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잘 나오는 한국사 - 기초탄탄 핵심콕콕
송창용 지음 / 컬처플러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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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설명이 마음에 든다.
 한국사 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상황이나 왕 그리고 제도 및 사건들을
콕 콕 집어 찬찬히 살명하니
큰 그림 속에 중요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어 마음이 왠지 든든하다.
정독으로 한 두 번 정도 읽으면
무리없이 역사의 맥이 잡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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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한국사 능력 검정 개념완성 고급편 - 한능검 고급(1급, 2급) 시험 대비, 개념 설명 + 이론 + 사료 및 자료 + 기출 문제 및 변형 문제 수록 설민석 한국사 능력 검정 개념완성
설민석 지음 / 단꿈드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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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문제에 정답이 아닌 것이 
정답으로 둔갑.. ㅜㅜ
그래서 집중을 더 더 더!!
해야만 한다. 의도적 오타?
그래도 이건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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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편견의 세계사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김희숙.정보라 옮김 / 생각의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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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했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두께를 자랑하는 이 책은 제목이 흥미를 끌었다. 이 책은 1920년대에 미국에서 쓰였고 1940년대에 개정 증보되어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한국에서 출판되었다는 그간의 과정을 알고 읽어야 덜 지루하다. 문맥을 파악하기에도 편하다. 그리고 중세 유럽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적 지식이 있어야 책장을 넘기기가 수월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너무도 우연히 고 남경태 선생님의 종횡무진 세계사를 읽었다. 그래서 그나마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단기 기억으로 남아 있는 중세 유럽에 대한 몇 몇의 지식을 등대 삼아 조금은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지은이 헨드릭 빌렘 반 룬은 굉장히 유머러스한 사람 같다.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빵빵 터지는 위트가 책읽기를 즐겁게 한다. 옮긴이들의 수고도 돋보인다. 가끔씩 번역이 왜 이래?’ 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역자후기를 읽어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납득이 갔다. 이 책을 통과해온 나는 그전의 나보다 얼마나 달라졌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머릿속엔 분명 새로운 지식이 쌓였겠지만(금방 잊겠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계속 생각하고 생각해 볼 참이다. 내 마음에 와 닿은 다섯 가지 문단을 음미해 보면서 말이다.

 

1. - 책은 한 권이면 족했다. 성경 안에 담긴 모든 문자, 모든 쉼표, 모든 세미콜론, 모든 감탄 부호 들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었다. -

거칠게 이야기하면, 중세 유럽을 관통하는 아니 지배하는 하나의 법칙은 종교였다. 유일신 신앙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이것 이외에는 다 거짓이고 비정상이고 배척의 대상이며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추악한 것이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피 튀기는 싸움 이후로는 이것 아닌 것의 불관용이 더 심해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전체주의와 다르지 않다.

종교는 지극히 문화의 산물이다.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 문단에서 다문화 시대라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자문화주의에 빠져 사는 나의 정형화된 무의식을 느꼈다. 언론에서 만들어낸 동남아시아인, 조선족, 새터민들의 검증되지 않은 이미지와 편견을 오롯이 믿고 시간을 내여 이들의 삶을 들여다 볼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내 일상에 그들의 삶이 교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심히 넘겼다. 하나의 책만 보았고 그것으로 만족했다. 주위에 있는 다양한 빛깔의 책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럴 필요 혹은 이유가 없었다. 이것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이 문단을 읽으면서 막연하게나마 깨닫는다.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2. - 모든 시대에는 그 나름대로의 골칫거리가 있다. 우리에게는 빨갱이가 있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사회주의자가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몰리 매과이어가 있었다. 우리 고조할아버지에게는 자코뱅이 있었다. 그리고 300년 전 우리 조상이라고 상황이 더 나았던 건 아니었다. -

