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노인, 그들은 누구인가? -요약-
① 버림과 버려짐: 지은이는 예전 가족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의 서술로 글을 시작한다. 또 균형을 맞추려는 듯 예전 가족 관계에서 발생했던 부정적 측면도 ‘한국무속사상연구’라는 책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1차 집단주의, 파벌주의 등) 여기서 예전이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가 한반도를 집어 삼키기 전을 말한다.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사회의 가족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사람들은 철저하게 원자화 파편화되어 가족 내에서 어떠한 보살핌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개별화된 개인에게 맞춤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② 광인들의 배: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푸코의 너무도 유명한 책인 ‘광기의 역사’와 그 책에 실린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광인들의 배’라는 그림을 예로 들어 노인을 격리하고 배제하는 한국사회를 분석한다. G-pass의 픽토그램(pictogram)과 색상이 선명한 구분선을 만들어 젊은이와 노인을 구분하고 격리하는 복지 시스템은 홍익 공업 전문대학 도안과 교수인 지은이의 눈에 보기에는 광인과 정상인을 구분했던 예전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푸코의 시대에 행해졌던 야만성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③ 아브젝시옹, 쓰레기 미학: 아브젝시옹이란 자기 자신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추방함이라는 뜻으로 역시 너무도 유명한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라는 책을 인용하여 창조적으로 희생된 거룩한 쓰레기의 인문학적 쓰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쓰레기는 물질이며 잉여인간은 말 그대로 인간 즉 생명이기에 거룩한 쓰레기가 될 수 없다.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등의 이름으로 사회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실버 공간 잉여 공간을 형성한다.
느낀 점: 지은이(오근재)는 예술가다. 몸담고 있던 대학에서 명예롭게 은퇴한 노인이다. 노인도 여러 층위가 있다. 지은이는 지식인이고 생활이 궁핍하지 않으며 주변에 그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선, 후배가 제법 있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지닌 한국 남성 노인이 ‘퇴적공간’이라는 제목으로 노인에 대한 책을 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1부 노인, 그들은 누구인가? 는 버림과 버려짐, 광인들의 배, 아브젝시옹 쓰레기 미학이라는 소제목으로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를 관통하는 정서는 노인들이 사회로부터 느끼는 소외와 격리 그리고 배제에 대한 단상이다. 몇몇 예로든 복지 시스템은 노인들의 격리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견고하게 만든다. 계층 분리를 기본 전제로 출발한 한국 노인복지의 단순성 내지 ‘영혼없음’을 지은이는 매우 안타깝게 지적한다. 인간의 정체성을 나이로 구분할 수 있을까? 구분할 수 있다. 간단한 방법이고 매우 보편적인 방법이다. 인간의 생애 발달을 보면 그 나이에 이루어야할 역할 수행 및 과업이 있고 물리적인 발달 및 성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은이의 관점에서는 인간을 나이로 분류하여 관리하는 방식의 복지 시스템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은 듯하다. 지은이의 논리 및 정서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디. 지금까지, 구체적 대안 제시는 없는 상태다.
2부 그들만의 영역을 탐색하다 -요약-
④ 참여자와 관찰자: 정년퇴임 후 자신의 사회적 위치도 교수에서 노인으로 변신한다. 그 후 동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삶이 궁금해져서 문화기술지의 연구자처럼 3개월간의 참여관찰이 시작된다. 탑골공원에 있는 노인들 속으로 들어간다.
⑤ ‘죽지 않는 사람들’의 종묘시민공원: 지은이는 종묘시민공원에서 만난 노인들에게 무척 활기찬 인상을 받는다. 예로든 ‘죽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우화와 고갱의 그림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질문(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또 어디로 가는가?)을 종묘시민공원을 가득 채우는 노인들에게 던져보고 싶었다. 실행하지는 않는다. 가이드가 되어 준 탑골공원에서 처음 만난 친구와 바둑을 둘 뿐이다. 책에는 노인들을 위한 종묘시민공원 알뜰사용 꿀팁이 간략하게 소개되어있다.
