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성긴 손가락 사이로 숨죽여 바라보던 여느 공포영화에서처럼 느닷없이 나타나 두려움과 놀라움을 주지는 않지만, 책속의 내용이 마치 영화필름처럼 한 장면 한 장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언제든 소리를 지르며 옆 사람에게 안겨 ‘지나갔어?’ 하고 묻고 싶을 만큼.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눈에 비쳐지던 방안의 사물이,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그 어떤 존재가 되어 나타날 때의 오싹함과 또렷하게 무엇인지 인식했을 때의 안도감.
이 책에서도 그런 느낌을 동시에 받는다.
[신의 말]과 [차가운 숲의 하얀 집]에선 황당하고, 잔인하고 끔찍한 묘사들이 너무 많아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충격적 이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선 무감각해지까지 했다.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추악한 모습을 본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주인공들의 상황에 연민마저 느껴진다.
물론 10개의 단편 모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양지의 시]와 [카자리와 요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양지의 시]에선 사랑을 품은 로봇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저절로 가슴이 포근해졌고, 사소한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가장 쉬운 듯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해준다.
하나의 장르에 치우침 없이 다양한 글을 쓰고, 글마다 개성 넘치는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 특별함이 있어 이 작가를 ‘시대의 천재’라 부르는 모양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우연히 영화를 보게 됐다.
[카자리와 요코]를 보면서 책속 엄마의 잔인한 모습이 떠올라 섬뜩해진다.

 

“잘 들어. 엄마가 너를 때리는 건 네가 너무너무 나쁜 아이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 알겠니? 알았다고 하면 이 믹서기의 스위치를 누르지 않을게.”
……
“자칫 잘못했으면 네 손이 주스가 될 뻔했구나.”
엄마는 입가에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묻히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단내 나는 숨결을 내게 토하면서 웃었다. (p. 225~226)

 

낡은 방석을 옆에 끼고, 긴 머리를 흩날리며 뛰어가던 요코의 마지막 모습에서 카자리의 죽음으로 자유를 찾고, 엄마에겐 소중한 것을 빼앗아 복수(?)를 했지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는다.

모처럼 잔혹하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을 읽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더위를 쫓아줄 단순한 공포소설과는 다른 또 다른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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