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아니? 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아니
조정연 지음 / 국민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어야 할 대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어른도 읽어보면 찌는 여름날씨가 서늘하고 감사함을 듬뿍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행작가 조정연님이 보여주는 사진과 이야기들은 지구별 그늘진 이야기이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도 일에 지친 직장인도.... 나처럼 나태한 생활인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물 한모금 들이키며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006년 8월에 첫 출간되었으니 몇 년이 흘렀다.

그러나 책 속의 이야기처럼 그들의 인생은 어쩌면 그대로 멈춰진 채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각기 다른 아홉개의 나라가 나오고 그에 따른 아홉명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아이들 아홉뿐이 아니다. 그 아홉 명의 아이들은 수만명의 아이들을 대변하고 있을 뿐!

 

가봉에 있는 아미나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허물좋은 직책은 가정부이지만 실상은 노예나 다름없다.

물을 깃고 아침을 준비하고 또래의 주인집 아이의 옷과 책가방을 챙기고 장사까지 나가야 하는 아미나타는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견디는 것보다 못한 어떤 다른 표현을 해야 맞을 것이다.

 

세계어린이 노동 금지날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켜지지 않는다.

 

낙타몰이 알스하드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같은 낙타몰이 아이들 중에는 경기중에 죽거나 배고파서 죽기도 하고 장애인이 되어 죽어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알스하드를 납치해 팔아버린 아버지의 친구를 아버지는 미워할 수가 없다.

그네들의 삶이 가져다 준 부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난에 찌들고 찌들어 그리 된 것이라고.

 

양귀비를 재배해 빚을 갚으려 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많은 가정집은 국가에서 양귀비며 그 밭까지 압수하고

살 수 있는 다른 방도를 찾아주지 않아 딸을 팔기까지 한다. 정확히 말하면 파는 것이 아니라 빚 대신이다.

그 아이들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고로고초는 쓰레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고로고초는 소피아의 동네이다.

고로고초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 위에서 놀고 쓰레기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는다.

먹다버린 음식물 쓰레기이지만 이들에겐 일용할 양식이므로 그것조차 나쁜 어른들에게 빼앗기기 일쑤다.

적은 양의 음식물 쓰레기지만 집에 가서 가족들과 나눠 먹어야 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겐 어깨가 무거운

생활전선이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닌 그 음식물 쓰레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수차례 칼을 맞고 죽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들에겐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 어쩌다 한번 먹는 끼니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절실하기에 죽어가면서도 놓을 수 없는 것이리라.

 

캄보디아의 라타는 형과 동생과 매일 쓰레기장으로 간다.

음식 부스러기가 있는지 혹시 쓸만한 것이 있는지 찾기 위해서다.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동이지만 그들은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쓰레기 더미에서 풍기는 악취도 심할 텐데 그것을 매일 태운다고 생각하면 ...

위생적이지 못한 음식 부스러기를 찾아 하루를 연명하는 그들에게 그 나쁜 공기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인도소녀 찬드라는 달빛 여신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예쁜 소녀 찬드라는 가느다란 팔 안에 어린 동생을 안고 서 있다.

집도 없는 찬드라는 몬스기엔 비를 피하기 위해 동생을 안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동생에게 비를 피하게 하고 싶어서다.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린 동생이 감기라도 걸리면 그것은 감기 이상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은 반군과 정부군의 분쟁으로 끊임없이 사람이 다치고 죽어간다.

모하메드는 더 이상 모하메드로 불리지 않는다.

그는 소년병 피바람이다.

여덟 살 때 반군이 집으로 쳐들어와 부모님을 죽이고 숨어있던 모하메드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죽을래, 살래? 따라오면 살려두고 싫다면 죽음이었다.

죽던가 소년병이 되던가 하라는 말에 누가 그 자리에서 죽겠다고 하겠는가.

여덟 살 모하메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무기를 나르는 짐꾼이 되고 소년병이 되어 총알받이가 되었다.

마약으로 환각을 일으켜 무서울 게 없는 그들은 그렇게 죽음의 사신이 되어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죽이고 죽어 나갔다.

더 이상 소년병이 아닌 모하메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부모님은 죽고 무엇보다 무섭게 달려들어 죽이던 소년병을 받아들이는 동네는 없었으니까.

 

우즈베키스탄은 세계 4위 면화 생산국이자 세계 2위 수출국이다.

일홈은 등교가 늦어 부리나케 학교로 간다.

그러나 책상에 앉아 수업을 받는 게 아니라 출석체크를 하고 커다란 자루를 들고 목화밭으로 간다.

제시간에 할당량을 따지 못하면 선생님께 혼이 나기 때문이다.

심한 매질을 당하지 않으려면 집에서 싸온 빵을 점심으로 후다닥 먹고 하루종일 일해야 한다.

점심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두달동안 일하고 받는 돈은 고작 300원이다.

어린이들의 노동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없다.

당연히 제재는 있을 수 없다. 나라에서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으로 아이들을 그렇게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의 현재경제는 어른들이 맡고 미래의 경제는 아이들에게 맡기기 위해 학문을 닦아야 한다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차드는 오랜시간 내전으로 인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나라이다.

여기 아이들도 공부 대신 일을 해야 한다.

아랍사람들의 소유인 가축을 돌보는 일인데 유목민처럼 풀이 많은 곳을 찾아 떠돌아 다녀야 한다.

떠돌아 다니다 보니 적게는 1년이 되도록 집에 갈 수가 없고 밤에는 무서운 야수에게 가축을 내주지 않기 위해

불침번을 서야한다. 어쩌다가 가축을 잃어버리거나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날에는 심한 매질과 함께 더 오랫동안 일을 해야한다. 집에 갈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지는 것이다. 허허벌판에서 아이들이 죽는 일도 허다하다.

분명 가축 주인은 아랍인들이지만 그 가축은 차드에서 차드의 어린이에 의해 길러지고 있는데

아랍인들은 이슬람교를 믿을 것을 강요하고 이름 또한 이슬람식으로 바꾸고 언어 자체도 그들의 언어를 쓰기를 원한다.

나라에서는 아랍인들이 지불하는 땅값 때문에 아이들을 무서운 벌판으로 내몰 뿐 아니라

아이들의 소중한 이름과 믿음 또 모국어까지 하찮게 여기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는 커피와 코코아의 생산량이 어마어마하다.

아이디의 나라는 말리이다.

가난한 아이디는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아홉살에 카카오 농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맨발로 농장까지 걸어가서 그날의 할당량을 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아니라 현대판 노예생활이다.

카카오 농장에서의 심각한 아동학대는 90년 이전에는 국제사회에서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카카오를 사가는 대기업들 말이다.

임금도 주지 않고 부린 덕에 기업들은 싼 값에 살 수 있으므로 모르는 척 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정말 그들은 모르고 있었을까?

 

당연히 보호되어야 할 어린이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집이 가난해서, 나라가 가난해서, 부모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에 수긍하기엔 너무 마음이 아프다.

어리고 나약한 어린이이기에 더 소중히 다루고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강자의 입자에 서서 약자로만 대하며 노동으로 학대하고 매질로 학대하고 굶기고 헐벗기는 것으로 학대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정녕 깨닫지 못하는 것인가?

그것이 당연시 되어 이젠 어린이가 자신들의 재물로만 보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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