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조립체에 바치는 찬가 ㅣ 수도승과 로봇 시리즈 1
베키 체임버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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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1세기의 유토피아에 대한 해답' 이라는 문구를 보고 나니 책에 대한 호기심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유토피아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곳은 바람직한 방향인가. <야생 조립체>라는 생소한 단어에 이끌린 것도 있었다. SF 소설에서 로봇이야 자주 등장하는 소재지만 수도승은 대체 무엇일까


책 속엔 두 인물(?)이 나온다. 다도승인 '덱스'와 어느날 숲에서 홀연히 나타난 로봇 '모스캡'.
판가 최고의 다도승으로 지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고, 자리를 옮기는 족족 그를 만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에 공허함과 죄책감을 느꼈던 덱스는 경계 지역 너머에 있는 하트스브로 암자를 알게 된다. 인간의 문명지를 벗어나 자연 보호 구역에 위치한 수도원을 가기 위해서는 오랜 여정이 불가피했고 한참 고민하던 덱스는 짐을 챙겨 암자로 떠난다. 그리고 그 곳 야영지에서 불쑥 나타난 모스캡을 만난다.


이 둘은 서로를 돕는다는 약속 하에 동행을 하기로 한다. 모스캡은 자신이 가본 적 있는 자연보호구역을 안내하며 위험으로부터 안내하고, 덱스는 모스캡에게 인간에 대한 것을 알려주기로. 보통 SF 소설 속 로봇이라하면 사람의 통제 밖에 벗어나 인간의 반대편에 서거나, 인간의 편에 서서 사람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그런 아이들이 떠오르곤 했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조금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이 부여한 목적을 거부하고 독립하길 선택하며, 사람은 그런 로봇들의 선택을 존중했던 세계. 그래서 로봇에게서부터 의지하고자 했던 삶의 방식부터 바꾸었던 세상.

종교에 대해 깊이있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수도승은 보이지 않는 길을 끊임없이 닦아야만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끊임없이 목적을 되살리며 영적인 자신을 다듬고 수행하는 자들. 인간의 본질적인 영적인 영역을 건드리는 수도승을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둔 이유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고찰해야할 부분을 직 간접적으로 건드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종교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부분에 관여할 수 밖에 없고 사람들의 신념으로 하여금 목적에 큰 영향을 주니 말이다.

그리고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성찰하는 인간들을 향해 모스캡이 머리를 울리는 말을 한다.
"거기에는 본래부터 확실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내장된 목적이었죠. 그런데 우리가 각성해서 우리의 목적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원치는 않는다고 하니 당신들은 그것을 존중했습니다. 존중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가 없어져도 잘 지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재건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가 목적을 초월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우리의 개별성을 지켜 준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목적이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까?"

두 사람(?)은 목적과 자유에 대한 한참의 이야기를 나눈 뒤에도 완전히 같은 길을 걸으려 하지 않았다. 모스캡의 반대에도 끊긴 길 너머로 가려 하고, 진흙탕에서 된탕 구르기도 하고... 그렇지만 체온이 없어도 자신의 곁을 내어주고 의지하며 숲 속의 수도원에 기어이 도착한다.
어쩌면 우리의 가까운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세계 속에서 이런 모습이야말로 평화롭고 유토피아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21세기의 유토피아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 책 소개에서부터 나온 이유를 알 것 같은 부분이었다.
둘은 덱스가 가져온 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1권은 끝난다. 앞으로 이들은 암자에서 어떤 이야기를 펼쳐나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곳을 탐험할지, 모스캡이 말하듯 목적에 얽매이지 않고 선택들을 이어나갈지. 이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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