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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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숙에는 괴짜들도 많았다. 사실 파리 빈민가는 괴짜들의 집합장소였다. 이들은 외톨이인 데다 반은 미친 채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정상적으로 온건하게 살려는 노력을 포기해버린 사람들이었다. 돈이 사람을 노동에서 해방시켜주듯, 가난도 보편타당한 행동 기준에서 그들을 해방시켜주었다. 우리 여인숙의 투숙객 중 몇몇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p.130

 

하루 6프랑의 생활이 지극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찮은 재앙이 일어나도 끼니를 거르게 마련이다. 가령 마지막 남은 80상팀을 주고 우유를 반 리터 사 와서 알코올풍로에 데우고 있다고 하자. 우유가 끓고 있는데 빈대 한 마리가 팔에서 스멀거리다. 그래서 손톱으로 톡 튕겼더니 그것이 퐁당! 우유 속으로 빠져버린다. 이렇게 되면 우유를 쏟아버리고 배를 쫄쫄 곯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p.145,146

 

가난과 불가분의 관계인 권태라는 것도 느끼게 된다. 아무 할 일도 없는 데다 배불리 먹지도 못하는 시간에는 그 무엇에도 흥미가 일지않는다. 보들레르의 시에 나오는 '젊은 해골' 같은 느낌으로 한 번 침대에 누우면 반나절이나 누워 있곤 한다. 오로지 음식만이 몸을 일으키게 한다. 일주일을 빵과 마가린으로 버틴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몇몇 곁다리 기관이 달린 밥통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p.147

 

왜냐하면 가난에 다가가면서 가난으로 인한 어떤 발견을 했기 때문이다. 권태라든가 비열할 정도로 쩨쩨한 것, 굶주림의 시초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더불어 가난이 지닌 커다란 장점, 즉 가난은 미래를 말살해버린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어느 한도 내에서는 돈을 적게 가질수록 걱정도 덜 하게 된다는 것은 실제로 들어맞는 얘기이다. 모두 합쳐 100프랑밖에 없을 때는 가장 소심한 겁쟁이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단 3프랑만 가지고 있으면 아주 무심해진다. 3프랑으로는 다음 날까지 먹을 수 있을 것이니 그 이상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루하기는 하겠지만 무섭지는 않다. 멍하니 '하루나 이틀 후에 나는 굶어 죽을 거야. 놀라운 일이구나, 안그래?'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다른 잡념에 빠져든다. 빵 한 덩이와 마가린으로 때우는 식사가 어느 정도는 그것 자체로 진통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p.148,149

 

"내일이면 뭐가 됐든 걸려들 걸세. 친구, 난 육감으로 알아. 행운이란 언제나 돌고 도는 법이니까." p.164

 

이 지역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결혼생활도 맛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중하게 준비할 미래도 없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벌이는 술판이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해주는 유일한 일이었다. p.250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을 나온 자들이 파리에서 하루 열 시간 내지 열다섯 시간씩 접시를 닦는 형편이다. 그건 그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게으른 사람은 접시닦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p.276

 

"별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군."

"많이는 뭘.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지. 내가 유성에 관한 글을 보냈더니 왕립천문학 연구소에서 감사하다는 답장이 두 번 왔었어. 밤이면 수시로 밖에 나가서 유성을 지켜봐. 별은 공짜로 구경할 수 있잖아. 눈을 쓴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훌륭한 생각인데! 난 그런 건 미처 생각지도 못했어."

"글쎄, 인간이란 무엇에든 흥미를 붙여야 하니까. 길거리에 나와있다고 끼닛거리만 생각하란 법은 없지 않겠나?"

"그렇지만 이런 생활을 하면서 뭐...... 별 같은 것에 흥미를 가지기는 힘들지 않을까?"

"거리의 화가 생활 말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 피투성이가 되도록 억척스럽게 살 필요는 없어. 사는 데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사는 것 같은데. (...) 사람한테서 돈을 뺏어버리면 그 순간부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는 것 같더란 말이지."

"아니, 반드시 그런 건 아니야. 마음만 먹으면 부자든 가난뱅이든 사는 건 매한가지지. 책을 읽거나 생각하는 일은 계속할 수 있으니까." p.341,342

 

이 생활에서 가장 참기 힘든 건 추위야. 그다음 고역은 남의 참견을 참는 일이고. p.351

 

돈이 미덕을 가늠하는 위대한 척도가 되었다. 거지는 이 척도에 맞지 않기 때문에 멸시당하는 것이다. p.35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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