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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평점 :
미국여행을 다녀온지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여행의 여운을 씻어내지도 못한 어느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는 민트색의 여행 산문집이 책장에 놓여 있는게 보였다. 만약 이 책을 여행 가기 전에 읽었다면, 별 감흥없이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읽었기에 책 구절 하나하나가 마음에 새겨지며, 그 여행이 얼마나 값지고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경험이었는지 또다시 느끼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곳은 단지 세상의 조각에 불과했어. 나하고 정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난 겨우 그 사실을 알았고 그건 충격이었지. 다른 기후 속에서 생각을 하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꿈을 살고 있었지. 나의 정반대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시간에 깨어나서 치열하게 뭔가를 붙들고 있었거든. 난 가능한 한 세상의 모든 경우들을 만나볼 거야."
-본문 中
그렇다. 내가 지구 반대편에서 느낀점이 이 글귀에 녹아있음이 신기했다. 시차가 거의 하루가 차이나는 미국은 한국이 깨어있을때 잠들어있고, 한국이 잠들어있을때 깨어있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연락하면서, 그들이 열심히 움직이며 뭔가를 붙들며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나는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국에 있다면, 이 시간에 이것저것 하며 머리라도 굴리고 있을텐데'라고. 그렇다. 같은 지구라는 공간안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은 다르게 작용하며, 밤이건 낮이건 무언가가 사람들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한다.
청춘은 한 뼘 차이인지도 모른다.
모두 그 한 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도,
그 사람과 내가 스치지 못했던 것도……
청춘의 모두는 한 뼘 때문이고 겨우, 그 한 뼘 차이로 인해 결과는 좋지 않기 쉽다.
청춘은 다른 것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것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것이며 그렇다고 사랑으로도 바꿔놓을 수 없는 것이다.
-본문 中
'만약 내가 미국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홀로, 여행사도 없이 그야말로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을 깊게 생각하고 두려워 했다면, 난 아마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생각도 없이 무작정 떠나겠다고 했던 나였고, 나도 모르게 공항에 서있었었다. 아마도 그것또한 한뼘 차이였을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한 뼘.
미국에 갔더라도, 두려움에, 외로움에 참지 못하고 이틀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도 있었지만, 참고 참아 2주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온것도.
그 한 뼘의 위력은 가히 무시할 수가 없다.
헤어질 때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란 사실을 알게 된 걸까.
정말이지 뒷모습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본문 中
인천공항에서 엄마와 이별할 때의 순간이 떠올랐다. 여권과 비행기 표를 손에 쥐고 출국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 약해질 거 같아, 마음을 다 잡고 뒤돌아서서 얼굴만 살짝 돌려 인사했었다. 그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의자 아래를 보니 삼월이었다. 내 발등에 자기 발 하나를 올려놓은 채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묻고 싶어졌지만 순간 알았다. 뜨겁고 화끈한 것이 이마를 훑고 지나더니 등 쪽에서 엄청난 스파크가 일었다. 시를 쓰겠다고 며칠 동안 몰두하는 사이, 아무것도 먹을 것을 챙겨주지 않았다는 것을. 그게 며칠이 지났는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사료 봉지를 찾았으나 그제야 며칠 전 마지막으로 털어준 기억이 났다. 당근은 이미 내가 다 먹고 없었다. 사력을 다해 뛰었다. 마켓에서 허겁지겁 당근을 계산하는데 여전히 내 발등 위로 토끼의 체온이 얼얼하게 느껴졌다.
-본문 中
사람들은 계속해서 묻는다, 미국에 다녀오기 전이나 후나. '도대체 거길 왜 간거야'
그 전에는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알고 싶었다.
혼자 사람들 무리를 스치며, 여행을 하면서 그 대답이 점점 확실해 졌다.
'원래의 나를 찾으려고'
여행 중, 나는 나의 주변에만 신경쓰느라 나에게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점점 원래의 나를 잃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문득 중학교때 친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중1때부터 친했던 친구는 중3때 문득 나에게 이런말을 했다. '너, 정말 많이 변했어.'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다. 좋은 말로 받아들이자 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따가운 충고였음을 안 건 여행도중이었다. 너무나도 늦은. 이미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을 때. 그 때 그 말을 되새김질 하며 나를 다시 돌아봤다면, 내 주변에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주변 환경에 나를 맞춰나가며 내 성격을 바꿔나가며 원래의 나를 잃은 건,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원래의 나를 유지하면서 살살 조각하며 나를 바꿔나갔어야 하는건데.. 난 그러지 않았던 것이었다.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한시간 넘게 태평양 꼼짝않고 바다를 바라보며, 저 바다 속에 묵은 때를 벗겨내자 했다.
