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딸들 2
마리안네 프레드릭쏜 지음, 구승모 옮김 / 종문화사 / 1998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화자인 안나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요한나)가 있는 병원에 간호를 하러 다니면서 그녀의 할머니(한나)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살아 온 개별적인 삶과 함께 어떻게 윗대 여성들의 정신이 아랫대의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기술한 책이다. 딸들은 어머니와 그녀들의 삶을 무시하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를 이해하면서 비로서 어머니와 화해를 한다. 서양도 비슷한가 보다. 요한나와 안나는 그녀들의 어머니인 한나와 요한나를 무시하다 힘겨운 삶을 살면서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그들의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깨닫는다. 약 100년에 걸친 스웨덴 여성들의 삶의 변화가 3대의 혈연관계를 통해 이야기 된다. 서양보다 늦게 시작된 우리나라 여성들의 정신적,경제적 삶의 독립을 볼때 우리는 아직도 요한나와 안나의 삶 그리고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우리네 할머니인 한나의 삶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윗대 여성들이 끼친 정신적인 영향력을 표현하기위해 할머니인 한나를 강한 여성으로 등장시켰는데, 역자는 그런 한나에 위축되는 남편의 모습을 기분 나쁘게 바라보는 것 같다. 역자는 소설 속 등장 인물인 남자들이 모두 그렇게 위축되어 나온다고 말하지만(정확하게는 여성의 우위를 암시하는 편파적인 남녀간 성격묘사) 그건 소설의 아주 작은 모습만 보는 것 같다. 남자들의 모습 역시 그녀들에게 좋음과 안 좋음등, 다양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한 걸까? 그리고 등장하는 여성들이 단점 없는 여성들이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또한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 역할과 남성 역할으로 인해 남.여 모두가 고통받고 있는 모습으로는 해석이 안되는 걸까? 역자가 남성으로써 살아온 삶과 남성이었기에 그동안 거의 모든 소설(심지어 여성이 썼음에도)에 등장하는 남성우위의 글들만 바라보아서 시각이 달라서 그렇게 밖에 해석을 못하는가 싶어 참 아쉬웠다.
여자들이 원하는 바는 여성우위의 삶이 아닌 그냥 남.여를 떠난 인간의로서의 삶이다. 참 좋은 소설인데 너무 묻혀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들의 입에서
카롤린 봉그랑 / 열린책들 / 1995년 1월
평점 :
절판


끌쎄, 뭐랄까 참 슬펐다. 인생이란 자신이 소원하던 또는 노력하는 방향만으로 가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어른이 아이보다는 경험도 많고 이 사회에 살아가기에는 더 적합하게 훈련되어 진 것이 아닌가? 아이를 낳았으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당신들도 미완전한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져야할 의무와 책임이 사라지진 않는다. 인생은 마냥 행복 할 수도 있지만(자신의 의도하던 대로의 삶), 행복하다 불행할 수도 또는 불행하다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안타깝지만 계속 불행할 수도 있다. 자신의 의도 대로 되지 않는 이런 삶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삶을 자신이 짊어 질 수 없다면 애초에 선택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계속 노력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희망이 끝까지 안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심사숙고 해야 한다.
이 아이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지만(간혹 버릴때도 있다. 양녀로 가고 싶다는), 이 상황에서 조금도 나아 지지 않는다면 이 아이의 슬픔이 사라지기 까지는 꽤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을까? 이 아이의 슬픔을 상쇄시킬 만한 행복은 과연 언제쯤 올까?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고. 때문에 아무런 희망도 없는 끝의 결말은 참 끔찍했다.
역자가 이 작품을 두고 '깜찍한'이라고 표현해 좀 놀랐다. 그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역자가 말했다시피 때론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도저히 이 작품은 깜찍하지 않다.
다 읽고 나서 이미 봤던 이 작가의 사진을 보고 여러 생각을 했다. 어찌보면 참 해맑고, 섬세하고 여리기도 할 것 같고, 눈은 자신만의 세계에 있는 듯 알 수 없는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고, 또 웃음은 어쩐지 억지로 웃는 듯 하고 참 알쏭달쏭한 모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참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내가 만약 주인공처럼 밑줄 긋는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런 아슬아슬하고  야금야금한 상황들로 인해 지쳐버리거나, 조금 미치지 않을까(너무 애타서) 싶었다.
