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하브루타로 교육하라 - 질문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 교육의 기적
전성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1월
평점 :
지난해 교회 영아부 예배시간에 목사님 설교를 통해 '하브루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말씀을 듣고, 서로 토론하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오늘날 유대인 중에서 뛰어난 인재가 많다는 요지였다.
설교를 들으며, 물음이 생겨났다.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마음에 새겼기 때문인지, '토론'을 한 것 때문인지. 아마도 목사님의 방점은 '말씀'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브루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말씀을 중요시했지만, '말씀'은 '하브루타'를 위한 '텍스트' 중 하나지 '하브루타'의 본질은 아니다. 유대인들의 성공비결은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른 것이기보다는 절대적인 경전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토론하여 자기의 것으로 삼은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유대인의 그 굳건한 믿음은 주입식의 '세뇌'가 아님은 분명한 듯하다. 이건 분명 배울 만한 것이다. '말씀'에 대해,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조금만 의문을 품어도 믿음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근본적인 신앙 토대에 갇혀 있는 오늘의 교회가 배울 점이다.
'하브루타'를 통해 세계 인구의 0.25%에 붉과한 유대인의 노벨상 수상자가 30%내외나 된다고 한다. 또한 유대인들은 세계 정치, 경제, 과학계를 주름잡고 있단다. 그 비결은 역시 수천년간 이어져온 '하브루타'의 전통이라고 한다. 그러면 성경 속의 그 답답하고, 완고한 바리새인들은 뭐지? 그들에겐 '하브루타'가 없었나? 무식할 정도로 고지식한 율법주의자들의 존재는? 분명한 건 예수님은 '하브루타'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성경 속의 유대인은 오늘날의 유대인과는 다른 족속인 것 같다.
그런데 또 궁금한 점은 그렇게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들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왜 그들이 장벽을 쌓아 팔레스타인인들을 가두고 통제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것이 오랜 기간 말씀을 '하브루타'로 토론한 결론이라면 더 의아스럽다. '하브루타'의 결과가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귀결되어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라없는 민족을 경계하고 핍박하는 것이라면 '하브루타'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나의 물음에 답을 주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자녀의 물음에 즉시 답변을 하지 않고, 다시 되물어 자녀 스스로 답을 찾아보게 한단다. 이 책에 나에게 되묻고 있다. 책을 읽고나서 나의 물음에 답을 찾는 것은 내 몫이 되는 셈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정치, 경제적 문제가 아닌 '교육'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하브루타'를 한국 교육의 대안으로 본다. 단지 유대인들의 놀라운 성취 때문이라기보다는 짝끼리 대화하는 가운데 길러지는 언어능력, 대인관계능력, 논리적 사고력이 관계도 좋고, 능력도 뛰어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교육의 문제를 열거하며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자녀들과 하루 10분씩 '하브루타'로 대화하고, 밥상에 모여 앉아 '하브루타'를 실천하라고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공감이 간다. 감정코칭, 인문학 교육, 핀란드 교육, 덴마크 교육, 하브루타까지 교육 문제에 대한 해법은 다르지만, 결국 교육의 지향점은 같은 곳으로 향한다. 그러니 '하브루타'가 전부는 아니다. 저자가 '하브루타' 전문가니 당연하다싶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유대인 교육에 대해 떠받드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불편했던 점이다.
만약 한국 사회에 이민온 유대인이 한국 교육제도에 따르지 않고, '하브루타'를 한다면 그 가정의 자녀도 한국 사회에서 성공이라 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일부 한국인 가정들도 유대인 가정을 롤모델 삼아 홈스쿨링으로 '하브루타'식으로 교육한다면? 그래서 대학은 커녕 정규교육 졸업증도 없는데도 그 자녀의 삶을 성공한 것이라 부모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까? 무작정 단정하진 못하겠지만, 거대한 사회 구조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하브루타'를 통해 똑똑해져서 일류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고 해서 자녀교육서도 출간해야 '하브루타'를 성공적이라 말하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하브루타'는 한국 사회에서 기형적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하브루타'를 교육의 '방법'만으로 보기보다는 '가치'의 문제로 보면 좋겠다.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는 가치로서 '하브루타'에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이 책에서도 강조하는 지점이다.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상위 1%에 들게 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즐겁게 하고 싶은 것을 찾게 하고, 쩨다카 정신처럼 이웃과 더불어 살게 하는 힘을 길러 주는 '운동'으로 자리잡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정도 회복되고, 학교도 회복되고, 사회도 건강이 회복되면 좋겠다.
'하브루타'가 부모에게는 '가정'을, 교사에게는 '학교'를, 정치인들에게는 '사회'를 되짚어 보게 하는 성찰의 만찬이 되길 바란다.
'하브루타'처럼 이 책은 나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어서 좀 답답하다. 나의 '하베르', 즉 하브루타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