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양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7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 그대 자신에게 ㅡ 그리고 그대 자신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주기를. p.16

 

'중요한 것'은 그대의 시선 속에 있을 뿐 바라보이는 사물 속에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p.21

 

어떤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오직 그의 남들과 다른 면 때문에 흥미를 느낄 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마음속에서 공감(共感)을 몰아내 버리기에 이르렀다. 공감이란 다만 공통된 감동의 인정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타나엘이여, 공감이 아니라 ㅡ 사랑이어야 한다. p.22

 

사람은 오직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행할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최대한으로 많은 인간성을 수용할 것,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공식이다.  p.27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p.35

 

나타나엘이여, 결코 과거의 물을 다시 맛보려고 탐내지 말라.

나타나엘이여, 결코 미래 속에서 과거를 다시 찾으려 하지 말라. 각 순간에서 유별난 새로움을 포착하라. 그리고 그대의 기쁨들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말라. 차라리 준비되어 있는 곳에서 어떤 '다른' 기쁨이 그대 앞에 불쑥 내닫게 된다는 것을 알라.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어서 그대가 길을 가다가 만나는 거지처럼 순간마다 그대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그대가 꿈꾸던 행복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대의 행복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한다면 ㅡ 그리고 오직 그대의 원칙과 소망에 일치하는 행복만을 인정한다면 그대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내일의 꿈은 하나의 기쁨이다. 그러나 내일의 기쁨은 그와는 다른 또 하나의 기쁨인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자기가 품었던 꿈과 비슷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사물마다 제각기 '다르게'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p.45

 

"잘됐군." 하고 말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할 수 없지." 하고 말하라. 거기에 행복의 커다란 약속이 있다.

행복의 순간들을 신이 내려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ㅡ 그럼 다른 순간들은 신이 아닌 누가 주었다는 말인가.

나타나엘이여, 신과 그대의 행복을 구별하지 말라. p.46

 

나타나엘, 내 그대에게 열정을 가르쳐주리라.

나타나엘,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p.53

 

만약 무슨 일이든 그것을 할 시간이 내게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증명되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아무 일도 하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려다가 그만두고 우선 쉬고 볼 것이다. 다른 모든 일들도 '역시' 할 시간이 있을 터이므로. 만약에 이런 형태의 삶이 끝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한다면 ㅡ 그리고 이 생을 살고 나서 내가 밤마다 기다리는 잠보다 좀 더 깊고 좀 더 많이 망각하는 잠 속에서 쉬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내가 하는 일이란 그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일밖에 못 될 것이다. p.54

 

~p.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서울 아이들은 소나기가 하늘에서 오는 줄 알겠지만 우리는 저만치 앞벌에서 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노는 곳은 햇빛이 쨍쨍하건만 앞벌에 짙은 그림자가 짐과 동시에 소나기의 장막이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기성을 지르며 마을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 장막이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자꾸나 뛴다.

불안인지 환희인지 모를 것으로 터질 듯한 마음을 부채질하듯이 벌판의 모든 곡식과 푸성귀와 풀들도 축 늘어졌던 잠에서 깨어나 일제히 웅성대며 소요를 일으킨다. 그러나 소나기의 장막은 언제나 우리가 마을 추녀 끝에 몸을 가리기 전에 우리를 덮치고 만다. 채찍처럼 세차고 폭포수처럼 시원한 빗줄기가 복더위와 달음박질로 불화로처럼 단 몸뚱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면 우리는 드디어 폭발하고 만다. p.32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p.105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p.1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는 별처럼 무수한 야구팀들이 원칙과 룰을 지키며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 반짝임 속에서 결국 자신의 별을 발견하고, 응원하게 된다. 즉

   저 별은 나의 별이다. p.81

 

"신경 쓰지 마."

조성훈이 그렇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신경이 쓰였다.

"뭘?"

"회사 잘린 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시 약간의 분노와 패배감, 불안같은 것들이 재구성된 지구의 표면 위로 떠올라왔다.

"처음 널 봤을 때...... 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어땠는데?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뭐가?"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볼?"

"투 스트라이크 포볼! 그러니 진루해!"

"진루라니?"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ㅡ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p.234, 235

 

세계는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었다. p.242

 

- 요는 말이지. 어쩌다 프로가 되었나, 라는 것이야. 생각해봐, 우리는 원래 프로가 아니었어. 그런데 갑자기 모두 프로가 된 거야. 그 과정을 생각해보란 말이야. 물론 프로야구가 세상을 바꾸었단 얘기가 아냐. 요는, 프로야구를 통해 우리가 분명 속았다는 것이지.

- 속아?