⑥ 낙담과 불신의 공간: 지인의 주선으로 인천 자유공원에 간 그는 매주 일요일에 인천 제일교회에서 실시하는 무료급식 현장을 관찰한다. 12시에 있을 식사를 위해 10시부터 모여 이러저러한 활동을 하는 노인들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낀다. 인터뷰를 위해 김찬식 씨를 소개 받고 그에게 여기에 오는 노인들의 내면과 정서의 면면을 듣는다. 노인들의 내면에는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 한국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인식 등등의 부정적 감정이 대부분이었다. 작가는 그리스 시대의 시인 헤시오도스의 장시 ‘노동과 나날’이라는 텍스트를 돋보기 삼아 불신이 가득한 노인들의 내면을 분석한다. 분석의 결과는 노동과 정의는 한 몸인데 노동이 결여된 시혜적인 복지와 혜택은 노인 내면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⑦ 허리우드 클래식: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284-6, 낙원상가 4층에 노인들을 위한 실버 영화관이 있다. 2008년 1월에 탑골공원을 배회하는 노인들의 모습에 가슴 아파한 누군가가 문을 연 것이다. 지은이는 허리우드 클래식 영화관을 방문해서 한 편의 영화를 본다. 클래식한 영화를 상영하는 이곳은 노인을 더욱 고독하고 초라하게 만드는 곳은 아닌지 반문한다. 실버 영화관 문을 연 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변해버린 위상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⑧ 현대판 기로소, 서울노인복지센터: 기로소의 뜻과 기원 그리고 서울노인복지센터의 설립 배경과 지난 10년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기로소와 서울노인복지센터를 비교 설명하며 지금의 서울노인복지센터의 장, 단점을 분석한다. 작가는 1부 ①버림과 버려짐에서 제시하지 않은 대안을 여기에서 제시한다. -복지센터가 모든 노인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는 기관이 아니라 노인들과 함께하는 가정과 공동체를 지원하는 간접기관이 될 수는 없을까? 그래서 국가가 모든 개별자를 상대로 책임지려는 무모함에서 벗어나 가정과 공동체와 더불어 그 부담을 나눠지려는 정책으로 복지 문제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라고 말이다.
느낀 점: 2부는 지은이의 본격적인 참여관찰이 이뤄지는 상황을 묘사했다. 탑골공원, 무료 급식소, 종묘시민공원, 허리우드 클래식 실버 영화관, 서울노인복지센터 등으로 발길은 이어진다. 장소 중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이라 아쉬웠다. 그리고 무료 급식소에서 인터뷰한 내용이 다소 지은이의 편파적인 시각(책을 읽어보면 지은이는 근본적으로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200명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 딱 한 명 인터뷰한 내용을 그 곳에 모인 사람들 대다수의 마음인 냥 쓴 부분은 좀 납득하기 어려웠다. 물론 인터뷰하는 것이, 그 대상을 찾고 동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독자와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본적으로 선행되어야 과제들이 있는데 그걸 간과한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지난 학기에 이현숙 교수님의 노인복지론을 수강했다. 복지정책뿐 아니라 한 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정책에는 그 이면에 철학이 깔려있고 그 철학은 정책을 입안한 정치가들의 이해관계를 드러낸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경우 노인복지정책의 철학은 아쉽지만 선진국들이 취하는 제도주의가 아닌 잔여주의다. 지은이 역시 개개인에게 등급별로 차등별로 주는 복지의 혜택을 가족과 지역공동체 그리고 국가가 함께 연대해서 좀 더 근사하게 만들자고 주장한다. 그 청사진이 어떤 것인지의 구체적인 묘사는 없었지만 일정부분은 동의한다.
3부 고독과 소외의 진짜 얼굴 -요약-
⑨ 잉여 인간, 잉여 얼굴: 탑골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압박이 제거된 (좋은 의미로든 부정적 의미로든) 건조한 얼굴을 지은이는 잉여 얼굴이라고 정의한다. 정의의 논리 구조 밑바닥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이 있다.
