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 - 자폐인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조제프 쇼바네크 지음, 이정은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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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내가 살아가는 세계는 타인의 세계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너와 나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는 '그럴 수 있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다.

어째서 우리는 비장애인 간의 차이는 쉽게 받아들이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는 크게 받아들일까?



누군가 정해준 건 아니지만, 상황과 연령, 관계에 따라 암묵적으로 기대되는 반응과 담화가 있다. 어린아이는 만화영화나 장난감, 동물 등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할 것으로 기대되며, 학생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교사의 교육방식이나 수업 준비 등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의 세계에서 거짓말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며 정직함이 최고의 미덕일 수 있다. 타인과 교류하는 방식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고,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 비해 특정 감각이 더욱 예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별종' 또는 '비정상'으로 여긴다.


문득 '사회적 합의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주장이나 생각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고,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보편적으로 퍼진 생각과 관점까지 흡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한다'라고 여겨지는 사람은 '사회적 맥락에 능숙한' 사람에 비해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점에 있어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 더 유연하고 열린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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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 어느 지방 방송작가가 바라본 노동과 연대에 관한 작은 이야기
권지현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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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괜찮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힐링 에세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훑어보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너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너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도서명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을 꿈꾸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책들이 말하는 것은 대부분 '당신은 그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것이다. 그러면 괜찮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줄곧 괜찮은 사람이 되길 바랐지만, 괜찮은 사람의 기준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줄 아는 언론인이 되고 싶었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싶었다. 어떤 일을 하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나의 행보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몇 번의 봉사활동과 내가 근무했던 곳의 이름만으로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증명할 수도 없다. 저자가 '지방 방송작가라서 할 수 있는 일은 공동체적 연대와 주변에서 만들어가는 희망을 찾아내고 전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처럼, 나의 위치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수행해야 할 것이다.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사회적 이슈를 보며 '불합리하다', '그래서는 안된다', '바뀌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구조가 바뀌고 개인의 인식이 바뀌려면 누군가 행동해야지"라는 말에는 시선을 피한다. 분명 개선되어야 하는 건 맞는데 내가 나서자니 부담스럽고 '굳이 내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해마다 무슨무슨 날이 되면 언론에서 인식과 차별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크게 나아지는 것은 없다.

이러한 일들에 '투사'처럼 앞장서서 싸울 수는 없어도,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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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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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이 보이는 언행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지 못할 바에야 경외감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겠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별명은 그에게 '에릭'과는 별개의 자아를 가진 '페르소나'와 같다. 그는 '에릭'보다는 '오페라의 유령'으로 존재할 때 더욱 당당하다. '몽샤르맹'과 '리샤르'는 전임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령'의 지정 관람석인 '2층 5번 박스석'을 다른 관객에게 내어준다. 그러자 유령은 두 감독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가 서로 평화롭게 지내길 원한다면 나의 관람석을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사소한 몇 가지 규정만 지켜 준다면 앞으로 나를 감독님의 보잘것없고 충직한 하인으로 여겨도 무방합니다'라고 경고한다.


그는 오페라 극장을 설계하는 데 참여했을 뿐, 단원들의 계약에 관여할 권리도, 극단의 일원으로서 급여를 요구할 권리도 없다. 하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듯 부임하는 감독마다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것을 요구한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활용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그의 행동은 '바람직한 의사소통'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그건 옳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외형이 너무 흉측해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지금껏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 없기에 '가까이 하면 안된다'라는 인식이 굳어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줄곧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냄으로써 잘못된 행동을 강화해왔다.



