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예찬
스테파니 오셰 지음, 이소영 옮김 / 마음의숲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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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단언컨대 내 삶은, 고양이와 같이 살기 전과 후로 나뉜다. 고양이 두 마리를 모시고 사는 집사이지만 한 번도 이들을 내 영역에 들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들이 내 삶에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퍽퍽했을 것인가. 나름 가족같이 지내고 있지만 나는 우리 고양이들에 대해 다 알고 있는가? 애석하게도 이 책을 다 읽어도 고양이에 대해서는 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고양이를 대상으로 쓴 작가나 문학에 대해서는 조금은 깊게 발을 들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고양이를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에게 미리 권고한다. 이 책을 다 읽으면 고양이라는 대상은 더욱더 모호하며 신비한 존재로 각인될 것이다.

오묘한 매력으로 인간들의 혼을 쏙 빼놓는 고양이라는 녀석. 독립적이며 애정을 갈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앙큼하고 도도한 여성을 지칭할 때는 고양이가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밀당의 달인 아니, 달묘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인간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아주 갖고 논다. 애묘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과 너도나도 냥이 집사를 자처하고 있는 현상을 보아 하건대, 이제 고양이의 매력은 알려질 대로 다 알려져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 아닐까. 고양이의 빠질 수 없는 매력, 그 중 하나는 그루밍일 것이다. 식사 후에, 본격적으로 자기 전에, 사냥놀이 후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그루밍을 한다. 이렇게 몸단장에 정성을 들이는 동물을 본 적이 없다. 햇빛이 쨍쨍한 날에 햇빛으로 몸을 소독하며 갸르릉거리는 소리가 나에게도 행복을 선사해 준다.

<뚱보>라는 챕터에서는 일명 뚱냥이들에 대한 예찬이 나온다. 인간은 뚱뚱하면 게을러 보이고 둔해 보이지만 고양이들은 덩치가 크고 뚱뚱할수록 세도가 같은 카리스마가 흘러나온다. 야생동물이기도 한 고양이는 뚱뚱하거나 덩치가 큰 것이 힘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뚱뚱한 고양이들은 옛날 문학이나 만화 캐릭터에 자주 등장하여, 귀여움과 유유자적함을 넘어서 오만방자해 보이는 특유의 마력을 겸비한다. 다시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서, 뚱뚱한 고양이는 왜 살이 쪘을까? 인간이나 동물이나 아무 근심 없이 속이 편하면 살이 찌고 비대해지기 마련이다. 즉,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두려울 것이 없는 행복한 상태인 것이다. 이는 인간이 꿈꾸는 삶과 닮아 있지 않은가? 항상 걱정과 고민에 쌓인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여유롭고 뚱뚱한 고양이가 부러울 따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양이에 대한 매력을 쏟아내고 있는 이 책은 마치 저자가 고양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래도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을 텐가 회유하고 설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집사의 시선이 아니라 제3자의 시선으로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인정해버렸다. 고양이는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어져버리는 존재라는 것. 그냥 지금처럼 사랑해주고 건강히 돌보아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것. 고양이 역시 나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는 존재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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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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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무려 열 두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소설집이다. 내가 방금 뭘 읽은 건가 싶게 아주 짧은 이야기도 있고, 긴 호흡으로 천천히 읽어야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첫 번째에 실린 제로섬 작품이 상당히 인상 깊다. 교수님의 집에 초청을 받은 여제자가 그 집에서 교수의 딸을 맞닥뜨리고 그 딸과 나누는 대화가 무척 흥미롭다. 왜 이렇게까지 그 교수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바라고 이러는게 아니라는 점이 더 독특했고,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교수에게 각인시키지 못해서 안절부절하며 전전긍긍하는 제자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결국 교수의 어린 딸에게 일격을 가하고 통쾌해하는 여제자.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화자가 대부분 여자이지만, ˝상사병˝이라는 작품은 남자가 화자이다. 스토킹 혹은 살해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한 여자의 넋두리를 듣고 있는 남자가 있다. 남자는 이 여자를 사랑한다. 다소 수동적이고 남자에게 예속되어 있는 듯한 여자이지만, 남자와의 대화로 보았을 때 그녀의 행동은 여유가 있고 그리 급박한 상황도 아닌 듯하다. 경찰에 신고해 봐도 별 반응이 없었다고, 오히려 자신을 의심하는 눈치라며 조용한 분노를 내뿜으며 체념에 빠진 여자. 제목이 스토킹이 아닌 ˝상사병˝이라는 것이 무척 흥미롭지 않은가. 남자가 여자의 남편도 아니고,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이면서도 불안한 여성의 내면이 잘 나타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기˝라는 작품은 세 번째 아이를 유산한 여자의 자책감과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두 아이와 남편이 있음에도 유산이라는 기억에 얽매여 매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한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연구원인 남편이 자신을 상대로 실험을 하는 건 아닐까 의심한 여자는 끝내 집을 나오게 된다. 그녀는 환상 속에서 예전의 첫사랑을 만나게 되고 유산으로 잃어버린 딸을 꼭 끌어안으며, 드디어 한기의 소굴을 알아냈다고 안도한다. 여자의 근본적인 불안과 슬픔이 소멸되지 못하고 자꾸만 팽창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운 작품이다.


