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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선택 - 전 세계를 뒤흔들 시진핑호 중국에 대비하라!
양중메이 지음, 홍광훈 옮김, 강준영 해제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중국의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최근 30년의 부상이 매우 눈부시다. 세계 150위에서 단숨에 2등으로 올라선 것이다. 지난 30년간 중국의 부상은 놀라운 일이지만 인류 2,000년 역사를 돌아보면 중국의 부상은 별로 놀라운 것도 아닌 것 같다. ‘시진핑의 선택’(알에이치코리아,2012)에서는 중국의 정치사와 미래 중국의 방향, 시진핑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사람을 알아보는 예리한 눈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난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 역시 시진핑을 높이 평가했다. “시진핑은 넬슨 만델라 같은 유형의 사람이다. 만델라는 소탈한 마음을 가진 겸손하고 온화한 인물이지만 지독하리만큼 강인한 인내력과 침착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족 화해화 인종 화합을 이뤄 새로운 민주 정권 시대를 창출할 수 있었다.” 범상치 않은 일은 범상치 않은 시기에 범상치 않은 인물에 의해 이뤄진다. 이에 합당한 인물로 제5세대 공산당 지도자 중에서 시진핑 만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p46
일찍이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소임을 내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살과 뼈를 힘들게 한다." 시진핑은 혁명 원로의 아들이었지만 시중쉰이 1962년 펑더화이 실각의 영향으로 숙청됨에 따라 농촌 지방을 돌아다니며 고된 노동으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시진핑은 그곳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해 생활했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갓 부임한 시진핑을 두고 현지 간부들 사이에서 수군수군 말이 많았다. 무엇보다 고급 간부의 아들이 지방으로 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가 농업 방면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 역시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를 직접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소탈하면서도 스스럼없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깜짝 놀랐다. 평소 군복에 운동화 차림인 시진핑은 큰 체격에도 상대방과 대화할 때에는 언제나 몸을 낮춰 온화한 어투로 겸손하게 대했다. 식사도 구내식당의 시멘트 식탁에서 다른 간부들과 함께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면서 했다. 거쳐도 일반 간부들의 숙소로 정했다. 과거 농촌 생활 시절 사용한 누더기 이불 역시 이때까지 버리지 않고 그대로 썼다. 이렇게 해서 시진핑은 현 간부들과 단번에 친해졌다. 당연히 업무적으로도 대단히 순조로웠다.]p138
마오위쓰 톈저경제연구소 명예이사장은 시진핑 시대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후진타오 집권 10년간 시진핑 등 태자당(혁명원로의 자제들)의 권력이 막강해졌다”며 “이들은 부모세대로부터 받은 권리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개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른 문제 또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서민파 장군들 입장에서 같은 서민 출신인 후진타오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된 것은 거의 복음이나 마찬가지였다. 평등한 인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위 간부 자제인 시진핑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될 경우는 문제가 달랐다. 이 경우 군부의 고위 간부 자제는 욱일승천의 기회를 맞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면 서민파 장군들에게는 재앙일 수밖에 없었다. 생존과 승진 공간이 크게 좁아질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따라서 서민파 장군들은 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시진핑을 중앙군사위원회 제1부주석으로 내정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했다.]p318
중국이 빨리 일어선 만큼 빨리 망할 거란 예측을 10년 전부터 쏟아냈지만 사회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국 중국은 이런 걱정과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날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게임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자본주의 역사 250년을 돌아보면 바닷물 조류의 방향이 바뀔 때 누가 그물을 던지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뒤바뀌었다. 결국 중국의 5년후의 흥망은 시진핑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