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는 대체로 우리 선조들이 과거에 처한 위기 상황을 제시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중심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우리는 그 인물들의 업적을 외우는 데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결과가 불러일으킨 파장이 아니라 그 원인 아닌가?
특히나 나라를 통째로 뒤흔들었던 국권침탈, 임진왜란, 병자호란, 거란의 침입, 당나라 그리고 수나라의 침입을 서술하는 부분에선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하게 되었다는 서술보다는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혹자는 원인을 분석하는 행동 자체가 피해자가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건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한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 안에는 개인들 사이의 알력 다툼과는 차원이 다른 복잡성이 자리하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로 가르지 말고 보다 더 넓은 시야에서 대외관계의 흐름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특히나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사는 없다>의 작가가 역사의 수많은 장면들을 그 당시 국가들의 대외관계를 기반으로 해석하는 내용들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특히 진한시대 이후 오랜 시간 분열되어왔던 중국이 수나라로 통일되자 고구려를 제대로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해석과 명나라가 해금 정책을 써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선에서도 차선으로 조공무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 등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명나라 시기 왜구가 극성을 부린 것도 왜가 조선에 비해 조공무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적었기 때문이었다는 해석, 그리고 이를 일본이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본 것 또한 재밌었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우리나라 지도 안에 가둬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동북아시아 지도를 그려두고 서로가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중종반정의 결과를 은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부분 또한 재미있게 읽었다. 사농공상을 따랐던 우리 선조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철학자들을 존중하지만 철학을 안다는 이유로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자본주의의 단점도 많긴 하지만 결국 자본주의 덕분에 우리 모두가 고기 먹으면서 잘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성리학자들이 한 번씩 헛발질을 했었던 기록들을 읽을 때마다 조선의 스타트에 아쉬움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도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본 거겠지. 작가는 최대한 현재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당시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인과관계를 분석해 준다.
작가는 근대 역사에 접어들어서는 역사의 해석에 덧붙여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한국사는 없다>의 작가도 구한말 지배층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든다. 나는 대체로 동의하는 내용들이었다. 심용환 선생님의 해석과도 맞물리는 내용들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마지막 말이 참 만음에 든다. "피 끓는 감정을 고양시키기보다는 차갑게 당시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