˝자살자˝라는 작품은 단편작들 중에 제일 재미없게 읽었다. 짜증이 치솟았다. 어느 촉망받는 소설가의 음울한 자살 계획 이야기. 몇 번이나 자살에 실패하고 병원에 실려오고 그 와중에 아내 탓을 하는 꼬라지라니. 심지어 자살 후에 들려올 추문이나 상황에 대해서 걱정하는 꼴이라니. 그냥 빨리 죽어버려.

˝베이비 모니터˝만큼 엄마와 아이의 유대 관계에 대해, 정확히는 엄마가 아이에게 갖는 집착이 잘 드러난 작품이 있을까 싶다. 이것은 집착을 넘어선 공포랄까. 모니터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을 넘어서, 자칫하면 아이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과 공포가 그녀를 덮친다. 그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가진 아이지만 출산 후에 변화한 자신의 체형이라든가, 아이가 생기면서 남편과의 변화된 관계라든가, 시어머니와의 불화 따위 등등. 모든 이유와 원인은 차고 넘친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햇살 속으로 나가, 베이비 모니터라는 존재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괴물둥이˝는 흡사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한다. 갑자기 머리에서 솟아오른 혹은 분명히 불청객이었다. 그런데 주객이 전도되어 이 집의 딸 행세를 하다니? 심지어 이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가족들의 묵인과 허용으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소멸되어야 할 대상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심지어 가족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는 점이 카프카 소설과는 다르다는 것이 이 작품의 반전이다.

모든 작품이 강렬하면서도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일어난 사실이나 서사보다 각 인물들의 내면이 변화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고, 현실적으로 음울한 디스토피아를 표현하고 있지만 결국 그 끝에는 휴머니즘이라는 작가의 유토피아적 세계가 잘 드러나는 작품인 것 같다. 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측은하고도 약한 본성이 어떻게 강하게 변화하고 발현되는지 작품 하나하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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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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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무책으로 까발려지는 비밀들 앞에서 인간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밀을 지켜내기엔 변수가 너무 많고, 의도치 않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자들 또한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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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공현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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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소하고도 개인적인 영역을 담아낸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분리된 영역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사명을 이끌어내는, 결국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곡진하게 담아낸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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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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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올해 2025년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더욱 의미 있는 해인데, 이금이 작가의 신간이 이렇게 딱 맞춰 나오다니 기쁜 일이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뒤잇는 3부작으로, ‘슬픔의 틈새‘라는 제목은 읽기 전부터 어떤 스토리일지 예상이 되는 동시에, 표지에 그려진 한복을 입은 여성이 머뭇거리며 뒤를 돌아보는 그림에서조차 뭔가 서글픔이 느껴진다.


