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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지오 소스테누토 - 어느 인문주의자의 클래식 읽기
문학수 지음 / 돌베개 / 2013년 2월
평점 :
‘1980년대 초반, 나는 숨어서 음악을 들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음악 전문 기자가 쓴 클래식 입문서이다. 격동의 80년대를 음악 감상실 한구석에 숨어 현실과 분리된 채 보냈던 저자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안타까운 자기 부정의 세월’이라 말한다. 현실의 문제로 인해 자신이 꿈꾸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삶을 살았고, 아주 가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것이 사치였던 때, 그리고 지금은 클래식이 평범하지 않은 남다른 취향이 된 때이다. 클래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문화자본으로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클래식 입문서의 출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의 클래식 입문서가 그러하듯 이 책도 수많은 음악가를 다루고 있다. 슈베르트, 모차르트, 바흐, 하이든…….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각 음악가들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음악은 개인과 당대를 품으면서 하나의 맥락을 형성한다. 우리는 그 맥락을 접하면서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마음 아파하며, 어떤 경우에는 미움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동서고금의 작곡가들뿐 아니라 현대의 지휘자와 연주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음악은 그렇게 살아서 꿈틀거린다. 때로는 수백 년 혹은 수십 년 전에 이미 쓰여진 음악을 우리가 듣는다 치더라도, 그 속에는 어느 시대에나 인간이 느껴왔을 보편적인 희로애락, 당대와의 갈등이나 타협, 때로는 권력을 향한 욕망 같은 것들이 여전히 살아서 흘러가는 것이다.’ p. 14
천재라 불리던 모차르트는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휴식이 없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혹독하게 훈련받은 모차르트가 겪었던 빡빡한 연주여행부터 첫사랑과의 결혼까지, 저자는 음악가들을 밀착 취재한 것 마냥 이야기를 엮어낸다. 이러한 구성은 화려한 무대의 뒤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단순히 알고 있던 사실 이면에 숨어있는 현실적인 이유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개인적 욕망으로 인한 선택, 즉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 한 선택이 교과서에는 음악하기에 더 좋은 환경을 바랐던 것이라고 서술된 것이 그 예이다. 또한 저자는 음악가가 살던 당시의 시대상과 관련지어 화려한 부르주아의 삶 이면에 숨어있는 빈곤층의 비극적인 삶도 다루고 있다. 하이든이 런던에서 부르주아지들에게 연주회를 하는 그 순간, 런던의 또 다른 곳에서는 굴뚝청소를 하던 작은 아이가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는 일이 태반이었다. 저자는 전혀 관련지을 수 없을 것 같은 하이든과 런던 빈곤층의 삶을 절묘하게 연결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이런 점에서 보편적인 클래식 입문서와의 차이가 드러난다.
또한 이 책은 입문서로서의 기능에도 충실하다. 음악가 당 10페이지 정도로 적은 분량을 다루지만, 그 안에 많은 정보를 눌러 담았다. 잘 쌓은 테트리스처럼 음악가를 소개하고, 각 음악가의 명반을 소개하며 연주자의 특징도 꼼꼼히 잡아준다. 어떤 곡을 먼저 들어야 할지, 어떤 연주자의 연주를 들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저자가 클래식에 가지는 애정이 책 전반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점이 입문서로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음악가에 대해 단순한 사실만이 아니라 각 음악가의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함께 실었다. 이를 통해 나와 저자의 생각만이 아니라 그 음악가의 전문가가 갖고 있는 생각도 함께 접할 수 있다. 저자가 클래식에 취미를 갖고, 애정을 가지며 열정을 쏟지 않았다면 담을 수 없는 내용일 것이다.
화려하다고 생각했던 음악가들의 삶은 사실 생각보다 화려지만은 않았다. 저명한 음악가 하이든은 30년 동안이나 돈 많은 가문의 ‘하인’으로 살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는지는 교과서나, 다른 클래식 입문서에는 없는 이야기이다. 오직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 불이 꺼지지 않는 무대를 위한, 무대 뒤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