⑩ 종로3가 역의 관수도: ‘인간은 본질에 선행하는 존재’라는 말로 시작해서 사르트르, 까뮈, 그리고 고사관수도를 연결하여 피투된 현대인의 부조리한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그래서 어떤 현명한 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종묘공원, 탑골공원의 노인들에게 답을 구해보려 하지만 지은이는 그들의 잉여 얼굴을 보면서 솔직하게 말한다. 그들은 답은 모른다. 어쩌면 이 질문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것이리라.
⑪ 누가 도원의 꿈을 꾸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종묘시민공원을 비교 분석하여 누가 도원을 꿈꾸는가? 하는 물음에 답한다. 도원은 이상(理想)이고 이상은 현실이 아니다. 티끌만큼의 오점도 없는 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종묘시민공원에는 노인들로 넘치고 노인들의 시선은 몽유도원도가 유도하는 위쪽이 아닌 아래로 과거로 향하고 있다.
느낀 점: 지은이의 예술적 정서와 감각이 돋보이는 장(章)이다. ‘고사관수도’의 흐르는 물을 종로 3가의 인파로 연결하고 그림 속의 고사를 인파를 물끄러미 바라보는(앉아서) 노인군중과 오버랩시킴으로써 그림의 주제와 노인들의 숙명을 하나로 만들었다. 부러 실존주의 철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산다. 피투된 현실적 상황이 암담하기만 하다. 이것은 삶을 꾸려나가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고 숙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삶을 오래 살았다는 증거일 터. 삶에 익숙해졌다는 의미. 그렇다면 나름의 답을 가슴속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잉여 얼굴 속에 담겨진 그 답이 맞든 틀리든 그것을 제3자가 가치 판단할 일은 아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놓은 나도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하다. 배운 지식을 바람직하게 쓰고 싶은 마음은 많지만 상황이 녹녹치 않다. 나는 파라다이스까지는 필요 없다. 잠시 편하게 쉴 수 있는 리틀 포레스트, 그것만으로 족하다.
4부 생존을 증명하기 위한 전투 –요약-
⑫ 인정투쟁: 타인에게 나의 쓸모를 인정받는 받기 위해 애를 쓰는 행위를 인정투쟁이라고 한다. 헤겔에 의해서 철학적 사유의 반열에 올랐다. 지은이는 ‘아가멤논’ 그리고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예로 들어 인정투쟁의 발생 조건, 갈등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종묘공원에서 쉼 없이 벌어지는 인정투쟁을 목격한다. 이러저러한 소란이 삶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활기로 환원되어 지속성을 갖는다.
⑬ 슬로우 시티를 떠도는 ‘어르신들’: 여기서 말하는 슬로우 시티는 종묘공원이고 떠도는 어르신들은 공원을 배회하는 노인들을 말한다. 예전에 노인들에게 사회적 역할로 요구되었던 연장자로서의 충고, 조언, 지혜의 나눔 등은 스마트 폰의 지식검색으로 대치되었다. 더 이상 젊은이들은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사회 진화의 속도가 고도로 빨라지면서 속도에 밀린 노인들은 퇴적되어 쌓이듯 슬로우 시티 종묘공원에 모여 단조로운 풍경을 이룬다.
⑭ 늙은 디오니소스의 밤: 종묘공원의 낮과 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낮과 밤은 상징적 의미다. 종묘공원에는 90%가 낮의 일과가 이루어지고 10% 정도 밤의 일이 일어나지만 지은이의 눈에는 늙은 육체는 매력도 정력도 남아있지 않기에 사회적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서술한다.
⑮ 박카스 아줌마의 하루: 노년의 삶이 경제적으로 탄탄하지 못할 때 노인 여성은 이중의 고통으로 허덕인다. 여기에는 지은이의 시선으로 박카스 아줌마의 하루를 담아내고 있다.
느낀 점: 4부의 제목은 ‘생존을 증명하기 위한 전투’다. 제목에서부터 짠한 느낌이 든다. 생존 자체를 증명해야 할 만큼 존재 의미가 흐릿한 사람들이 벌이는 전투가 아련했다. 특히 ‘바카스 아줌마의 하루’는 예전에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 배우 윤여정)가 생각나서 가슴이 턱 막혔다.
