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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를 사랑한 남자 - 삼성전자 반도체 천부장 이야기
박준영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9월
평점 :
반도체가 첨단 산업이라는 인식에 삼성전자가 제조업 회사라는 것을 깜빡할 때가 많다. 신발이나 옷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고는 하지만 최근 읽은 여러 책들의 내용을 조합했을 때 조금 복잡한 기술적 절차와 장비를 필요로 하는 제조업 회사가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의 위신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전 세계 어느 기업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삼성전자가 해내고 있으니까. TSMC에게 파운드리 사업에서 많이 밀렸고 요즈음엔 SK 하이닉스에게 어느 정도 지분을 내주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갖추고 있다. 반도체 설계 분야에도 뛰어들어 자체 AP를 완성시키고자 계속 노력하고 있으며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꽤 큰 격차로 2위를 달리고 있다. 가장 큰 건 삼성에 대한 우리들의 신뢰가 크다는 점.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후발 주자로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던 시점부터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된 지금까지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산과 교육 등의 일선에서 활약한 '천부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가 걸어온 길을 마치 평전처럼 해설해나가는 글의 흐름이 특징이다. 실제로 그와 함께 일했었고 지금은 문화 인류학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솔직한 생각을 담아냈다.
책 제목을 접하는 순간부터 이거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세대는 지금의 결과를 바라보지만 그 결과를 쌓아 올리기까지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말이다. 역시나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과 국가의 적극적인 투자로 성공한 회사라는 인식을 넘어, 삼성이 반도체 회사로 우뚝 서게 된 것에는 직원들의 피나는 노력과 희생 그리고 그 안에서 천부장과 같이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있었다.
직장인들의 마음은 모두 같은 걸까, 요즘 학교 안에서 있었던 일들의 여운이 지나기 전이기에 과거 회사 파업 와중에 보였던 천부장의 행동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근로자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고용주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일어서야 하는가. 나는 그러한 때에 어떤 제스처를 취할 것인가.
요즘에도 삼성에서 현장 개선을 위해 제안서를 받고 이를 현장에 지속 반영해 주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우리에게도 이런 제도가 있다면,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있기는 있다. 그렇지만 상당히 의미 없는 설문조사와 의견을 내거나 논문을 작성해 지금의 어려움을 이야기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결국은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책임감을 어깨로 버티며 사명감으로 조금씩 전진시켜야 하는데, 과연 지금 시대의 리더들이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그런 사람들이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어떤 부분을 개혁해야 하는가.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천부장님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며 앞으로의 내 직장 생활에서의 길에 대한 해답을 조금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