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뇌와 오른쪽 뇌의 성격을 받아들이는 문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어떤 상황이든 다르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양의 물이 든 컵을 보고도 물이 겨우 반밖에 안 찼다고 할 수도 있고, 반이나 찼다고 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러분이 분노와 좌절로 나를 대할 때, 나는 여러분의 분노를 그대로 받아 싸움을 걸 수도 있고 좌뇌, 아니면 여러분의 감정에 공감해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우리는 매 순간 어떻게 반응할지 무의식적으로 선택한다. 이때 미리 프로그래밍된 반응의 패턴 변연계에 익숙해져 자동 조정 장치에 우리의 삶을 맡기기가 쉽다. 나는 고차적 피질세포가 변연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더 많이 주목할수록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동 회로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 주시하면서 힘을 기르고 의식적으로 더 많은 선택을 내린다. 장기적으로는 내 삶의 모습을 내가 책임지려는 것이다.

요즘 나는 나의 뇌에 매료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생각‘에 관해 생각하며 보낸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고통을 안겨주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은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어떤 고통스런 생각을 하더라도 내가 자발
적으로 그 감정 회로에 접속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괜찮아진다. 결국 그 생각을 멈출 의식적인 힘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몸 상태나 심정이 어떻든 상관없이 언제든 오른쪽 의식으로 넘어가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선택할 수 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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