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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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화가와 만나서 얻을 수 있는 부수입은 그들의 그림 덕분에 이 세상에서 화가가 예민하게 반응을 보였을만한 곳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p.12

호퍼의 작품은 잠시 지나치는 곳과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자신 내부의 어떤 중요한 곳, 고요하고 슬픈 곳, 진지하고 진정한 곳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이 호퍼 그림의 묘한 특징이다. p.15

우리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 가정환경은 우리를 일상생활 속의 나라는 인간, 본질적으로는 내가 아닐 수도 있는 인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p.20

둘 다 리틀 셰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단지 식당을 고르는 취향이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매우 내밀한 심리의 한 부분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p.24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게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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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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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숙에는 괴짜들도 많았다. 사실 파리 빈민가는 괴짜들의 집합장소였다. 이들은 외톨이인 데다 반은 미친 채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정상적으로 온건하게 살려는 노력을 포기해버린 사람들이었다. 돈이 사람을 노동에서 해방시켜주듯, 가난도 보편타당한 행동 기준에서 그들을 해방시켜주었다. 우리 여인숙의 투숙객 중 몇몇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p.130

 

하루 6프랑의 생활이 지극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찮은 재앙이 일어나도 끼니를 거르게 마련이다. 가령 마지막 남은 80상팀을 주고 우유를 반 리터 사 와서 알코올풍로에 데우고 있다고 하자. 우유가 끓고 있는데 빈대 한 마리가 팔에서 스멀거리다. 그래서 손톱으로 톡 튕겼더니 그것이 퐁당! 우유 속으로 빠져버린다. 이렇게 되면 우유를 쏟아버리고 배를 쫄쫄 곯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p.145,146

 

가난과 불가분의 관계인 권태라는 것도 느끼게 된다. 아무 할 일도 없는 데다 배불리 먹지도 못하는 시간에는 그 무엇에도 흥미가 일지않는다. 보들레르의 시에 나오는 '젊은 해골' 같은 느낌으로 한 번 침대에 누우면 반나절이나 누워 있곤 한다. 오로지 음식만이 몸을 일으키게 한다. 일주일을 빵과 마가린으로 버틴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몇몇 곁다리 기관이 달린 밥통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p.147

 

왜냐하면 가난에 다가가면서 가난으로 인한 어떤 발견을 했기 때문이다. 권태라든가 비열할 정도로 쩨쩨한 것, 굶주림의 시초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더불어 가난이 지닌 커다란 장점, 즉 가난은 미래를 말살해버린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어느 한도 내에서는 돈을 적게 가질수록 걱정도 덜 하게 된다는 것은 실제로 들어맞는 얘기이다. 모두 합쳐 100프랑밖에 없을 때는 가장 소심한 겁쟁이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단 3프랑만 가지고 있으면 아주 무심해진다. 3프랑으로는 다음 날까지 먹을 수 있을 것이니 그 이상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루하기는 하겠지만 무섭지는 않다. 멍하니 '하루나 이틀 후에 나는 굶어 죽을 거야. 놀라운 일이구나, 안그래?'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다른 잡념에 빠져든다. 빵 한 덩이와 마가린으로 때우는 식사가 어느 정도는 그것 자체로 진통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p.148,149

 

"내일이면 뭐가 됐든 걸려들 걸세. 친구, 난 육감으로 알아. 행운이란 언제나 돌고 도는 법이니까." p.164

 

이 지역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결혼생활도 맛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중하게 준비할 미래도 없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벌이는 술판이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해주는 유일한 일이었다. p.250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을 나온 자들이 파리에서 하루 열 시간 내지 열다섯 시간씩 접시를 닦는 형편이다. 그건 그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게으른 사람은 접시닦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p.276

 

"별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군."

"많이는 뭘.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지. 내가 유성에 관한 글을 보냈더니 왕립천문학 연구소에서 감사하다는 답장이 두 번 왔었어. 밤이면 수시로 밖에 나가서 유성을 지켜봐. 별은 공짜로 구경할 수 있잖아. 눈을 쓴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훌륭한 생각인데! 난 그런 건 미처 생각지도 못했어."

"글쎄, 인간이란 무엇에든 흥미를 붙여야 하니까. 길거리에 나와있다고 끼닛거리만 생각하란 법은 없지 않겠나?"

