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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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두서없이 이어져나가면서 서로의 성격을 흘끔거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구불구불한 산악도로에서 잠깐씩 경치를 구경하는 것과 비슷했다. - p.11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이다. 타인의 흠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그것이 또 얼마나 무익한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ㅡ 설혹 그 과정에서 눈이 약간 먼다고 하더라도? 냉소주의와 사랑이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 한 맥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갑작스러운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면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과장 덕분에 우리는 습관이 된 비관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에게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믿음을 가지게 된 어떤 사람에게 우리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p.19

욕망 때문에 나는 실마리들을 악착같이 쫓는 사냥꾼이 되었다. 모든 것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낭만적 편집증 환자가 되었다. 그러나 비록 구애의 의식들 때문에 안달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수수께끼 때문에 클로이가 톡특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곧바로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락하는 사람[우리는 곧 배은망덕해진다]이나 절대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우리는 곧 그 사람을 잊어버린다]이 아니라, 희망과 절망의 양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상대의 마음에 안겨줄 줄 아는 사람이다. - p.33

˝어쩌면 슬픈 얘기일지도 모르죠. 두 사람은 똑같은 기대를 안고 사귀어야 해요. 서로 똑같이 줄 준비가 된 상태에서 말이에요. 한쪽은 그저 한번 즐기고 싶어하고 다른 쪽은 진정한 사랑을 원하면 안 된다는 거죠. 거기서 모든 괴로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 p.37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 p.39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 p.41

순간 나는 클로이의 팔꿈치 근처에 있던, 무료로 나오는 작은 마시멜로 접시를 보았다. 갑자기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시멜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시멜로가 어쨌기에 그것이 나의 클로이에 대한 감정과 갑자기 일치하게 되었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너무 남용되어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는 달리, 나의 마음 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더 불가해한 일이지만, 내가 클로이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 p.116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그래서 방관자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지겹다. 방관자들은 묻는다. 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한 인간 외에 무엇을 보는 걸까? 나는 클로이를 향한 내 뜨거움을 친구들과 공유해보려고 했다. 영화, 책, 정치와 관련하여 많은 공통점을 발견한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메시아적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을 마주한 무신론자들처럼 세속적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친구들한테 세탁기 옆의 클로이, 영화관에서의 클로이와 나, 주문을 하려고 기다리는 클로이와 나에 대해서 열 번쯤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플롯은 없고 액션조차도 거의 없는 이야기, 움직임이 거의 없는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중심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야 나는 사랑이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 p.120, 121

나는 윌의 질문 덕분에 한 사람에게 속해 있는 특질과 연인이 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특질 사이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 p.121, 122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 p.143

클로이와 나는 상당 기간에 걸쳐 펼쳐진 사랑 이야기를 살았고, 그 시간 동안 우리의 감정은 엄청나게 소용돌이를 쳤기 때문에, 단순히 사랑했다고 말하면 마음은 편해질지 모르지만, 사건들을 절망적일 정도로 투박하게 축약해버리는 것이다. - p.158

나는 상상 속에서만 클로이를 배반했던 것이 아니다. 종종 따분하기도 했다. 호화로운 호텔이나 궁전에 사는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사람은 어떤 것에든 익숙해질 수 있다. 한동안 나는 클로이가 나를 사랑한다는 기적을 심드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녀는 내 삶의 일상적인,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특징이 되어버렸다. - p.164

사랑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야. 느끼는 것과 하는 일이 모두 강렬해진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나에게 그 시간은 삶이 다른 데 가 있지 않았던 몇 번 안 되는 시간 가운데 하나야. - p.220

사랑은 썰물이 되었다. - p.221

물론 사랑에서 퇴짜를 맞는 것은 원래부터 노래를 못 하는 당나귀보다 견디기 힘들다. 나에게 퇴짜를 놓은 사람이 한때는 사랑을 하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 p.227, 228

낙타는 시간을 따라 걸어가면서 짐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계속 등에 실린 기억과 사진들을 흔들어 사막에 떨어뜨렸고, 바람이 그것들을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낙타는 점점 더 가벼워져서 나중에는 그 독특한 모습으로 뛰어가기까지 했다. 그러다 마침내 현재라고 부르는 조그만 오아시스에서 이 지친 짐승은 나의 나머지를 따라잡게 되었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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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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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란 ˝나는 약하니까˝라는 이유를 뻔뻔스럽게 내세우면서 그것이 상대를 설득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정당한 이유라고 믿는 사람, 자신이 사회적으로 약한 입장이라는 점에 대해 전혀 부채감을 느끼지 않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당연하다는 듯 내보이며 약자의 특권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 p.33

한 번 더 확인해두자. 착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사회로부터 말살당하고 싶지 않아서, 즉 악행을 저지를 만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 저항하며 홀로 살아갈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양심에 찔려서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뻔뻔하게도 자신을 미화하고 싶은 것이다. 착한 사람의 가장 큰 죄는 둔감한 것, 즉 스스로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것, 생각하지 않는 것, 느끼지 않는 것이다. - p.45