오래전부터 그에게는 '관계의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을 나이에 외면을 경험하고 흉측한 외모 탓에 그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부모조차 외면한 얼굴을 누가 사랑해주겠어'라는 자괴감이 상충하면서 우울감은 깊어지고, 불안정한 마음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결국은 아무도 찾아올 수 없는 지하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말 그대로 '유령'처럼 살아간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여러 조건으로 인해 그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를 '에릭' 그 자체로 아껴주었더라면, 그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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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 - 프로 덕질러들의 슬기로운 동거 생활
후지타니 지아키 지음, 이경은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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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사람들에게 '결혼하지 말고 나중에 같이 실버타운에서 살자'라는 말을 즐겨한다. 그만큼 '마음이 맞는 동성친구들과의 동거', '노후에는 친한 사람들과 실버타운에서 여생 보내기'는 나의 미래 계획 중 하나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나와 비슷한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동거하는 삶은 어떨까? '덕후'라는 공통점으로 모여 공간만을 공유하는 사이보다는 서로의 일상과 취향을 공유하면서 좋은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로 남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후지타니'는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을 먼저 경험한 '선배'에 가깝다. 자신과 비슷한 '프로 덕질러' 3명을 구해 함께 생활하기로 한 것이다.


네 사람은 각자 직업도 다르고 '덕질'의 대상도 다르지만 '덕후'라는 공통점 하나로 뭉쳤다. 살아온 환경과 생활습관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조율하며 나름의 규칙을 정하며 '더 나은 공동생활'을 만들어간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이상적인 삶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공동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은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한 방에 모여 좋아하는 드라마를 같이 보고,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덕후들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면서 이상하게 혼자 TV를 보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출연진에 대한 '썰'을 풀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좋아하는 방송을 봐도 혼자 보는 것은 영 흥이 나지 않는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좀 더 즐겁지 않을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좋아하는 분야가 같지 않아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같으니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면서 나의 최애를 '영업'하는 과정도 즐거울 것 같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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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 소녀가 소비하는 문화, 그 알려지지 않은 이면 이해하기
백설희.홍수민 지음 / 들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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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포켓몬스터'나 '디지몬 어드벤처' 등 소년 혹은 성별을 알 수 없는 존재를 앞세운 만화는 주류에 속했지만 '카드캡터 체리'나 '웨딩피치' 등 소녀들이 등장하는 만화는 여자아이들만 즐기는 '소수문화'였다. '지구용사 벡터맨'이나 '파워레인저'를 보는 여자아이는 있어도 '세일러문'을 보는 남자아이는 없었다.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자만 나오는 만화를 남자가 볼 리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굳이 소년의 문화와 소녀의 문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째서 소녀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화장품이 필요한 걸까? 여자의 힘은 '아름다움'에서 나온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만화영화의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웨딩피치'의 주인공들이 입는 전투복이 웨딩드레스였던 것은 또렷하게 생각난다. 그들의 주 무기는 콤팩트 거울과 립스틱이었는데, 화장품에서 마법 광선이 나와 악당들을 응징하는 식이었다. 어린아이들이 보는 만화에서 주인공이 사용하는 마법 도구가 화장품이라니, 여자아이들은 '화장'이라는 행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여자의 무기는 화장품'이라는 메시지에 노출되고 만다.

'여자아이들은 카드를 가지고 놀지 않는다. 카드를 가지고 노는 건 남자아이들뿐'이라니, 여자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카드에 반발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남자아이의 파란색'과 '여자아이의 분홍색', '남자아이의 칼'과 '여자아이의 요술봉'은 모두 완구회사와 양육자가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미취학아동이던 나는 요술봉보다 칼을 더 좋아하고 '지구용사' 놀이를 좋아했다. '카드를 가지고 노는 건 남자아이들뿐'이라는 장난감 회사의 논리에 의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남자아이였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남자아이의 것'과 '여자아이의 것'을 나누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로맨스 작품이 아닌 이상, 모든 여성 주인공에게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그가 선택할 여자가 누구인가'에 중점을 맞춘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여성이 주인공이 되면 '그가 선택할 남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까? 여성에게 있어 인생 최고 목표는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라는 말인가?





'어쩌면 마법소녀는 세상을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상 마법소녀는 세상을 구할 수 없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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