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처음엔 이 책의 소개만 읽고 추리나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분위기라 신선했다. 책에서 등장하는 암살 단원들, 홀과 드라고밀로프가 사상가, 철학가, 학자라 그런지(암살자들 이전 직업에 놀람) 철학책 아닌가싶을 정도로 윤리와 사상에 대해 치열하게 논한다. 암살자들에게 윤리라니? 어찌보면 모순되는 설정임에도 그들의 주장을 듣다보면 묘하게 이해가 되고 서로를 비판하는 대화에 빠져 읽게 된다. 수준 있는 토론장에 관객으로 있는 느낌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암살자들의 윤리 사상을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매력인 것 같다. 20세기 배경이라 지금과 다른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주된 이동 수단이 기차이거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사람들을 푼다든가 하는 것들) 쫓기고 있는 드라고밀로프가 잡힐 것인지, 홀이 조직을 해산시키게 될 것인지, 홀의 약혼자이자 드라고밀로프의 가족인 그루냐의 역할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적당한 속도로 궁금증을 잃지 않게, 또 지루하지 않게 전개되는 것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다. 치열한 두뇌 싸움과 쫓고 쫓기는 스릴러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지만 이 책이 지닌 메시지에 주목하다 보면 새로운 재미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암살 주식회사가 한국에, 외국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하며 이 책을 덮었다. 작가조차 마무리 짓지 못한 결말이 이 책이 지닌 고민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이 점까지 작품이라는 생긱이 들었다. 또 주인공의 융통성 없고 고지식함에 혀를 차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바꿀 수 없는 신념이 가져오는 힘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크건 작건 영향을 끼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