그러니까 착한 사람이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가치관에 딱 달라붙어 그 공동체의 색깔과 같은 보호색으로 자신의 신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다. - p.46

스스로 떨쳐 일어나 이런 슬픈 사회를 개혁하려 한다면 얼마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착한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이런 사회는 틀려먹었어!˝라고 한탄할 뿐이다. - p.59

그는 남이 선택하는 것을 선택할 뿐이고, 남이 바라는 행복을 손에 넣을 뿐이며,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안할 뿐이기 때문이다. ‘남‘이란 하이데거의 용어로는 ‘세인‘인데, 이는 모든 사람이자 일반인, 아무도 아닌 사람, 사회의 보호색으로 몸을 감출 수 있는 사람, 그 어떤 일도 일부러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뜻한다. - p.101

착한 사람들은 어느 시대건 결코 자기 비판을 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는 데 조금의 의문도 품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같은 행동을 하는 데서 한없는 기쁨과 안락함을 느낀다. 다시 말해 착한 사람들의 올바름의 근거는 딱 하나, ‘모두‘다. - p. 183

그들(착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오로지 단 한 가지를 바란다. 바로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에게나 먼저 친절을 베푼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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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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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슨 일을 했느냐가 아니다. 왜,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 p.27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계속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이미 훌륭한 인생이다. 그대로 가면 된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고 느끼거나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직 충분히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더 훌륭한 삶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 p.34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 p.37

열등감은 삶의 기쁨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감정 중에서도 단연 고약한 것이다. - p.42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상상해보았다. 과연 행복할까?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영생은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의미를 말살한다. 영원히 산다면 오늘 만난 사람들, 그들과 나눈 대화와 교감, 함께한 일들이 의미가 없어질 것만 같다. 그 모든 것이 다 굳이 오늘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일이 된다. 어디에도 굳이 열정을 쏟아야 할 필요가 없다. - p.46

카뮈는 왜 자살하지 않았을까? 마흔일곱 살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 순간까지 카뮈는 행동으로 대답했다. 그는 세상과 삶 그 자체가 부조리라고,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사형수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자살은 이 부조리를 알고 체념하는 것이다. 살아가려면 체념하지 말고 반항해야 한다. 있는 힘을 다해 모든 것을 소모하면서 살고, 이 해결할 수 없는 부조리와 끝내 화해하지 않은 채 죽는 것이다. - p.57

만약 영원히 헤어진다고 해도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사람이 없다면 그대는 잘못 산 것이다.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며 산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사랑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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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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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 p.99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 p.117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 p.134

내가 건너온 무더운 여름을 정말 그는 건너오지 못했나. - p.208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 p.212,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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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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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 p.67

예쁜 돌이 있으면 주워가려고 모래만 바라보면서 걷다가 나는 깨달았습니다. 똑같이 생긴 돌멩이는 하나도 없는데도, 저들이 저렇게 모여있군요. - p.96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거나 처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갓 태어난 아이의 눈과 귀처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다. P.106

본디 나는 내가 경험하는 세계의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는 종류의 인간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건 내가 경험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뭔가에 빠진다면 그건 내 안에 들어온 그 뭔가에 빠져든다는 뜻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소통의 인간이 될 수 없었다. 전적으로 내 경험의 공간 안에서 모든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도, 증오도, 행복도, 슬픔도, 모두 내 세계 안쪽 창에 맺히는 물방울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제대하면서 나는 소통이 과연 어떤 것인지 여실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러니까 한 여자애와 헤어지면서 그 어마어마했던 나만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내린 것이다. 나는 내 세계 안쪽 창에 맺힌 슬픔만으로는 부족했다. 비로소 나는 그 바깥의 슬픔에까지도 눈을 돌리게 됐다. 내게는 슬픔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 p.139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p.141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p.151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것이 사라질 때를 상상할 수 있다면. 열여덟 살의 11월에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단순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사실 때문에 사랑했던 것이며, 사랑하지 못할까봐 안달이 난 것이었다.
사실은 지금도 나는 뭔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기만 하다. 그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191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뜻은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 세상을 더 밝고 멀리 보라는 까닭이다.

‘주인이 집을 물가에 지은 뜻은
물고기도 나와서 거문고를 들으람이라.‘

쓸쓸한 물고기 같았던 내게도 거문고 소리가 들려온 것은 내 안에 있는 재능을 더 열심히 살려보라고 권유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 p.194, 195

한동안 그 아이가 미친 듯이 보고 싶다가, 또 얼마간은 문득문득 생각이 나다가, 결국에는 잊혀졌다. 복숭아뼈에 남은 흉터처럼 얼마간 마음에 남아 있다가는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둘이서 힘을 합쳐 만들었던, 이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즉석떡볶이만은 여태 잊혀지지 않는다. 어색함과 순진함과 내숭과 부끄러움 등으로 만들었던 그 즉석떡볶이만은.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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