"그렇지만 이런 생활을 하면서 뭐...... 별 같은 것에 흥미를 가지기는 힘들지 않을까?"

"거리의 화가 생활 말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 피투성이가 되도록 억척스럽게 살 필요는 없어. 사는 데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사는 것 같은데. (...) 사람한테서 돈을 뺏어버리면 그 순간부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는 것 같더란 말이지."

"아니, 반드시 그런 건 아니야. 마음만 먹으면 부자든 가난뱅이든 사는 건 매한가지지. 책을 읽거나 생각하는 일은 계속할 수 있으니까." p.341,342

 

이 생활에서 가장 참기 힘든 건 추위야. 그다음 고역은 남의 참견을 참는 일이고. p.351

 

돈이 미덕을 가늠하는 위대한 척도가 되었다. 거지는 이 척도에 맞지 않기 때문에 멸시당하는 것이다. p.35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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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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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외쳤다. "동무들! 여러분이 우리 돼지가 이기심과 특권의식으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요? 사실 우리 중 상당수는 우유와 사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도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가 이걸 먹는 유일한 목적은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우유와 사과에는 (동무들,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어요.) 돼지의 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양분이 들어 있어요. 우리 돼지들은 두뇌 노동자입니다. 이 농장의 경영과 조직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밤낮으로 우리는 여러분의 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건 오직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부여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여러분이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언젠가는 존스가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존스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틀림없어요, 동무들." 스퀼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꼬리를 흔들면서 호소하듯 외쳤다. "여러분 중에 존스가 돌아오기를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겠지요?" p.37

 

농장은 점점 부유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물들의 삶은 풍요로워지지 않았다. 물론 돼지나 개들은 빼고 말하는 것이다.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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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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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美)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나에게 그 예로 들어 보이곤 했다. 그 남자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위트에게 감히 그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해변의 사나이'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그 말을 위트에게 했다 해도 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 ㅡ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ㅡ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고 위트는 늘 말하곤 했다. p.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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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너머 편 (반양장) -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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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공통분모다. p.5

 

포스트모던이 중세와 근대를 비판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중세와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를 억압하는 폭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포스트모던은 이분법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한다. 세계를 강압적으로 둘로 쪼갤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들을 인정하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은 그동안 억압받아왔던 가치들의 지위를 회복하고자 하며, 한발 더 나아가 이분법에 포착되지 않고 배제되었던 것들까지도 다시 복원하고자 한다. p.46,47

 

삶의 경험은 생각만으로는 얻을 수 없지. p.58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험이 전체의 일반적인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류를 발생시킨다. 베이컨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동굴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동굴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동안은 외부의 실제 빛이 아니라 동굴의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제한된 빛으로 동굴 안을 본다. p.97

 

의자는 본질로서 존재한다. 의자의 본질은 단적으로 '앉는 것'으로, 의자의 본질은 개별적 의자보다 중요하다. 만약 특정 의자가 다리가 부러져서 '앉는 것'이라는 본질을 상실했다면, 그 의자는 폐기될 것이다. 의자에게 본질은 무엇보다도 선행한다. 마찬가지로 돼지도 본질로 존재한다. 돼지의 본질은 '먹는 것'이다. 물론 돼지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반대의사를 개진하지 않으니 우리가 규정하자. 만약 병에 걸려서 못 먹게 되었다면, 돼지는 본질을 상실했으므로 살처분되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존재도 생각해보자.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말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신의 피조물'인가? 이 물음은 오랜 시간 서구역사에서 종교와 철학과 과학으로 심도 있게 논쟁되어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본질을 상실하면 인간을 파기할 만한 본질은 찾을 수 없다. 말하지 못해도 인간은 가치가 있고,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인간은 가치가 있다. 즉 인간은 의자나 돼지처럼 단일한 본질을 갖지 않는다. 이렇게 고정된 본질을 갖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존재자에 대한 이름이 '실존'이다. 인간은 실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p.132

 

반대로 무엇인가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을 찾으려 할 때 실제 삶은 그렇지 않으므로 고통은 가중된다. p.310

 

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진짜 외부에 있는 것은 없다. 외부 세계는 없다. 우리는 내 머릿속에 산다.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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