클로드로 밝혀졌을때 '그래, 여자 주인공이 흥미를 느꼈던 인물이니 괜찮겠군. 하지만 좀 심심한걸' 싶었다. 누군가를 사랑할때 이상형이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닌, 상대방만이 가진 어떤 매혹적인 또는 끌리는 점으로 인해 빠져드니까 콩스탕스가 클로드에게 빠져드는 것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너무 외로워서 쉽게 선택해 버렸던 건 아닐까 싶다. 그랬기에 사프로노프를 아는 사람에 대한 마지막 끝을 놓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건 사랑의 바탕이 되어야 할 신뢰를 어긴 점이다. 최고점을 위해 많은 경험들을 쌓아야 겠지만 나에게는 참 비열한 행동이었다. 결국은 떡 두 개 중 하나는 차지하고 혹여 생길지도 모르는 하나의 떡에 대해 여운을 두었으니 말이다.

끝으로 건물과 거리에 문인들의 작품과 이름을 붙인 점이 정말 부러웠다.  우리도 비단 그 작가가 태어난 고장 또는 작품의 무대인 지역이 아닌 유명한 또는 일반적인 도시와 건물등에  그런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19세기 말 한 대학 청년의 사랑이야기 이다. 과연 이렇게 단정지어도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이 책에서 유지되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리고 문체도.
본인만이 생각 할 수 있는 여러 사건들의 연결지움(어짜피 모든 사건은 여러가지 행동의 합으로 부터 유발되니 그리 틀리다고 할 수 도 없다.)으로 인해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고 사랑하게 되고 사랑함으로 끝난다. 그런데 마지막의 엔유의 재채기, 백발 한줌, 나비, 그리고 사라진 주인공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는 마무리가 '어? 어? 뭔가 이상한 걸. 뭐지?' 싶었다.  엔유의 재채기와 백박 한줌은 참 뜬금없고 어떤 소설의 기법 같았다. 그리고 작가가 작품을 그냥 끝맞치기에는 묘미가 없기에 멋 부림의 하나 일 수 있겠다고도 싶었다. 무언가가 있는 듯한.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역자의 설명과 일본 출판사의 선전 문구를 보고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싶었다. '아~ 나 혼자 생각해 보고 싶다' 하지만 너무 빨리 글을 읽었고, 역자의 생각이 더 타당했다.
마사키와 다카코의 마지막 대화의 글을 읽으면서 과연 그런 상황에 그렇게 비유가 가득한 말들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tv 드라마에서 남,여 주인공이 안 좋게 헤어질때 언제나 차를 가지고 있는 남자 주인공이 그 상황에서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을 보면서 '아니! 저 사람은 저렇게 힘든 상황에서 아무 탈 없이 운전을 할 수 있나?'라는 의문점이 들었던 바로 같은 상황이다.
이 작가의 전 작품인 '일식'보다는 글이 매끄러워 완연한 프로의 모습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어떤게 발전하고 변화되어 가는지를. 웃! 그리고 작자가 영향을 받았던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번역했던 사람과 이 번역가가 동일 인물이었다. 전 작품 역시. 미시마가 모리 오가이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했었는데 이 작가는 둘 모두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역시 세상은 돌고 돔이다. 두 작가 모두에게 영향을 준 모리 오가이의 작품을 읽어 봐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15세기 도미니크회의 수도사인 주인공이 그 시절 대중들을 흡입하는 이교도라 칭하는 종교에도 틀림없이 좋은 점이 있을 것이고 바로 그 점들을 기독교 신학에서 흡수해 대중들이 올바른(?) 종파에 몸담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이교도에 대해 기록한 책들을 구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해 훗날 16세기에 주인공이 노년이 됐을때 기록하는 방식의 책이다. 이 책을 읽고 과연 현자의 돌을 얻는 그 과정이 무얼 뜻하는가 싶었다. 단순 이야기 그 자체일 수 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알 수 없었다. 뒷편의 역자의 해석을 읽고 그럴 수 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현자의 돌을 얻는 바로 그 부분이 이 책의 최고점인데도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주인공이 피에르에게 끌리는 부분과 안드로규노스를 발견하는 모습이 흥미진진 했는데, 앞서의 최고점에서 오히려 맥이 풀려 버렸다. 93쪽-피에르는 그 '결혼'에 대해 언급하면서, '본질이 녹아 서로 어우러진다'는 기이한 말을 사용했다. 본질이 녹아 서로 어루어려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본질은, 이전의 본질을 전혀 잃는 법 없이 모순된 채로 그 두 가지를 그대로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죽음' 뒤에 이것이 참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갖가지 대립은 '하나 된' 물질의 내부에 해소된다. 그때, 이 '하나 된' 물질에는 '완벽한 존재 그 자체가 생생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었다. 읽고 있을 당시에는 얼만 전에 읽었던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대표하는 문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문구가 이 책을 대표하는 구절이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