- 그럼, 전부가 속았던 거야.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낭만을!'이란 구호는 사실 '어린이에겐 경쟁을! 젊은이에겐 더 많은 일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면 돼. 우리도 마찬가지였지. 참으로 운 좋게 삼미 슈퍼스타즈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우리의 삶은 구원받지 못했을 거야. 삼미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도 같은 존재지. 그리고 그 프로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모든 아마추어들을 대표해 그 모진 핍박과 박해를 받았던 거야. 이제 세상을 박해하는 것은 총과 칼이 아니야. 바로 프로지! p.242, 243

 

그때는 이미 프로의 세계가 현실에서 구축되어 수많은 삶이 영문도 모른 채 프로의 삶으로 전환되던 시기였으니까. 즉 <야구>를 하던 선수들이 어느 날 갑자기 <프로야구>를 하게 된 것처럼, <인생>을 살던 모든 국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프로 인생>을 살아야 했던 시기였어. p.249

 

결코 그 어떤 프로 팀도 <자신의 야구>를 완성한 적은 없었지. 왜? 그들의 목표는 한결같이 우승이었으니까. p.250, 251

 

그랬다.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그 시절도, 실은 국수의 가락처럼 끊기 쉬운 것이었다. 빙하기가 왔다는 그 말도 실은 모두가 거짓이었다. 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뿐이다. p.262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ㅡ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p.264, 2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로 말하자면 즐거운 날도 있었고 힘든 날도 있었다. 힘든 날이 오면 즐거웠던 날들을 생각하지. 기억이란 위대한 축복이란다. p.133

 

- 그리고 이것도 기억해 둬라. 달걀을 한 바구니에다 모두 넣어 두면 안 된다는거. 또 그와는 반대로 달걀이 부화하기 전에 병아리 수를 세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 알았어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할게요. p.134

 

밤과 낮은 상대적인 단어에 불과할 뿐, 절대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느 때건 밤과 낮은 동시에 있기 마련이니까. 우리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동시에 두 곳에 있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196

 

어쩌면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재능일 것이다. 절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절망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p.243

 

그는 남은 평생을 방 안에 앉아 책만 읽도록 선고받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은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다 ㅡ 기껏해야 절반만 산 채로 글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서만 산다는 것은. p.261

 

그 당시 팬쇼의 집에는 몇 가지 변화를 가져다 주었음에 틀림없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아마도 잘못일 듯싶다. 그런 일들이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켰느냐 아니냐는 또 다른 얘기지만, 나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누가 뭐래도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총계, 즉 우연한 마주침이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p.333

 

자네가 노크를 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안에 아무도 없다는 얘기는 아니야. p.381

 

혹자는 라 셰르가 이제 안전할 것이라고, 그토록 끔찍한 처벌을 견디고서 살아났으니 더 이상 참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것도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삶에는 유리하게 접어줄 조건도 없고 불운에 제한을 둔다는 규칙도 없다. p.385

 

만약 누가 10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했다면 난 웃었을거야. 그게, 삶이란 정말로 이상하다는 게, 결국 우리가 삶에서 배우는 교훈이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몰라. 상상조차 할 수 없어. p.400

 

친구, 화를 내지는 말게. 나같은 늙은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사람이 바뀌기엔 때가 너무 늦고 말거든. p.421

 

- 자네 혹시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 자네한테 그렇게 보인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지는 않아, 정말일세. 그런 얘기를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고. 다만 나한테 필요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과 전혀 다를 뿐이지. p.4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정 역사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고대 아테네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들, 또 당시 사람들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지금 여기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일것이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역사란 사례를 통해 배우는 수업이다. p.31

 

하나님이 우리 하나하나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는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 개인주의와 인권이라는 근대적 개념, 개개인 모두가 가치가 있다는 믿음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참이 지난 다음 비종교적 휴머니즘과 세속적 가치규범에서는 개인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각각의 인간이 자율성을 갖는다는 사상을 종교로부터 가져왔다. 즉 인간 존엄성에 대한 세속적 개념은 바울이 전파한 기독교 메시지에서 종교적 함의만을 제거한 것이다. p.134

 

동맹은 신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신의는 자유를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의의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p.148

 

선과 악의 차이를 믿는 사람은 세계에 의미가 있음을 믿는다. 중요한 것은 믿는 것이다. 그리고 믿는 자는 희망할 수 있다. 희망할 수 있는 자는 세계를 긍정할 수 있다. 그 긍정에는 세계의 불완전함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선 또는 악을 선택하게 하고 주어진 자유와 맞닥뜨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p.300

 

우리는 혼자일 수가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위로받을 수 없고, 자기 자신을 쓰다듬어줄 수 없는 존재다. p.3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