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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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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코맥 매카시
출판: 문학동네 

 그 곳에 남자와 소년이 있었다.
 온 세상이 잿빛 속에 묻혀 있을 때 희망을 찾아 떠난 이들 이었다. 아니 희망이라기 보다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바다에 도달으면  이 기나긴 여정의 끝이 보일거라는 아니 막연한 기대다. 저자는 불친절하게도 독자들을 위한 상황 설명은 하지 않는다. 왜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지 언제 이런 일이 발생되었는지 답하기 보다 걸어가고 있는 이 남자와 소년에게만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 때로는 굶고 비에 지치고 추위에 떨며 생존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에게만 모든 내용이 집중되어 있다.  남자가 의지하는 것은 총알이 두발 밖에 남지 않은(나중에는 나뭇가지로 장전된 것처럼 보이기 위한 가짜 총알을 만들기도 한다.) 권총과 라이터 낡은 지도, 짐을 옮겨주는 카트와 비바람을 막아주는 방수포밖에 없다. 그것들로 소년을 지킬 것이라 다짐하고 살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독자들도 철저히 3인칭 시점에서 남자와 소년의 여정을 따라서 함께 길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p.14
뭣 좀 물어봐도 돼요?
그럼,되고말고.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응, 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알았어요
 

 읽고 있는 순간마다 암울한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세상이 멸망했다.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살아남은 자들의 몸부림은 어떻게보면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할 때 목숨을 잃어버리는 게 나을 정도로 처첨하다. 그만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이 크다는 의미이다. 그것도 나만 지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아들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아들 때문에 남자는 끝까지 삶을 놓치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쓰러지고 나면 혼자 남을 아이의 걱정 때문이다. '만약 그 현실이 나에게 온다면' 이란 가정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딸을 가진 아빠로서 이런 상황은 참 견디기 힘들다. 가끔식 출퇴근을 도중에 사고가 난 차량들을 보면서 정신이 바짝 든다.  그 순간부터 요리조리 끼어들며 곡예운전을 지휘하던 운전대가 갑자기 두려움에 꽉 움켜지게 된다. 만약 내가 저렇게 사고를 당한다면 힘들게 살아갈 처와 자식 걱정때문이다. 이제 내 몸도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비의 심정으로 읽어내려 갈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남자의 아픔과 고통을 느끼게 된다. 소년이 자는 틈을 타 멀찍이 떨어져서 울기도하고 소리도 지르는 남자는 바로 아버지이자 나 자신이다. 나는 이 책에서 세상 종말의 비극보다 아버지의 부정에 애잔한 감동과 슬픔을 느낀다.  

p.96
우린 괜찮은 거죠, 그죠 아빠?
그래 우리 괜찮아.
우리한텐 나쁜일이 일어나지 않죠.
그래.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요.
그래.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

 

 

 

  

 

 

 

 




 일반적으로 책을 홍보하기도 하고 책의 핵심내용을 표현하기도 띠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띠지를 만드는 분들께는 죄송한 이야기 이지만 본문을 읽기 전에 한번 훑어 보고 버린다. 때로는 과장된 표현의 문구들이 나를 현옥시키기도 하고 정신 사납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띠지 없는 커버를 좋아한다. 이 책의 커버는 단순하지만 외롭다 라는 느낌과 책의 분위기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독자가 먼 시점에서 남자와 소년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책 커버에서도 역시 그 들의 뒷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다.(앞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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