2018년 대한민국에는 어떤 골칫거리가 있을까? 골칫거리라고 하니 어감이 부정적이다. 기분도 우울해진다. ‘시대의 숙제라고 해두자. ‘다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꼭 완수해야 할 숙제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아직 다문화 교육론에 대한 지식은 미천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한국은 분명 다문화 사회임에는 틀림이 없다. 내 아이 학교 학급에도 꼭 한 명씩은 다문화 2세들이 있고 집 주변 도서관에는 다문화 특화 코너에 중국어, 일어, 베트남어, 필리핀어 등의 책들이 즐비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문화 지원 센터에서는 각종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어 그 곳을 이용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서비스들은 다문화 가족 혹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정작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그리고 궁금한 대한민국 시민들을 위한 다문화 교육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문화 교육론 2(다문화 교육의 개념과 쟁점 오해와 이해) 동영상 강의 내용이 그래서 더욱 공감이 된다. 책을 통한 이해가 아닌 체험을 통한 이해가 절실하다. 다문화라는 말의 개념 모순을 지적하는 학문적인 공방도 의미가 있지만 거리를 지나치다 자주 마주치게 되는 외국인에 대한 나의 열린 마음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잘 모를 때, 찾아가 의논할 수 있는 생활 속 다문화 교육의 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3. -유일신을 섬기건 열두 명의 신을 섬기건 모든 신을 섬기건 상관없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팍스 로마나의 성공이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살자는 원칙을 편견 없이 적용한 덕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했다. -

어떤 단어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 반대의 단어를 이용하여 어떤 단어를 설명하면 명확하다. 관용의 반대쪽에 있는 무지와 편견, 광기를 통해 관용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 이 책은 그래서 똑똑하다. 위의 문단은 그런 방식의 반전이다. 관용의 잘된 예를 통해서 관용을 설명했다. 예로 든 시대는 팍스 로마나.

우리 앞의 숙제 중 하나인 다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도 어떻게 해야 할지 역사 속에서 찾으면 답이 아주 없지는 않을 터. 고 남경태 선생님이 쓰신 한국사에는 백의민족, 한민족, 한핏줄 등등 한국인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한 거의 망상에 가까운 오해가 얼마나 몰역사적인 관점의 소산인지 잘 나와 있다. 자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정은 바람직하지만 그 바탕은 사실과 진실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다문화 이해 이전에 자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다문화 유전자를 되새기며 조상들의 다문화성에 대해 배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후에야 비로소 다문화 존중의 길이 조금은 더 쉽게 열릴 것이다. 한국사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다문화 존중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기는 고려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려시대 사람들의 개방성과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을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배울 수 있는 학습 공간이 필요하다. 나도 더 많이 배우고 싶다.

4. -사적인 불관용은 어느 사회에서나 불편을 끼치기 마련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생충, 천연두, 험담을 일삼는 여자를 합친 것 보다 더 큰 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불관용은 교수대가 되지는 않는다. -

개인적으로 나는 뚱뚱한 사람을 싫어한다. 그리고 목소리가 허스키한 사람도 싫어한다. 큰 눈이 앞으로 돌출되기까지 했다면 최악이다. 나는 이렇듯 사람의 신체적 조건에 대한 이유 없는 불관용이 있다. 그러나 이건 내가 티를 내지만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사적 불관용이 공적 불관용으로 둔갑하여 제도화 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뚱뚱한 사람은 차를 탈 수 없게 제도화 한다면? 목소리가 허스키한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침묵해야 한다는 법을 만든다면? 픽 하고 웃고 넘길 우스갯소리로 들리지만 다문화에 대한 사적인 불관용이 아무런 제한 없이 퍼지고 확대재생산 되어 마침내 제도화 된다면 결과는 끔찍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르완다의 민족 내전, 중동지역의 종교 전쟁 등등 무수히 많은 불관용(공적)이 불어온 전쟁의 참상을. 다문화에 대한 공적 불관용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모두 공멸하지 않기 위해, 모두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다.

5. -여태까지 진보를 일종의 자동 시계로 여기고 따로 태엽을 감아줄 필요 없이 때때로 찬성만 해주면 된다는 행복한 착각에 빠져서 살아왔던 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우 끔찍해 보일 것이다. -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 우리는 알맞게 물을 주고 햇살을 주고 바람을 준다. 이런 일은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수고스러움이 아니고 기꺼운 마음의 발로이다. 꽃은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로 보답한다. 진보 역시 마찬가지다. 다문화 이해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에서 관용이라는 비료를 가지고 다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한다. 보수적이고 몰개성적이고 군중심리가 강한 대한민국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꽃밭에서 살고 싶다. 그럼 첫 삽을 뜨고 씨를 뿌리고 아주 영양가가 좋은 비료를 듬뿍 주고 기다려야 하리라. 천천히 그렇지만 성실하게 나의 꽃밭을 가꾸어 나가면 다른 이의 꽃밭과 만나 꽃밭은 점점 넓어지고 커질 것이다. 무수히 좋은 향기가 온 하늘과 땅 사이에서 진동할 것이다.

