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소년 푸르니에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김남주 옮김, 이형진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품절


삐친 머리 - 다른 방향으로 뻗은 머리카락의 일부
-리트레 사전-0쪽

주기도문 한 번, 성모송 열 번을 바칠게요. 그러니 엄마를 돌아오게 해주세요. 아셨죠?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엄마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게요. 원하는 걸 말씀하세요. 엄마가 돌아온다면, 신부가 되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런데, 이번엔 엄마가 돌아왔다.-10쪽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그 예수님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불평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내게 욕을 퍼부었으면 좋겠다. 그 대신 그들은 눈 주위가 피로 얼룩진 채 서글프고 다사로운 눈길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널 원망하지 않아. 널 영원히 사랑한단다. 너로 인해 짐승처럼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상관없어, 장-루이,넌 계속해서 바보짓을 저지르렴.벌은 우리가 받을 테니까." 어린 장-루이는 전율하며 몸을 떤다. 커다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아주아주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수치심에 차서 눈길을 떨구고 구두코를 바라본다. 더 이상 공중을,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다.-14쪽

나는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미술관에서 그림 몇개를 스치듯 본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내 방에는 램브란트, 와토, 모네, 터너의 그림이 담긴 엽서들이 붗어 있었다. 막연하나마 나는 그림이란 사람을 어딘가 다른 곳으로, 다른세계로 데리고 가는 신비로운 그 무엇임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내 눈앞에 놓인 그림들은 나를 그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그림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 그림들 모두가 형편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멍청한 꼬마라고 소리쳤고, 나는 그에게 멍청한 어른이라고 쏘아붙였다. 그가 나를 붙잡으려 했으므로 나는 산토끼처럼 내뺐다...나는 신호도 보지 않고 길을 거너다가 하마터면 자동차에 치일 뻔했다. 죽을 뻔한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렘브란트, 와토, 모네, 터너 모두가 내 장례식에 올 것이 분명하니까.-139-141쪽

식당 한쪽 구석에서 남자들이 포도주를 마시면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가스 레인지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슬픈 분위기가 아니었다. 벽난로 한쪽 구석에는 숙모의 소파가 놓여 있었다. 바로 거기 앉아서 그녀는 웃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하루를 보내곤 했다. 이따금 오리를 잡을 때는 숙모가 털을 뽑곤 했다. 이제 오리털은 누가 뽑는단 말인가? 우리는 그 집 뜰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언젠가 낙원이 되어주었던 그 뜰을 다시 보고 싶엇다. 나무들은 잎새 하나 없이 서글퍼 보였다. 그곳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었다. 베다스틴 숙모와 함께 가버린 것이다.-157쪽

그날부터 나는 매일 밤 성모송을 세 차례 올렸다. 그 일은 3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만 그걸 잊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어리버리한 얼굴로 잠에서 깼다. 간밤에 노간주 열매로 만든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잠이 드는 바람에 성모송 세 번을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하늘나라에 가는 시험에 떨어지고 만 셈이었다. 나는 매일 밤 노간주 열매 술을 마시는 걸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 시험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서.-160쪽

그러던 어느 날 내 목 안에 들어 있던 작은 꾀꼬리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러더니 내 주머니 안에 있던 목소리가 좀더 낮은 목소리의 또 다른 꾀꼬리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는 집요하게 발언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 후 나는 그 꾀꼬리와 함게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에는 면도를 하게 되고, 마침내 신사용 바지를 입고, 삐친 머리에는 팽토 포마드를 바르게 되었다. 나는 소프라노를 그만두고 테너가 되었다. 루이스 마리아노처럼.-176쪽

이제 엄마는 여든두 살의 나이로 다시 내 곁을 떠났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부가 되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혹시 하느님이 그 점에 대해 내게 앙심을 품으신 건 아닐까.-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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