여행이라는 건, 토끼의 따스한 발과 같다. 따스한 발과 같은 '나의 원래의 모습'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봐 주며, '변해버린 나'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니까.
"그동안 개가 말 잘 들었지요?"
"그럼, 너무 착해서 아무 문제 없었어."
"근데 선배 가고 돌아와 보니 마루에다 먹은 걸 토해놨더라구요. 챙겨준 사료는 건드리지도 않았구요."
"아니, 왜? 나 있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디 아픈 거야?"
"아뇨. 선배 여기 올 때 큰 여행가방 가지고 왔을 거 아니에요? 떠날 때는 큰 여행가방 들고 나가셨을 거구요. 개가 여행가방에 민감해요. 정들었는데 떠나는 걸 알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나봐요."
아, 이별이었구나.
나는 돌아와 정신없이 일에 매달리느라 한 번도 뒷일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는데 이별이 아팠구나. 미안하다. 나, 이토록 텁텁하게 살아서. 정말 미안하다. 음식을 만들면서도 음식에다 감정을 담는 것인데 하물며 나라는 사람, 이렇게 모른 척 뻣뻣하게 살아가고 있어서.
-본문 中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마음이 아팠다.
미국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신나라 하며 큰 가방안에 이것저것 담으며 좋아하기 바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또, 그곳일에 즐거워 하며 도착하자 마자 연락이고 뭐고 밖으로 뛰어나가 놀기 바빴었다. 단 몇시간 이었지만, 날 걱정해주는 그 누군가에게는 몇일처럼 느껴졌을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도착하자마자 연락해주는게 얼마나 어렵다고. 그리고, 또 어느 누군가는 내가 짐을 싸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을 거라는 걸. 정말 나란 사람, 너무나 뻣뻣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후배에게 문자가 왔다.
- 이번 여행은 여운이 너무 길어서 힘드네요.
이럴 때 형은 어떻게 해요?
나는 이 말은 하지 않았다.
단 한 번 여행을 떠난 것뿐인데 이토록 지금까지 끝나지 않는 여행도 있는 거라고.
-본문 中
여행을 끝나고 돌아와서 한동안 심각한 여행의 여운에 힘들어 했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도 역시나 그 여운이 사무쳐 살고 있지만, 여행 끝나고 일주일 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홀로 힘들어하면 집에 가고 싶다고 혼자 발 동동 구르며 속으로 떼쓰며 여행 한 나였다. 지금은 그것마저 그립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는 로스엔젤레스의 따스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 지고, 푹푹찌는 무더운 밤에는 로스엔젤레스의 시원하고 조용한 밤이 그리워지고, 또 밖에 잠깐 나갔다 왔을 뿐인데, 땀에 홀딱 젖어 집에 돌아올 때는 산타모니카의 시원한 바닷바람과 갈매기 소리가 그리워 진다.
그렇게 나는 아직도 여행을 하고 있나보다. 아마 그 여행은 글쓴이의 말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다.
-S.http://blog.aladin.co.kr/745872196. AUG17TH2012. 오후2시.
하루 한 번쯤
처음 영화관에 가본 것처럼 어두워져라.
곯아버린 연필심처럼 하루 한 번쯤 가벼워라.
하루 한 번쯤, 보냈다는데 오지 않은 그 사람의 편지처럼 울어라.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밖에는 없을 것처럼 좋아해라.
누구도 이기지 마라. 누구도 넘어뜨리지 마라.
하루 한 번 문신을 지워낼 듯이 힘을 들여 안 좋은 일을 지워라.
양팔이 넘칠 것처럼 하루 한 번 다 가져라, 세상 모두 내 것인 양 행동하라.
하루 한 번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으라, 내가 못하는 것들을 펼쳐놓아라.
먼지가 되어 바닥에 있어보라.
하루에 한 번 겨울 텐트에서 두 손으로 감싼 국물처럼 따듯하라.
어머니가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만큼 애틋하라.
하루 한 번 내 자신이 귀하다고 느껴라.
좋은 것을 바라지 말고 원하는 것을 바라라.
옆에 없는 것처럼 그 한 사람을 크게 사랑하라.
-본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