 

이 책의 어떤 지점이 다문화교육론과 연관성이 있을까?’ 책을 읽기시작하면서 계속 들었던 의문이 책읽기 중반을 넘기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중세 유럽에서 행해졌던 불행하고 끔찍한 사건들은 다양한 양상(결과)으로 나타났지만 원인은 하나였다. 자신의 생각, 문화, 신념, 종교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독선, 이것이었다.

관용의 정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다문화 사회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민의식도 관용일 것이다. 나는 관용적인 사람인가? 나는 세계시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할 보편적인 시민성을 내재하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자문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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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적 공간 - 왜 노인들은 그곳에 갇혔는가
오근재 지음 / 민음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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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 그들은 누구인가? -요약-

버림과 버려짐: 지은이는 예전 가족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의 서술로 글을 시작한다. 또 균형을 맞추려는 듯 예전 가족 관계에서 발생했던 부정적 측면도 한국무속사상연구라는 책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1차 집단주의, 파벌주의 등) 여기서 예전이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가 한반도를 집어 삼키기 전을 말한다.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사회의 가족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사람들은 철저하게 원자화 파편화되어 가족 내에서 어떠한 보살핌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개별화된 개인에게 맞춤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광인들의 배: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푸코의 너무도 유명한 책인 광기의 역사와 그 책에 실린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광인들의 배라는 그림을 예로 들어 노인을 격리하고 배제하는 한국사회를 분석한다. G-pass의 픽토그램(pictogram)과 색상이 선명한 구분선을 만들어 젊은이와 노인을 구분하고 격리하는 복지 시스템은 홍익 공업 전문대학 도안과 교수인 지은이의 눈에 보기에는 광인과 정상인을 구분했던 예전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푸코의 시대에 행해졌던 야만성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아브젝시옹, 쓰레기 미학: 아브젝시옹이란 자기 자신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추방함이라는 뜻으로 역시 너무도 유명한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라는 책을 인용하여 창조적으로 희생된 거룩한 쓰레기의 인문학적 쓰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쓰레기는 물질이며 잉여인간은 말 그대로 인간 즉 생명이기에 거룩한 쓰레기가 될 수 없다.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등의 이름으로 사회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실버 공간 잉여 공간을 형성한다.

 

느낀 점: 지은이(오근재)는 예술가다. 몸담고 있던 대학에서 명예롭게 은퇴한 노인이다. 노인도 여러 층위가 있다. 지은이는 지식인이고 생활이 궁핍하지 않으며 주변에 그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선, 후배가 제법 있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지닌 한국 남성 노인이 퇴적공간이라는 제목으로 노인에 대한 책을 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1부 노인, 그들은 누구인가? 는 버림과 버려짐, 광인들의 배, 아브젝시옹 쓰레기 미학이라는 소제목으로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를 관통하는 정서는 노인들이 사회로부터 느끼는 소외와 격리 그리고 배제에 대한 단상이다. 몇몇 예로든 복지 시스템은 노인들의 격리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견고하게 만든다. 계층 분리를 기본 전제로 출발한 한국 노인복지의 단순성 내지 영혼없음을 지은이는 매우 안타깝게 지적한다. 인간의 정체성을 나이로 구분할 수 있을까? 구분할 수 있다. 간단한 방법이고 매우 보편적인 방법이다. 인간의 생애 발달을 보면 그 나이에 이루어야할 역할 수행 및 과업이 있고 물리적인 발달 및 성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은이의 관점에서는 인간을 나이로 분류하여 관리하는 방식의 복지 시스템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은 듯하다. 지은이의 논리 및 정서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디. 지금까지, 구체적 대안 제시는 없는 상태다.

 

2부 그들만의 영역을 탐색하다 -요약-

참여자와 관찰자: 정년퇴임 후 자신의 사회적 위치도 교수에서 노인으로 변신한다. 그 후 동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삶이 궁금해져서 문화기술지의 연구자처럼 3개월간의 참여관찰이 시작된다. 탑골공원에 있는 노인들 속으로 들어간다.

