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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 없는 뽑기 기계 - 2020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난 책읽기가 좋아
곽유진 지음, 차상미 그림 / 비룡소 / 2020년 3월
평점 :
참 오랜만에 가슴뭉클한 작품을 읽습니다. 저학년 또래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에 이런 느낌을 주는 작품은 참 오랜만이네요. 얇은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밝은 책이지만, 아이가 겪는 심연의 아픔을 보여줍니다. 내용과 삽화에 숨겨진 수많은 단서들은, 이야기의 끝으로 갈수록 우리 가슴을 옭죄고, 커다란 씨앗이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작가마다 아픔을 다루는 방식은 다르지만, 아이들이 겪는 아픔과 상처를 다루기는 특히나 어렵습니다. 많은 동화에서, 아이들의 아픔을 이겨내도록 하는 것은 주변의 '도움'이거나, '우연'한 계기가 많지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꽝 없는 뽑기 기계에서 만난 남자아이에서부터, 영준이에 이르기까지, 희수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희수를 기다려줍니다. 왜 빨리 이겨내지 않냐고, 왜 벗어나지 못하냐고 다그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기다려주고 이해하며, 약속하지 못해고 이해합니다. 기다림이 갖는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아픔을 이겨낼 힘이 있고, 누구에게나 자기가 알지 못하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힘을 바로 발휘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거기에는 '기다림'이라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요. 상처든, 아픔이든, 그리고 이겨내기 힘든 그 어떤 일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예전보다 상처받을 일이 더 많고, 아픔은 더 커졌습니다. 아프지 않고 자랄 수 없고, 상처 없이 성장은 없습니다. 나무에 생긴 옹이가 상처를 이겨낸 훈장이듯, 우리가 아픔을 딛고 일어설 때, 한뼘 더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이겨내려 오래 기다릴 때, 잊지 않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꽝 없는 뽑기 기계에서 뽑힌 1등 상품임을.
"뒤돌아 보니 여자아이가 손을 흔들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손을 흔들었어. 바람이 오늘도 시원하게 불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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