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책을 본 딸이 표지를 보더니 '오빠 슬프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빵점 맞은 날이란 제목과 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잘 매치가 되던지... '그래, 오빠가 시험을 보았는데 빵점을 맞았대..' 사실 아이가 어려서 빵점, 백점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림만으로도 그 느낌을 정확히 알아 본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더군요.
딸에게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그림만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죠. '오빠가 시험을 보았는데 열개 중에서 맞은게 하나도 없어서 무척이나 놀랬어. 아~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에게 혼날텐데 말을 하지 말까?...'
그림 하나 하나에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그런지 딸에게 이야기 해주는 동안 저도 동화되어서 '나 같아도 그랬을거야.'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엄마로서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어요.
얼마전 교수 부부인 삼촌 내외가 왔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서 받아쓰기 시험을 받아 왔는데 빵점을 받아 왔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시더군요. 자긴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때 사실 놀랬거든요. 나는 만약에 아이가 빵점을 받아 온다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더군요. '괜찮아'라고 말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니까요.
어찌보면 아이의 빵점보다 더 신경써야 할 부분은 엄마가 그걸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면 좀더 제재를 가할 수는 있어도 단순히 빵점 그 자체만으로 아이를 다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점수 자체가 그 아이의 모든 것은 아닌데그런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니까요.
90점짜리와 빵점짜리 두 시험지를 놓고 어떻게 보여줘야 엄마가 덜 실망하실까 생각하는 모습에서, 백점 맞아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작은 머릿속 생각을 엿보면서 빙긋이 미소 짓게 되는 한편 코 끝이 찡하기도 하더군요. 아이에게 전부인 엄마.. 그 엄마를 위해서 더 잘 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요.
그런 아이의 마음은 몰라주고 '넌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러니..'란 대책없는 말을 쏟아놓지 않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의 이야기를 듣던 딸이 마지막 장을 넘기다 오빠가 기쁜 얼굴로 신발도 벗는 둥 마는 둥 신나게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빠, 기분 최고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빵점 맞은 시험지를 땅에 묻었더니 백점짜리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자라는 상상을 하는 아이의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군요.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모처럼 아이의 동심을 느끼면서 감동받고, 또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서 그림책 하나로 참 많은 것을 얻는 시간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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