죽지 않는 사람들의 종묘시민공원: 지은이는 종묘시민공원에서 만난 노인들에게 무척 활기찬 인상을 받는다. 예로든 죽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우화와 고갱의 그림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질문(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또 어디로 가는가?)을 종묘시민공원을 가득 채우는 노인들에게 던져보고 싶었다. 실행하지는 않는다. 가이드가 되어 준 탑골공원에서 처음 만난 친구와 바둑을 둘 뿐이다. 책에는 노인들을 위한 종묘시민공원 알뜰사용 꿀팁이 간략하게 소개되어있다.

낙담과 불신의 공간: 지인의 주선으로 인천 자유공원에 간 그는 매주 일요일에 인천 제일교회에서 실시하는 무료급식 현장을 관찰한다. 12시에 있을 식사를 위해 10시부터 모여 이러저러한 활동을 하는 노인들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낀다. 인터뷰를 위해 김찬식 씨를 소개 받고 그에게 여기에 오는 노인들의 내면과 정서의 면면을 듣는다. 노인들의 내면에는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 한국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인식 등등의 부정적 감정이 대부분이었다. 작가는 그리스 시대의 시인 헤시오도스의 장시 노동과 나날이라는 텍스트를 돋보기 삼아 불신이 가득한 노인들의 내면을 분석한다. 분석의 결과는 노동과 정의는 한 몸인데 노동이 결여된 시혜적인 복지와 혜택은 노인 내면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허리우드 클래식: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284-6, 낙원상가 4층에 노인들을 위한 실버 영화관이 있다. 20081월에 탑골공원을 배회하는 노인들의 모습에 가슴 아파한 누군가가 문을 연 것이다. 지은이는 허리우드 클래식 영화관을 방문해서 한 편의 영화를 본다. 클래식한 영화를 상영하는 이곳은 노인을 더욱 고독하고 초라하게 만드는 곳은 아닌지 반문한다. 실버 영화관 문을 연 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변해버린 위상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현대판 기로소, 서울노인복지센터: 기로소의 뜻과 기원 그리고 서울노인복지센터의 설립 배경과 지난 10년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기로소와 서울노인복지센터를 비교 설명하며 지금의 서울노인복지센터의 장, 단점을 분석한다. 작가는 1버림과 버려짐에서 제시하지 않은 대안을 여기에서 제시한다. -복지센터가 모든 노인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는 기관이 아니라 노인들과 함께하는 가정과 공동체를 지원하는 간접기관이 될 수는 없을까? 그래서 국가가 모든 개별자를 상대로 책임지려는 무모함에서 벗어나 가정과 공동체와 더불어 그 부담을 나눠지려는 정책으로 복지 문제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라고 말이다.

 

느낀 점: 2부는 지은이의 본격적인 참여관찰이 이뤄지는 상황을 묘사했다. 탑골공원, 무료 급식소, 종묘시민공원, 허리우드 클래식 실버 영화관, 서울노인복지센터 등으로 발길은 이어진다. 장소 중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이라 아쉬웠다. 그리고 무료 급식소에서 인터뷰한 내용이 다소 지은이의 편파적인 시각(책을 읽어보면 지은이는 근본적으로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200명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 딱 한 명 인터뷰한 내용을 그 곳에 모인 사람들 대다수의 마음인 냥 쓴 부분은 좀 납득하기 어려웠다. 물론 인터뷰하는 것이, 그 대상을 찾고 동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독자와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본적으로 선행되어야 과제들이 있는데 그걸 간과한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지난 학기에 이현숙 교수님의 노인복지론을 수강했다. 복지정책뿐 아니라 한 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정책에는 그 이면에 철학이 깔려있고 그 철학은 정책을 입안한 정치가들의 이해관계를 드러낸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경우 노인복지정책의 철학은 아쉽지만 선진국들이 취하는 제도주의가 아닌 잔여주의다. 지은이 역시 개개인에게 등급별로 차등별로 주는 복지의 혜택을 가족과 지역공동체 그리고 국가가 함께 연대해서 좀 더 근사하게 만들자고 주장한다. 그 청사진이 어떤 것인지의 구체적인 묘사는 없었지만 일정부분은 동의한다.

 

3부 고독과 소외의 진짜 얼굴 -요약-

잉여 인간, 잉여 얼굴: 탑골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압박이 제거된 (좋은 의미로든 부정적 의미로든) 건조한 얼굴을 지은이는 잉여 얼굴이라고 정의한다. 정의의 논리 구조 밑바닥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이 있다.