이번에도 역시 한인 여성이 주인공으로서, 여성의 이름은 주단옥이다. 단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서사이다 보니, 마치 그녀의 생생한 자전적 이야기 같기도 하고 꿋꿋하고 억척스럽게 삶을 살아간 한 여성의 위인전 같기도 하다. 소설임에도 어쩜 이렇게 시대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서사를 구현했을까. 사할린에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사할린 한인들의 삶에 대한 자료 조사와 관련 도서 및 논문 등을 찾아 읽는 등 가능한 사실에 기반하여 작품을 쓴 이금이 작가의 엄청난 노력이 느껴진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자리를 준다는 일본의 회유책에 속아 남사할린으로 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40년간 사할린 남쪽의 통치권을 넘겨받아 지배한다. 하지만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사할린이 다시 소련의 지배 체제로 넘어가면서 사할린 한인 1세대들은 일본인도, 소련인도, 조선인도 아닌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조국에 끝내 가지 못한 채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죽음을 맞기도 한다.

단옥의 아버지인 만석 역시 일본과 계약을 맺고 남사할린에 머무르며 탄광촌에서 일을 하는 노무자다. 가족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만석은 조선에 있는 가족들을 사할린으로 초대한다. 사할린에 오는 길에 장남 성복은 돈을 벌겠다는 편지와 함께 사라져버리고 어머니 덕춘과 단옥, 남동생인 영복은 사할린에서 만석과 재회한다. 만석 가족들은 조선에 남겨진 조부모님과 둘째 딸인 영옥, 행방이 묘연한 장남 성복이 다 같이 모여 살 날을 꿈꾸며 힘든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이들의 팍팍한 삶에 의지가 된 것은 유키에 가족이다. 유키에의 의붓아버지 정만은 만석과 의형제 사이다. 유키에보다 한 살 많은 단옥은 유키에와 자매처럼 지내며 같이 학교를 다녔고, 유키에의 일본인 엄마 치요 역시 덕춘과 사이좋게 지내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어느 날, 탄광촌에 사고가 나서 정만은 다리를 크게 다치고 만석은 강제로 본토 이송을 당한다. 1년 안에 노무자 가족을 일본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날 바닷가로 아버지를 배웅한 것이 단옥이 본 생전 만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만이 다리를 다쳐 생계가 어려워지자 유키에 가족은 사택촌에서 시내로 나간다. 치요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키에 가족이 시내에서 자리를 잡아갈 때쯤 덕춘은 사택촌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유키에 가족에게 부탁하여 같이 살자고 한다. 소련의 지배 체제에 놓인 1949년, 단옥은 그토록 꿈꿔왔던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에 부푼다. 사할린에 살면서 대부분 조선말을 잊어먹거나 배우지 않는 한인들이 많았지만 단옥은 끝까지 조선말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학교조차 소련 세력이 장악하면서 단옥은 교사를 할 수 없게 된다.


소설 중반은 단옥의 혼인, 정만 부부의 귀환 이야기가 이어진다. 유키에는 단옥 곁에 남으며 사할린에 정착하기로 한다. 단옥은 매 순간을 성복 대신 장녀라는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자신의 뿌리인 고향을 잊은 적이 없었고 언젠가는 가족이 다 같이 만나서 함께 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할린에 남겨진 한인들의 삶은 불투명하고도 불안했지만 가족과 고향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소설 후반은 조국의 배신으로 큰 상실에 빠진 한인들의 고독과 애환을 여실히 드러내며 노인이 된 단옥과 그녀의 자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만 먹는데 과연 단옥은 잃어버린 가족들을 만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녀의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너무 초조했다. 힘없는 우리나라와 무책임하고 잔혹한 일본, 권력 앞에서 모든 것을 통제한 소련. 그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며, 이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불안하고 고된 인생이었으나, 단옥의 삶은 슬픔의 틈새 가운데서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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