지은이는 1부에서 나라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모든 종류의 노인복지 정책을 비난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힘겨운 박카스 아줌마 같은 노인들에게는 그들이 선배시민으로서 유지해야 할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상의 무언가는 제공되어 한다고 생각한다. 지은이의 시각이 거슬렸던 부분이 한군데 더 있다. 노인의 성적 욕망을 너무 과소평가한 대목이다. 이는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노인교육론 내용 중 노인의 특성과도 맞지 않다.
5부 죽기 위해 산다 –요약-
⑯ 삶과 죽음의 공동경비구역: 종묘공원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 공원의 경계선인 담 너머에는 종묘가 있다 이곳은 조선왕조의 역대 제왕의 신주를 모시는 장소다. 또 가까운 곳에 종로3가의 금은방들이 즐비해 있다. 속세의 가장 세속적인 욕망이 이글거리며 죽음의 적막이 강력한 침묵으로 내려앉아 있는 종묘공원은 문자 그대로 삶과 죽음의 공동경비구역이다. 지은이는 이런 지리적 이점이 공원을 메우는 노인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제공해 주길 바란다. 삶은 유한하며 지금 소유한 어느 것도 저승으로 옮겨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⑰ 톨스토이가 보여준 세 가지 죽음: 톨스토이의 책 ‘세 가지 죽음’을 통해 죽음의 의례를 설명하고 있다. 죽은 자를 위함이 아닌 산 자의 인문학적 교양의 척도로써 죽음의 의례는 만들어진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세 죽음은 산 자의 행위에서 비롯된다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⑱ 우리의 영혼은 나비인가? ⑲ 가족 가상 체험: 마지막 장에서 지은이는 다시 처음 장에서 말한 것을 되풀이 하여 주장한다. 국가의 복지 정책이 개인에게 초점을 두면 개인은 계속 원자화 될 것이라고. 복지의 혜택을 받기 위해 가족은 격리 분리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고 말이다. 가족 시스템이 다시 복원될 수 있는 복지정책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말한다.
느낀 점: 노인을 주제로 한 정체성이 모호한 책은 이 책이 두 번째다.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말은 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그냥 에세이로 분류하자.) 지난 학기에 수강한 ‘시민교육론’의 출석 수업 강사님 덕분에 알게 된 송호근씨의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라는 책 이후로 말이다. 송호근씨가 사회학자답게 건조한 스타일로 자신을 포함한 한국 노인의 일상을 담담하지만 날카롭게 썼다면 퇴적 공간의 지은이는 예술가답게 좀 더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접근해서 다른 예술작품과 견주어 가면서 노인이야기를 쓴 듯하다.(예가 너무 많아서 문장력이 조금은 산만해진 느낌도 없지 않다.)
지은이의 글에 전부 다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특히 5부의 내용 중에서 종묘공원에서 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는(지은이의 관점이다) 노인군중에 대한 지은이의 차가운 시선은 좀 거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또 현재 시행되고 있는 노인복지 정책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근거의 논리가 빈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 노인병원에 계시거나 노인요양원에 계시는 모든 노인들이 다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친정에는 외할머님이 계신다. 외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있는 90세의 노인이다. 내년이면 70세가 되는 우리 엄마가 하루 종일 외할머니의 케어를 전담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오전부터 오후까지(10~6시) 요양원에서 여러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외할머니는 세상에 정말 재미있는 것이 많다며 요양원에 가시는 걸 좋아하신다. 요양원에 다니시기 전보다 치매 진행속도도 더디어졌고 혈색도 더 좋아지셨다. 엄마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내가 감지하고 있는 세계에서는 이렇듯 요양원에 잘 다니시는 외할머니가 계시기에 지은이의 주장에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삶과 죽음은 한 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인식시켜주었고 그리 멀지 않은 나의 노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단순하고 수동적인 노인이 아닌 선배신민으로서의 적극적인 노년의 삶을 살고 싶다. 멋진 청사진을 그리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면 이미 그것은 현실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