종로3가 역의 관수도: ‘인간은 본질에 선행하는 존재라는 말로 시작해서 사르트르, 까뮈, 그리고 고사관수도를 연결하여 피투된 현대인의 부조리한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그래서 어떤 현명한 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종묘공원, 탑골공원의 노인들에게 답을 구해보려 하지만 지은이는 그들의 잉여 얼굴을 보면서 솔직하게 말한다. 그들은 답은 모른다. 어쩌면 이 질문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것이리라.

누가 도원의 꿈을 꾸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종묘시민공원을 비교 분석하여 누가 도원을 꿈꾸는가? 하는 물음에 답한다. 도원은 이상(理想)이고 이상은 현실이 아니다. 티끌만큼의 오점도 없는 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종묘시민공원에는 노인들로 넘치고 노인들의 시선은 몽유도원도가 유도하는 위쪽이 아닌 아래로 과거로 향하고 있다.

 

느낀 점: 지은이의 예술적 정서와 감각이 돋보이는 장()이다. ‘고사관수도의 흐르는 물을 종로 3가의 인파로 연결하고 그림 속의 고사를 인파를 물끄러미 바라보는(앉아서) 노인군중과 오버랩시킴으로써 그림의 주제와 노인들의 숙명을 하나로 만들었다. 부러 실존주의 철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산다. 피투된 현실적 상황이 암담하기만 하다. 이것은 삶을 꾸려나가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고 숙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삶을 오래 살았다는 증거일 터. 삶에 익숙해졌다는 의미. 그렇다면 나름의 답을 가슴속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잉여 얼굴 속에 담겨진 그 답이 맞든 틀리든 그것을 제3자가 가치 판단할 일은 아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놓은 나도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하다. 배운 지식을 바람직하게 쓰고 싶은 마음은 많지만 상황이 녹녹치 않다. 나는 파라다이스까지는 필요 없다. 잠시 편하게 쉴 수 있는 리틀 포레스트, 그것만으로 족하다.

 

4부 생존을 증명하기 위한 전투 요약-

인정투쟁: 타인에게 나의 쓸모를 인정받는 받기 위해 애를 쓰는 행위를 인정투쟁이라고 한다. 헤겔에 의해서 철학적 사유의 반열에 올랐다. 지은이는 아가멤논그리고 카인과 아벨이야기를 예로 들어 인정투쟁의 발생 조건, 갈등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종묘공원에서 쉼 없이 벌어지는 인정투쟁을 목격한다. 이러저러한 소란이 삶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활기로 환원되어 지속성을 갖는다.

슬로우 시티를 떠도는 어르신들’: 여기서 말하는 슬로우 시티는 종묘공원이고 떠도는 어르신들은 공원을 배회하는 노인들을 말한다. 예전에 노인들에게 사회적 역할로 요구되었던 연장자로서의 충고, 조언, 지혜의 나눔 등은 스마트 폰의 지식검색으로 대치되었다. 더 이상 젊은이들은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사회 진화의 속도가 고도로 빨라지면서 속도에 밀린 노인들은 퇴적되어 쌓이듯 슬로우 시티 종묘공원에 모여 단조로운 풍경을 이룬다.

늙은 디오니소스의 밤: 종묘공원의 낮과 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낮과 밤은 상징적 의미다. 종묘공원에는 90%가 낮의 일과가 이루어지고 10% 정도 밤의 일이 일어나지만 지은이의 눈에는 늙은 육체는 매력도 정력도 남아있지 않기에 사회적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서술한다.

박카스 아줌마의 하루: 노년의 삶이 경제적으로 탄탄하지 못할 때 노인 여성은 이중의 고통으로 허덕인다. 여기에는 지은이의 시선으로 박카스 아줌마의 하루를 담아내고 있다.

 

느낀 점: 4부의 제목은 생존을 증명하기 위한 전투. 제목에서부터 짠한 느낌이 든다. 생존 자체를 증명해야 할 만큼 존재 의미가 흐릿한 사람들이 벌이는 전투가 아련했다. 특히 바카스 아줌마의 하루는 예전에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 배우 윤여정)가 생각나서 가슴이 턱 막혔다.

지은이는 1부에서 나라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모든 종류의 노인복지 정책을 비난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힘겨운 박카스 아줌마 같은 노인들에게는 그들이 선배시민으로서 유지해야 할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상의 무언가는 제공되어 한다고 생각한다. 지은이의 시각이 거슬렸던 부분이 한군데 더 있다. 노인의 성적 욕망을 너무 과소평가한 대목이다. 이는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노인교육론 내용 중 노인의 특성과도 맞지 않다.

