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77월 중순의 어느 화요일 오후, 61세 초로의 윌라 브랜던은 의문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됩니다. 전화기 발신 번호를 확인해보니 큰아들 이 살고있는 볼티모어의 지역 번호군요. 하지만, 분명히 아들의 전화 번호는 아니라서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네요.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윌라는 이내 수화기를 들고 맙니다.

 

여보세요?”

매킨타이어 부인이신가요?”

매킨타이어라는 이름은 윌라가 첫 번째 남편을 잃기 전에 갖고 있던 성입니다.

 

10년이 넘도록 쓰지 않아온 예전 이름으로 윌라를 찾는 이 전화는 과연 누구의 전화일까요? 큰아들 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걸까요? 과연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건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클락 댄스의 저자 앤 타일러는 올해 나이 80이 된 미국의 대표적인 여류 작가입니다. 종이시계1989년 퓰리처 상을 받아 예술성을 보여줬고, 1991년 우리나라에서 출간해 50만 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유명세를 떨친 작가죠.

 

클락 댄스는 주인공 윌라10대 시절부터 60대 할머니 나이가 될 때까지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인데요. 11살 시절의 1967년을 시작으로, 21살 여대생 윌라를 만나볼 수 있는 1977, 41살의 두 아들 엄마가 되어있는 1997, 마지막으로 의문의 전화를 받게되는 61살의 윌라를 클락 댄스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클락 댄스는 째깍째깍소리에 맞춰 어린 아이들이 양 팔을 마치 시곗바늘처럼 움직이는 춤이라고 하는데요. 순간 멈칫했다 또 움직이는 초침의 모습을 빌려 윌라의 인생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책장을 넘기면 11살 윌라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엄마의 짧은 가출로 사건은 시작됩니다. 어쩌다 부부싸움이라도 한번 하시면 의례껏 외할머니댁으로 가버리시던 저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떠오르더군요.

 

윌라는 불을 끄고 조용히 자기 침대로 올라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윌라는 똑바로 누워서 눈을 말똥말똥 떴다. 전혀 졸리지 않았다.

엄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23)

 

기껏해야 하룻밤 정도의 짧은 가출이지만, 어릴적 엄마의 부재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이상의 두려움과 혼돈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룻밤은 마치 1년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루하도록 길게 느껴집니다. , 그럼 윌라는 그 하룻밤을 어떻게 느꼈는지 볼까요?

 

현관에 들어서니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만 들렸다. 거실에 있는 라디에이터 위에 걸린 커튼 끝자락만 조금씩 흔들릴 뿐이었다. “엄마 안 오셨잖아.” 일레인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윌라는 책가방을 소파에 던졌다. “엄마한테 시간을 좀 주자.” 윌라가 말했다. (31)

 

시간은 흘러 197721살의 윌라가 보입니다. 남자친구 데릭과 함께 윌라의 부모님에게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됩니다.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 내렸지만 남자친구 데릭과의 결혼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 가는 겁니다.

 

그런데, 윌라는 비행기 안에서 의문의 남자로부터 총기 위협을 받게 됩니다. 옆자리의 데릭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요. 하지만, 비행기는 무사히 도착하고 의문의 남자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자칫하면 목숨마저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윌라는 데릭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윌라는 뚜렷한 반대 의사없이 데릭과의 결혼을 결정짓게 됩니다.

 

바로 그거야, 이 문제에서 윌라의 입장은 제쳐놓고 있잖아.” 엄마가 말했다. “윌라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얼마 전에 겨우 21살 생일이 지났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어.” (87)

 

뭔가 답답해집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순종적인 현모양처를 꿈꾸는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다시 발현된 듯함을 느끼고 맙니다. 아니, 개방적이고 자유롭기만 할 미국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성립이 되나? 싶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1997년의 윌라는 이안두 아들을 둔 41살의 주부입니다. 물론 아이들의 아빠는 20년 전 비행기 안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해준 그 데릭입니다. 윌라를 태우고 운전하던 데릭은 도로에서 경쟁적으로 보복 운전을 하다가 그만 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윌라만 덩그라니 남게 된 거죠.

 

그는 마흔세 살이었다. 장례식 계획을 세워놓기엔 턱없이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모든 건 윌라에게 남겨졌다. 윌라는 그저 두 아들을 껴안고 어둠 속에 있고 싶었다. 상실감으로 온몸이 아팠다. (95)

 

책 속에서 윌라를 표현해주는 말 중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죄책감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윌라가 죄책감을 느낄 수가 있죠? 작가는 겉모습만 미국 사람이지 속은 대한민국 사람인가 싶네요.

 

다시 의문의 전화를 받은 2017년으로 가보겠습니다. 전화의 내용인 즉슨 윌라의 큰아들 의 예전 여자친구 드니즈가 총상을 입는 사고가 생겼다. 드니즈가 내 이웃이다. 그래서 사고 직후 드니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드니즈의 딸 셰릴을 대신 돌봐주고 있다. 그런데 내가 출근을 해야하니 어서 와서 셰릴을 돌봐달라. 뭐 이런 얘기였습니다.

 

여기서 윌라는 뜻밖의 결정을 내립니다. 기꺼이 가서 셰릴을 돌봐주기로 합니다. 애리조나에서 볼티모어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죠. 비행 시간이 자그마치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인데도 말입니다.

 

그곳에서 윌라는 드니즈와 셰릴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이웃을 만나고 여러 가지 사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차츰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죠. 드니즈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와는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됩니다.

 

새로운 인생에서 그녀는 어딘가에 방을 빌릴 생각이었다. 밍튼 부인의 집에서 살 수도 있고 셰릴이 놀러 올 수 있는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를 빌릴 수도 있다. 벤이 자원봉사를 하는 교회에 나가서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거나 셰릴의 학교 친구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칠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걸 시도해 볼 수도 있다.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는 법이니까. (355)

 

우리네 인생을 가끔 시계추에 비교해보곤 합니다. ‘똑딱똑딱정해진 방향, 정해진 거리만 왔다갔다 하는거죠. 윌라도 그랬고, 대한민국의 거의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랬고, 저또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80의 노작가는 우리에게 그쯤하면 됐다고 위로해주는 듯 합니다. 지금까지 이타적으로 희생하며 살아왔으니 자신만의 행복을 한번 돌아보라고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