 

5부 죽기 위해 산다 요약-

삶과 죽음의 공동경비구역: 종묘공원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 공원의 경계선인 담 너머에는 종묘가 있다 이곳은 조선왕조의 역대 제왕의 신주를 모시는 장소다. 또 가까운 곳에 종로3가의 금은방들이 즐비해 있다. 속세의 가장 세속적인 욕망이 이글거리며 죽음의 적막이 강력한 침묵으로 내려앉아 있는 종묘공원은 문자 그대로 삶과 죽음의 공동경비구역이다. 지은이는 이런 지리적 이점이 공원을 메우는 노인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제공해 주길 바란다. 삶은 유한하며 지금 소유한 어느 것도 저승으로 옮겨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톨스토이가 보여준 세 가지 죽음: 톨스토이의 책 세 가지 죽음을 통해 죽음의 의례를 설명하고 있다. 죽은 자를 위함이 아닌 산 자의 인문학적 교양의 척도로써 죽음의 의례는 만들어진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세 죽음은 산 자의 행위에서 비롯된다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나비인가? 가족 가상 체험: 마지막 장에서 지은이는 다시 처음 장에서 말한 것을 되풀이 하여 주장한다. 국가의 복지 정책이 개인에게 초점을 두면 개인은 계속 원자화 될 것이라고. 복지의 혜택을 받기 위해 가족은 격리 분리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고 말이다. 가족 시스템이 다시 복원될 수 있는 복지정책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말한다.

 

느낀 점: 노인을 주제로 한 정체성이 모호한 책은 이 책이 두 번째다.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말은 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그냥 에세이로 분류하자.) 지난 학기에 수강한 시민교육론의 출석 수업 강사님 덕분에 알게 된 송호근씨의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라는 책 이후로 말이다. 송호근씨가 사회학자답게 건조한 스타일로 자신을 포함한 한국 노인의 일상을 담담하지만 날카롭게 썼다면 퇴적 공간의 지은이는 예술가답게 좀 더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접근해서 다른 예술작품과 견주어 가면서 노인이야기를 쓴 듯하다.(예가 너무 많아서 문장력이 조금은 산만해진 느낌도 없지 않다.)

지은이의 글에 전부 다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특히 5부의 내용 중에서 종묘공원에서 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는(지은이의 관점이다) 노인군중에 대한 지은이의 차가운 시선은 좀 거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또 현재 시행되고 있는 노인복지 정책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근거의 논리가 빈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 노인병원에 계시거나 노인요양원에 계시는 모든 노인들이 다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친정에는 외할머님이 계신다. 외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있는 90세의 노인이다. 내년이면 70세가 되는 우리 엄마가 하루 종일 외할머니의 케어를 전담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오전부터 오후까지(10~6) 요양원에서 여러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외할머니는 세상에 정말 재미있는 것이 많다며 요양원에 가시는 걸 좋아하신다. 요양원에 다니시기 전보다 치매 진행속도도 더디어졌고 혈색도 더 좋아지셨다. 엄마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내가 감지하고 있는 세계에서는 이렇듯 요양원에 잘 다니시는 외할머니가 계시기에 지은이의 주장에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삶과 죽음은 한 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인식시켜주었고 그리 멀지 않은 나의 노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단순하고 수동적인 노인이 아닌 선배신민으로서의 적극적인 노년의 삶을 살고 싶다. 멋진 청사진을 그리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면 이미 그것은 현실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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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와 프로이트의 대결 - 두 거장의 충돌하는 심리학
와다 히데키 지음, 이민연 옮김 / 에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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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의 두 거장인 아들러와 프로이트의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흥미롭게 설명했다.
그리고 정신의학의 발전 과정을 단지 어떤 이의 
사상의 완전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 문화적 요구 및 상황과 맞물려 작용한다는
사실을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근데, 말미에 가서 사형제도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전체 글의 흐름과
맞지 않고 생경한 느낌을 준다.
아들러의 공동체 감각과도 상충되고..
또 집단 괴롭힘에 대한 처방(?)에 대해서
말 할 때도 아들러의 교육론과는
정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뭐지? 라는 의아함을 불러 일으키는 아쉬운
말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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